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시의 게임들을 접해보지 않은 게이머라면 스포츠 장르가 아케이드에 속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요즘 등장하는 스포츠 게임들은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강한 하나의 게임 장르로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DOS가 주로 사용되던 6, 7년 전에는 스포츠 게임에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나타난 경우가 드물었고 기술적으로도 표현이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스포츠 자체가 이미 고전적으로 게임의 성격을 강하게 포함하고 있는 개체였기 때문에 이것을 PC로 구현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었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 아케이드의 성격이 강한 스포츠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요즘 등장하는 스포츠 게임들이 가진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크다고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DOS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이다. 만약 이 시절에 스포츠 게임이 전혀 없다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스포츠 게임들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단지 '스포츠'라는 말만으로 장르의 성격을 대변했을 것이다.
가령 애플 시절의 스포츠 게임들과 DOS 시절의 스포츠 게임들은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애플 시절의 스포츠 게임들보다는 DOS 시절의 스포츠 게임들에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더 강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곧 이러한 비교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어쨌든 이 시절에는 많은 수의 타이틀은 아니지만 아케이드성이 강한 스포츠 게임들이 등장했다. 대부분 야구나 축구, 농구 같이 인기있는 종목이 게임으로 구현되었으며 간혹 애플 시절의 추억, 혹은 오락실용 게임의 추억을 반추하려는 듯한 느낌의 단순 아케이드 게임들도 있었다.
야구 - Hard Ball 시리즈
아마 야구 게임을 즐기는 게임머치고 이 게임을 모르는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하이히트베이스볼(High Heat Baseball) 시리즈나 트리플플레이(Triple Play) 시리즈가 대표적인 야구 게임이지만 이들 게임들의 근간을 이룬 게임은 바로 하드볼(Hard Ball) 시리즈이다.
하드볼 시리즈는 1987년에 1편이 등장했다. 당시만해도 DOS가 그다지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1편은 나름대로의 인지도를 얻었으며 1989년에 2편이 등장했다.
당시 하드볼 시리즈와 함께 인기있던 야구 게임은 EA에서 출시한 얼웨버 베이스볼(Earl Weaver Baseball)이었는데 이 게임 역시 하드볼 1편과 같은 해인 1987년에 1편이 등장했다.
게임의 2편은 1991년에 등장했는데 초기 1편만을 놓고 볼 때는 하드볼보다 낫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찌감치 출시한 하드볼 2편도 얼웨버 베이스볼보다는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니 당시 얼웨버 베이스볼의 완성도가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하드볼 1편을 제작했던 마인드스팬(MindSpan)이 애컬레이드(Accolade)와 다시 손을 잡고 1992년에 만든 하드볼의 3편이 등장하고나서 야구 게임의 대명사는 하드볼 시리즈가 되었다. 물론 경쟁할만한 타이틀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3편의 완성도는 1, 2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픽은 기존 1, 2편의 EGA에서 VGA에 256 컬러로 교체되었으며 사운드도 더욱 풍성해졌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 3편부터 '코치'라는 개념이 등장해서 단순히 경기를 행하던 것에서 벗어나 리그의 상황에 맞추어 팀을 조율하는 역할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기존의 야구 게임들과 달리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포함된 3편의 시스템은 게이머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등장하는 하드볼 시리즈의 기본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1994년에는 SVGA로 한 단계 발전한 4편이 등장했는데 이 4편은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타이틀이었다. 이 4편은 주로 그래픽 부분에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대신 시스템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향상된 그래픽과 손쉬운 인터페이스 등을 지지하는 게이머들이 있는가하면 단지 3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혹평하는 게이머들도 있었다.
