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 로열티는 인하될 수 있을까? 한국은 과연 퀄컴의 동반자인가 아니면 해마다 엄청난 로열티를 일방적으로 갖다 바치기만 하는 '봉'인가?
최근 퀄컴과 중국업체와 맺은 로열티가 올해부터는 한국의 그것보다 더 낮게 됐다는 언론 보도로 CDMA로열티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드는 궁금증들이다.
이에 한국이 퀄컴과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상용화 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맺은 로열티 계약들을 살펴보고, 로열티 인하가능성을 진단해본다.
◆CDMA 상용화의 과정과 로열티 지급액
한국이 CDMA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CDMA는 당시 이론상으로는 아날로그 방식인 FDMA나 TDMA에 비해 훨씬 우수했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지배적인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미 이 시점부터 CDMA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91년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엔 퀄컴으로부터 연구자료만 넘겨받아 검토하는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92년 12월. ETRI는 퀄컴과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다. 연구비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맥슨 등 4사가 235억원, ETRI가 534억원을 부담했다. 퀄컴은 기술지원의 대가로 오히려 94년 봄까지 3단계에 걸쳐 총 1천550만달러를 받았다. 당시 ETRI가 부담한 534억원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과 한국통신(KT)이 냈다.
당시 ETRI는 퀄컴과의 계약에서 향후 13년간 국내 판매 단말기분에서 발생한 로열티의 20%를 되돌려 받기로 했다. 이 계약에 따라 ETRI는 지난해 말까지 퀄컴으로부터 총 1억4천18만달러를 돌려 받았다.
연구가 진행중이던 93년, 퀄컴은 앞의 4개사와 각각 '기술사용 및 기술지원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 때 로열티로 결정된 것이 내수판매가격의 5.25%, 수출 판매가격의 5.75%. 이는 적어도 계약서 상으로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후 1997년부터는 팬택, 텔슨 등 후발업체들도 이와 동일한 조건으로 퀄컴과 계약을 체결했다. 후발업체들은 다만 일시불로 최소 200만달러씩을 퀄컴에 별도로 지불했다.
이같은 계약에 따라 한국의 업체들이 퀄컴에 지불한 로열티 금액은 지난해 6월 말 현재까지 총 14억5천600만달러, 한화로 약 1조7천500억원이다.
이 돈은 무명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을 일약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키워놓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편, ETRI와 퀄컴은 94년 4월 당시 윤동윤 체신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실험실에서 CDMA 상용화 시험에 성공했다. 94년 가을부터는 기술을 업체들에 넘겨주기 시작했다. 이에 앞선 93년 11월 체신부(현 정통부)는 고시를 통해 CDMA를 디지털 이동통신 국가 표준으로 공식 선정했다.
또 체신부는 94년 가을에는 제2 이동통신(신세기통신, 2002년 1월 SK텔레콤에 흡수합병) 사업자 선정을 발표하면서 CDMA 방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은 96년 1월, 신세기통신은 같은 해 4월 CDMA 방식으로 서비스를 각각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알면서 당했다"...최혜조항에 대한 입장 차이
최근 문제가 된 것으로 중국이 사실상 올해부터 수출 물량에 대해 한국보다 낮은 5%의 로열티를 적용받게 된 사실은 이미 퀄컴과 중국업체들이 계약을 맺을 당시인 2001년에 한국 업체들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즉,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퀄컴은 '중국과의 로열티 계약이 내수시장 분 5.25%, 수출시장 분 7%이며 3년 후부터는 수출규모에 따라 최고 5%까지 낮아진다'는 사실을 한국 업체들에 통보하고 '한국안'과 '중국안' 중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한 중소업체의 임원은 "당시 퀄컴이 통보해 주기 전부터 중국이 퀄컴과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로열티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는 소문을 접하고 여러 경로로 정보를 입수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당시 한국 업체들은 '3년 후부터는 수출분 로열티가 5%로 낮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의 케이스를 선택하지 않았던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소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퀄컴이 중국 업체(사실상 중국 정부가 나섰다)들과 2001년 6월28일자로 발효된 계약 내용을 2001년 8월께 우리와 맺은 최혜로열티(MFR) 조항에 따라 국내 기업들에 통지해 왔다. 3년 경과 뒤 중국 업체들이 수출할 경우 5%까지 로열티가 내려간다는 것은 그때 다 알고 있었지만 비밀보장 조항 때문에 언론에 세부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었다. 이것이 최근 언론에 드러난 것이다.
퀄컴은 이를 통보하면서 중국안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기존 계약 내용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 2개월 이내에 알려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내 업체들이 처음에 반발하면서 법률적 검토에 나섰고 외교적인 방법을 모색할 지, 소송할 지 검토에 착수했다.
그런데 당시 국내 T사와 미국의 P사 법무법인에 의뢰한 결과 중국과 퀄컴이 맺은 계약내용이 우리와 맺은 최혜조항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승소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을 들었다. 또 당시 계약서상의 관할 법률도 미국 샌디에고로 돼 있어 퀄컴의 안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불리함이 작용했었다.
