(2)애플왕국의 영웅들 I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PC 게임계는 사무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IBM PC가 넘볼 수 없는 애플의 왕국이었다. 애플이 PC 게임의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즈음 IBM PC는 변방의 작은 부족에 불과하였고 그나마 세력으로만 따진다면 MSX보다도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이때의 상황은 IBM PC가 애플왕국을 향해 칼을 빼들고 단기필마로 뛰어들어봤자 말이라도 제대로 달려주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IBM PC 측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지 추측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적어도 애플왕국으로부터 PC 게임시장의 대권을 접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넉넉하게 10년 가까이 걸린 것으로 봐서는 IBM PC가 초반부터 PC 게임 시장에 열을 올리지는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과연 애플이 가졌던 메리트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능으로 따진다면 IBM PC가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다가 MSX는 거의 게임기에 가까운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었던 시절 애플왕국은 어떤힘으로 칼바람이 서늘한 중원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애플의 PC 시장 장악은 결코 성능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애플 기종이 게임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라고 단정짓기도 힘들다.
오히려 거의 게임 전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MSX 기종이 시스템 부분에서는 더 적합했다. 필자는 애플 기종이 PC 게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던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번째 이유는 애플이 가능성 있는 시장의 시작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정도의 시스템적인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애플 기종이 많은 수요가 있었으며 그 덕분에 게임 제작자들은 자연스럽게 애플 기종에서 돌아갈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경제학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어떤 시장이던 처음 만들어질때 뛰어든 기업체는 상대적으로 경쟁 상대가 적기 때문에 이득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플은 PC와 PC 게임이라는 가능성 있는 두 시장의 시작점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경쟁력 우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수요자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외부효과로 볼 수도 있지만(게임은 애플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작사가 만드는 것이니까)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애플이 아니라 파인애플이라고 할지라도 다양한 장르의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질 않으면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선택받을 확율이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애플용 게임들은 초기 게임 장르 형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많은 게임이 개발되어 게이머들에게 높은 선택권을 부여했으며 흔히 말하는 '대박' 타이틀도 제법 터져나왔었다.
이러한 것들이 수요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애플에 대한 기대치는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쉬운말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애플왕국을 지키는 영웅들이 있었기에 애플왕국의 중원 장악은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그 시절을 수놓았던 대표적인 게임들 몇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 RPG의 영원한 전설 : 울티마(Ultima) 시리즈
'명작'이라고 쉽게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드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쉽게 명작의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이 드물기 때문에 명작들이 더욱 빛나기도 한다. 울티마(Ultima)야 말로 PC 게임 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빛날 명작 중에 하나이다.
RPG(Role Playing Game)의 기원은, 아주 멀게 본다면 톨킨(J. R. R. Tolkien)의 판타지 소설 '반지전쟁(Lord of the Rings)'에서 찾을 수 있다. 톨킨의 반지전쟁은 PRG의 주된 배경이 되는 마법과 판타지의 형태를 정형화하는데 일조했다.
1974년 '던전 앤 드래곤(D&D, Dungeon & Dragons)'이라는 최초의 TRPG(Table Role Playing Game 혹은 Talk Role Playing Game) 시스템이 등장하여 인기를 얻자 TRPG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D&D 이후에도 'Advanced Dungeons&Dragons(AD&D, 어드밴스드 던전 앤 드래곤)'이나 'GURPS(겁스)'와 같은 새로운 TRPG의 시스템들이 선을 보였으며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PC용 RPG 게임들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D&D의 그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RPG는 TRPG가 PC로 구현된 것이라 생각해도 무난하다.
PC용 RPG는 다시 세부적으로 필드형과 던전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최초의 필드형 RPG를 Ultima로 보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울티마 시리즈의 첫번째인 Ultima 1: The First Age of Darkness(울티마1:첫번째 암흑시대)는 1980년에 출시되었다. 여기에서 잠깐 울티마의 모태가 되었던 게임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예전에 울티마를 즐겼던 게이머라면 울티마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던 게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울티마 시리즈의 모태가 되는 게임은 울티마의 제작자인 리처드 게리엇(Richard Garriot)이 1979년에 손수 만들었던 아칼라베스(Akalabeth)라는 게임이다.
▶ Akalabeth : World of Doom
아는 사람은(사람만?) 알겠지만 리처드 게리엇의 별명은 로드 브리티쉬*(Lord British)이다. 이 로드 브리티쉬란 단어는 그가 만든 게임인 아칼라베스에서 플레이어에게 아칼라베스의 평화를 위해 몬스터를 제거하라는 퀘스트를 내리는 사람이었다.(이 사람이 이전에도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울티마 시리즈에서 또 다시 등장한다.)
아칼라베스는 리차드 게리엇이 대학생이던 시절 자신이 배운 프로그래밍 실력만으로 손수 만든 게임이다. 리차드 게리엇은 이게임을 몇 개 복사하고 직접 만든 설명서(매뉴얼)을 첨부하여 자신이 일하던 컴퓨터 상점에서 판매를 했다.

컴퓨터 상점의 매니저가 캘리포니아 퍼시픽 컴퓨터(California Pacific Computer)라는 비디오 게임 회사로 이 게임을 보냈고 리차드 게리엇은 그 회사의 게임 개발자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에 캘리포니아 퍼시픽 버전의 아칼라베스가 출시되었으며, 1981년 캘리포니아 퍼시픽은 아트워크를 바꾼 새로운 모습의 아칼라베스를 출시하였다.(물론 애플II용이었다.)
결국 이 게임으로 인하여 리차드 게리엇은 게임 개발자라는 운명을 걸머쥐게 되었으며 이 게임을 포함해서 아마추어 시절에 만들었던 30여개의 습작 게임들이 울티마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아칼라베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리차드 게리엇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울티마라는 엄청난 게임이 세상에 등장할 가망성도 더욱 낮아졌을 것이다.
습작 게임 한편이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마법과 모험의 세계로 몰아넣을 운명을 가질 사람을 탄생시키는, PC 게임 역사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울티마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자.
/콘텐츠제공 : 보물닷컴(www.bomul.com) 김성열 (help@bom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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