이듬해인 1995년 5편과 1997년 6편을 끝으로 하드볼 시리즈는 끝이 났다. 특히 6편의 경우 시뮬레이션의 성격과 아케이드의 성격을 잘 배합해 매니아가 아닐지라도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으며 매니아의 경우라도 로스터패치를 이용해 항상 새로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어서 상당 기간동안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하드볼의 장점은 3편 이후 고정적이었으며 매니아들에게는 향상되는 그래픽과 사운드 및 시각 효과 등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배타적인 게이머들에게는 그래픽 이외에는 변하지 않는 게임이라는 혹평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프론트페이지 스포츠(Sierra On-Line의 Frontpage Sports : Baseball Pro : 베이스볼 프로, 1994)이라든지 SSI의 토니 라 루사 베이스볼(Tony La Russa Baseball, 1993) 시리즈, 다이아몬드 드림즈(Diamond Dreams)의 다이아몬드드림즈 베이스볼(Diamond Dreams Baseball, 1995), 스톰프론츠 스튜디오(Stormfront Studios)의 올드타임 베이스볼(Oldtime Baseball, 1995) 같은 게임들도 유명하였다.
특히 토니 라 루사 베이스볼은 1980년대 말에 첫 등장을 해서 1993년 2편이 등장했는데 하드볼 시리즈와 맞대결을 벌인 게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드볼 시리즈의 위세에 눌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외국에서는 1997년 4편까지 출시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아래는 2편과 4편의 패키지이다.
축구 - Fifa 시리즈
그런가하면 축구 역시 야구만큼이나 많이 PC에 경기장을 꾸몄다. 센서블 소프트웨어(Sensible Software)의 그 유명한 센서블 월드 오브 사커(Sensible World of Soccer) 시리즈라든지 센서블 시리즈와 비슷한 모양새를 가졌던 제플린 게임즈(Zeppelin Games)의 인터내셔널 사커(International Soccer : 1994), 1990년 2편 이후 5년만에 앵코 소프트웨어(Anco Software)의 킥오프3(Kick Off 3 : 1995), 등장한 당시로서는 드물게 3D 그래픽 환경을 추구했던 긂린(Gremlin)의 액츄어 사커(Actua Soccer : 1995), 단순한 경기를 하는 게임이 아닌 팀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이었던 임프레션스(Impressions)의 울티매이트 사커 매니저(Ultimate Soccer Manager) 시리즈나 도마크(Domark)의 챔피언십 매니저(Championship Manager) 시리즈 등이 많은 게이머들의 인기를 얻었다.

이 타이틀 중에 Gremlin의 Actua Soccer는 당시 게임들에서는 보기 힘든 3D 환경을 구현한 점에서 의미를 갖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당시 천편일률적인던 2D의 그래픽 환경에서 벗어나 3D를 구현했으며 다양한 카메라 앵글과 화려한 그래픽 및 사운드 효과, 리플레이 기능 등등이 맞물려 시스템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의 게임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지금도 3D 축구 게임의 효시로 불리고 있으며 이후 1997년에 2편과 클럽에디션(Club Edition), 1999년 3편을 출시했다. 하지만 윈도우95로 전반적인 운영체제가 바뀐 이후에 출시된 후속작들은 1편만큼 주목을 받진 못했다.

