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IPTV 때문에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죠, 뭐."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 케이블방송사(SO)들이 특별히 준비중인 대책은 없느냐는 질문에 어느 SO의 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최근 케이블TV방송협회는 프로그램 공급업체(PP) 12개사를 중심으로 한 '한미FTA 방송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심용섭, 송창의)를 만들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방송 개방 압력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협의체를 긴급 구성한 것이다. 얼마 전 방한한 리처드 파슨스 타임워너 회장이 한미FTA 8차 협상기간 중 직접 청와대를 방문해 'CNN의 한국어 더빙을 검토중'이라고 말한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케이블TV에 채널을 운영중인 PP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해외 채널이 대거 국내에 진출할 경우, 콘텐츠 대부분을 자체제작보다는 지상파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PP들의 영향력 감소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도채널도 마찬가지다. 승인제를 채택한 국내 방송시장에 CNN과 같은 매머드급 뉴스채널이 한국어 더빙으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가볍게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해외 채널의 국내 광고 유치까지 요구하고 있어, 현재 6천억원 규모에 불과한 케이블TV 방송광고 시장이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거대 미디어 그룹에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타임워너의 자회사가 파슨스 회장의 발언을 해명하고, 방송위와 문화부도 방송 시장 개방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했지만 PP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케이블TV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는 주체이자, 케이블협회라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SO들은 FTA 체결로 인한 방송시장 개방 여파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쏟지 않는 눈치다.
온미디어, CJ미디어, YTN 등 주요 PP들이 비대위 구성에 주축이란 점도 그렇고, 15일 외교통상부 앞에서 있었던 기자회견과 1인 시위 참여자들 역시 PP 관계자들뿐이었다.
SO들도 지난해 외국인 지분제한을 현행 49%에서 51%로 완화하고 온라인 VOD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 측 요구에 반대 입장을 밝힌 적은 있다.
그러나 정작 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방송시장이 받을 타격에 대해 걱정하는 SO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물론 콘텐츠 사업자인 PP와 플랫폼 사업자인 SO의 사업모델상, 모든 사안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오히려 MSP(SO와 PP의 결합체)를 꿈꾸는 SO들로서는 빈약한 국내 콘텐츠 시장에 해외 콘텐츠가 대거 수입되는 일을 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SO들이 풀어야 하는 디지털케이블 전환이나 IPTV 이슈, TPS 준비만큼이나 FTA체결 역시 미래 케이블TV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한 중요한 과제다.
해외의 거대 미디어 그룹들이 국내 시장 진출로 얻고자 하는 것은 고작 10조 안팎의 국내 방송시장만이 아니라 방송통신융합시대에 창출될 엄청난 수요의 미디어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막대한 자본력이 방송사 뿐만아니라 국내 통신사나 인터넷 등과 결합했을 때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한미FTA 체결로 타격을 받는 쪽이 PP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래 방통융합시대에는 콘텐츠가 경쟁력'이라고 그토록 강조하던 SO들이 비대위 행사에 동참했더라면 더 보기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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