결국 중국의 경우 수출 로열티가 3년 뒤에 5%까지 떨어지지만 중국이 당시 기술력으로 볼 때 당장 수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출한다고 해도 2~3달러 정도의 가격 차이는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퀄컴이 중국과 계약을 하면서 '브루' 탑재 등 부대조건을 내건 것도 걸림돌로 생각했다. 패키지 형 계약이어서 당시 중국 형을 선택할 경우 부대조건도 고스란히 떠 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당시 한국의 휴대폰 메이커들은 칩셋을 독점 공급하고 있던 퀄컴과는 동업자 의식이 강했고, 3년 뒤면 우리도 재계약 하는 시점이 오니까 정 문제가 되면 그 때 가서 고치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장 수출물량이 많은 국내 기업들로서는 비록 3년 후에 로열티 비율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7%라는 높은 비율을 선택하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관계자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러는 사이 두 달이 지났고, 부득이 퀄컴에 요구해 한 달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는데 퀄컴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 때 퀄컴은 '중국과 계약한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수정안이 있을 수 있다. 수정되면 다시 통지해주겠다'고 한국 측에 알려왔다. 그러나 이후 어떠한 통지도 없었고 독촉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세달이 후딱 지났고 우리 기업들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퀄컴에 아무런 통보를 안했다."
결론적으로 국내 업체들은 당시 퀄컴이 중국에 로열티 할인 시한을 3년으로 잡은 것은 한국과 중국의 여건을 이용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중국안을 선뜻 선택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계산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퀄컴의 제이콥스 회장은 양승택 장관의 항의 서한을 받고 "중국에 CDMA 시장이 생기면 한국에도 이익"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중국에 로열티를 깎아줘야한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몇 달러의 차이는 사소하다"라고 답신을 보내 왔다.
한편 이 과정에서 '최혜대우'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일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의 언론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퀄컴이 한국기업에 최혜대우를 약속한 만큼 모든 면에서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퀄컴은 '최혜대우란 다른 계약이 있을 경우 선택권을 주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로열티 협상에서 내수와 수출을 따로 따로 놓고 한국과 중국의 계약 중 유리한 것만 묶어 계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중국에 비해 로열티 불리한가
겉으로만 보면 올해부터 수출물량에 대한 로열티를 중국 업체들은 5%를 물고, 한국업체들은 5.75%를 무는 셈이니 한국 업체들이 불리하다. 가뜩이나 국내 인건비가 훨씬 높은 상황에서 중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은 실제로 지금도 5% 미만의 로열티를 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사가 갖고 있는 기술과 퀄컴 기술간의 크로스 라이선싱을 맺었기도 하거니와 물량이 많아 할인을 받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경우 "일시불로 막대한 금액을 내고 로열티를 물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비밀유지 조항'을 들어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퀄컴 로열티 문제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불만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물량이 적고 자체 기술이 부족한 중소업체들만 더욱 열악한 조건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국내 일부에서는 '지난해만 우리나라는 휴대폰을 60억달러어치나 수출했는데 5%대의 로열티를 무는 게 무슨 큰 일인가'하는 시각까지 있다.
또 최근 급격히 수출물량이 증가하는 GSM 휴대폰의 경우 노키아, 에릭슨, 모토롤러 등 5개사에 지급하는 로열티를 합치면 5%가 넘는다는 주장을 펴면서 퀄컴 로열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결국 퀄컴과의 로열티에 있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이 확연히 다른 셈이다.
◆로열티 인하 노력
이에 따라 국내 중소업체들은 로열티 재협상이 있는 내년에는 비율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와이드텔레콤, 인터큐브 등 국내 8개 중소업체들은 로열티 협상권을 시너텍 컨소시엄에 위임해 놓고 있다.
정보통신지적재산권 협회 관계자는 "내년 2005년부터 시작되는 재협상을 통해 로열티를 현실화하도록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퀄컴의 기본 특허의 만료가 2007년인 만큼 이번이 로열티를 낮추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소업체들은 "퀄컴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칩 구매처를 TI(텍사스인스투르먼트)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TI는 지난해 자체 디지털 베이스밴드 기술을 적용해 CDMA2000 모뎀칩을 개발, 최근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TI는 현재 cdma2000 1x와 EV-DV 샘플 칩을 공급중이며 LG전자가 단말기 채택 여부를 검토이다.
TI는 특허 로열티 요율를 퀄컴보다 1∼2% 정도 낮은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GSM 생산 물량을 늘려 '탈CDMA'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CDMA 단일 표준인 내수 시장 물량은 어쩔수 없다고 해도 GSM 산업을 키워 해외 시장에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WCDMA나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에서 퀄컴을 배제하는 정책을 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통부가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퀄컴의 '브루'를 배제하고 업계 표준안인 '위피'의 손을 들어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인하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중소업체들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로열티 인하 가능성은 그리 높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퀄컴의 위상이 처음 계약을 맺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CDMA를 국가 표준으로 정해놓고 있는 이상, 사실상 퀄컴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여론을 등에 업고 심리적으로 퀄컴을 압박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중국의 예를 들어 한국도 수출물량에 대해서 5%로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수는 있을 것이지만 이 또한 퀄컴의 의지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요컨대 법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고, 정치적 혹은 여론을 통해야만 로열티 인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로열티 인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퀄컴과의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도 민간기업간의 계약인 로열티 문제를 드러내 놓고 지원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요컨대 CDMA 로열티는 한국 기업의 기술력, 시장점유율, 협상능력 등이 어우러져 퀄컴으로 하여금 한국을 다시 평가하게 만드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백재현기자 brian@inews24.com/정진호기자 jhj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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