또 현재 축구 게임의 지존 자리를 지키고 있는 EA의 FIFA 시리즈가 등장한 것도 이 시절이다. 1993년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FIFA International Soccer)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게임은 1994년 FIFA 95, 1995년 FIFA 96을 잇달아 출시하며 대표적인 축구 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중에 1995년에 출시되었던 FIFA 96은 현재 FIFA 2002까지 출시된 FIFA 시리즈의 근간을 이룬 게임으로 근래에 출시된 타이틀들과 거의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또 FIFA 96 윈도우95가 등장하기 전, DOS 환경에서 실행되는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농구 - NBA Live 시리즈
인기 스포츠 반열에서 절대 제외할 수 없는 종목이 바로 농구이다. 필자도 농구를 즐기는 사람이거니와 사정상 코트에 나갈 수 없을 때는 농구 게임으로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 당시 농구 게임은 지금처럼 생동감 넘치는 그래픽이나 다양한 카메라 앵글, 사실적인 동작 등을 묘사하진 못했지만 농구라는 종목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많은 게이머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당시 유명했던 타이틀로는 마이크로 리그(Micro League)의 타임아웃 스포츠 바스켓볼(Time Out Sports Basketball, 1994), 미국 대학 농구를 소재로 했던 베데사소프트웍스(Bethesda Softworks)의 로드투더파이널포2(NCAA, Road to The Final Four 2 , 1992), DOS 시절의 막바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어클레이임 엔터테인먼트(Acclaim Entertainment)의 NBA 잼 토너먼트 에디션(NBA Jam Tournament Edition, 1996), 조던이 등장한 EA의 조던 인 플라이트(Jodan in Fight, 1992), 아케이드 성격이 강했던 길거리 농구 게임인 지티이엔터테인먼트(GTE Entertainment)의 재밋(Jammit, 1994) 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레이커스 대 섹틱스와 NBA 플레이오프(Lakers vs Celtics and NBA Playoffs)가 뒤늦게 들어와 오랫동안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각종 통신 자료실에는 국내 게이머들이 만든 에디터나 패치가 상당히 많이 등록되었다. 패치는 슬램덩크 같은 만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도록 만드는 것들이나 국내 농구팀과 선수들이 등장하도록 한 것들, 혹은 게임을 만들 당시 1989년에는 없었던 NBA 소속 선수들이 등장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까지 인기를 얻었던 게임은 별로 많지 않다. 아마 NBA 잼 토터먼트 에디션(NBA Jam Tournament Edition)나 1989년에 출시되었던 EA의 Lakers vs Celtics and NBA Playoffs, 1994년에 출시된 NBA라이브95(NBA Live 95)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 주목을 받던 게임은 드물었으며 NBA Live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 이 시기였다.
NBA Live 95는 현재 Full 3D 그래픽으로 제작되고 있는 NBA Live 시리즈와 거의 동일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많은 골수 매니아를 가지고 있던 Lakers vs Celtics and NBA Playoffs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게이머들이 묵은 게임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밖의 게임들
또 골프 게임도 제법 인기를 얻었는데 골프 게임은 다른 스포츠 게임들에 비해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많은 편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아케이드로서의 골프 게임이 대부분이었지만 386과 486이 등장하면서 골프 게임들은 다른 스포츠 게임들에 비해 좀 더 빠르게 시뮬레이션의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명 골퍼의 이름을 내건 타이틀도 많았는데 1992년 Accolade가 출시한 잭니콜라우스 시그니처 에디션(Jack Nicklaus Signature Edition)이나 1993년 그랜드슬램(Grand Slam)이 제작했던 닉팔도 챔피언십 골프(Nick Faldo's Championship Golf), 같은해에 출시되었던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의 데이빗 리드베러즈 그린(David Leadbetter's Greens), 코나미(Konami)의 윌슨 프로스텝 골프(Wilson ProStaff Golf) 등이 대표적인 게임들이다.

이외에 사이멀먼도(Simulmundo)의 3D 월드복싱(3D World Boxing : 1993)이나 3D 월드테니스(3D World Tennis : 1993), 제플린 게임즈(Zeppelin Games)의 인터내셔널 애쓰레틱스(International Athletics : 1993), 인터내셔널 테니스(International Tennis : 1993), EA의 NHL 하키(NHL Hockey : 1993) 같은 게임들이 스포츠 게임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런 인기 종목 이외에도 많은 스포츠 게임들이 있었는데 이 게임들 역시 시뮬레이션의 성격보다는 아케이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윈도우95가 등장하고 새로운 그래픽 구현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스포츠 게임들은 좀더 현실감이 강한 시뮬레이션 개념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스포츠 게임은 스포츠 자체가 가지는 아케이드의 성격은 여전하다.
/콘텐츠제공 : 보물닷컴(www.bomul.com) 김성열 (help@bom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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