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잊혀진 영웅 - Wizardry & Bard's Tale
지난 시간에 알아본 바와 같이 울티마(Ultima) 시리즈는 실로 대단한 게임이었다. 게임 자체로서의 흥미와 재미뿐만 아니라 PC 게임 역사에서 갖는 중요성까지도 간과할 수 없는 빛나는 명작 중에 하나임에 틀림 없는 게임이다.
물론 이 게임외에도 다른 많은 게임들이 애플 시절에 명성을 휘날렸었다. 영화도 그러하듯이 게임 역시 어느정도 인기를 구가하게 되면 속편이 나오게 마련이고 시리즈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연작이 아닌 단일 타이틀이 인기를 얻은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러한 연작의 형태는 게임이 갖는 상업적 속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러한 상업적 속성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게임을 고르는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제작자에 있어서도 이후 제작 행보에 영향을 많이 끼치게 된다.
장르 매니아를 포함한 일반 사용자의 경우 될 수 있으면 많이 팔려나간 게임에 관심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제작자 역시 많이 판매된 게임의 영향을 받고 이것은 연작이나 유행 또는 주류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연작으로 만들어졌던 게임들은 일단 전편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배경으로 삼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시리즈물이 상업적 조건만을 가지고 만들어지지는 않았을테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0여년이 훨씬 지난 게임들을 만나더라도 시리즈물로 제작된 게임의 경우는 최하 해당 장르의 매니아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고 가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소위 비평가들의 평가는 배제해야 한다는 단점이 생기긴 하지만 뭐 어떠랴. 게임을 평가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주로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리가 아닌가.
위저드리(Wizardry) - 영원한 No.2 ?
위저드리(Wizardry) 역시 위에서 말한 시리즈물에 속한다. 위저드리는 1981년 울티마가 처음 선을 보인때에 Wizardry I :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위저드리 I : 미친 군주의 실험장)로 데뷔를 했으며 애플시대가 막을 내리던 198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애플용으로 제작되었고 현재로서는 마지막인 Wizardry Gold 버전이 1996년에 선을 보였다.(현재 출시 예정인 8편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하도록 하자.)

위저드리는 울티마(Ultima) 시리즈와 함께 당대 RPG 장르를 대표하던 게임 중에 하나인데 울티마 시리즈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울티마가 주로 필드(field)를 배경으로 진행된 반면 위저드리는 주로 던전을 배경으로 게임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기준하여 울티마를 필드형 RPG의 효시로, 위저드리를 던전형 RPG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위저드리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 개연성이 부족한 - 스토리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장르 자체가 RPG로 통하기는 하지만 어드벤처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의 모호성과 난해한 스토리 및 세계관, 그리고 몇몇 시리즈에서 보이는 극한의 난이도 덕분에 명성에 비례한만큼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특히 시리즈의 4편으로 1987년에 출시된 Wizardry IV : The Return of Werdna(위저드리 IV : 워드나의 귀환)의 경우는 지금까지 출시된 RPG 중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평가의 기조는 게임 자체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인정하는 편이었고 그런 덕분에 각 시리즈마다 웹진이나 혹은 게임관련 평가 단체에서 주는 상들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알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이후에도 Wizardry V : Heart Of The Maelstrom(위저드리 V : 혼란의 중심), Wizardry VI : Bane of the Cosmic Forge(위저드리 VI : 영원한 벼리의 파멸), Wizardry VII : Crusaders of the Dark Savant(암흑 대가의 십자군 - 이후에 Gold 버전으로 재출시) 위저드리 시리즈의 어드벤처 버전인 Nemesis: The Wizardry Adventure(네미시스 : 위저드리 어드벤처) 등을 출시하면서 애플 시대에서 IBM PC로의 진입을 꾀하였으나 과거의 명성에 비해서 플레이어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예전같지 않았다.
어떤 평론가는 5, 6, 7편을 만든 데이빗 브래들리(D.W.Bradley)를 일컬어 '궤변'을 늘어놓았다고까지 혹평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브래들리의 게임 구성력만은 높이 평가되었고 이후에 그는 휴어리스틱 파크(Heuristic Park)라는 제작사로 옮겨 액티비전(Activision)을 통해 1인칭 3D RPG인 위저드&워리어(Wizards & Warriors)라는 게임을 제작하여 2000년 9월에 출시하였다.(물론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는 것은 게이머라면 다들 아는 사실일것이다. 국내에도 최근에 출시되었다.)

어쨌든 위저드리의 IBM PC 상륙작전은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위저드리는 별로 손도 쓰지 못한채 그렇게 게이머들 사이에서 잊혀져 가고 말았다.
더구나 제작사인 써텍소프트웨어(Sirtech Software - 우리에게는 재기드 얼라이언스(Jagged Alliance) 시리즈로도 유명한)가 위저드리의 8편이 제작되고 있던 1999년 벽두에 자금난을 이유로 회사의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발표를 하게되어 위저드리 시리즈는 7편을 끝으로 종결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난항을 겪고 폐사의 위기를 넘긴 써텍소프트웨어는 작년에 재기드 얼라이언스의 2편과 확장팩을 출시했고(필자의 기억에 이 게임의 출시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다.)
현재 올 2001년 출시를 목표로 위저드리의 8편이 제작중에 있다고 한다. 현재 베타테스트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며 제작자인 찰스 마일즈(Charles Miles)의 말로는 디아블로2(Diablo II) 보다도 더욱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게임일 것이라고 한다.

위저드리는 울티마와 함께 애플시절을 이끌던 RPG계의 쌍두마차로 통했었고 그러한 평가는 대해서는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리고 필드형 RPG와 던전형 RPG라는 구분은 장르의 세분화에 기여하였고 울티마와는 또다른 시스템과 세계관은 자칫 D&D 판타지에 얽매일 수 밖에 없었던 RPG의 단순성을 극복하게 하였다.
또한 이후에 나타난 던전형 RPG와 어드벤처에 미친 영향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다소 씁쓸한 부분이긴 하지만 - 시대와 주류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임이 이후 어떤 평가(내지는 대접)를 받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 예이며 게이머들의 입맛이라는 것은 결코 과거의 명성이나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애플 시절의 3대 RPG로 울티마 시리즈와 위저드리 시리즈, 그리고 (이제 곧 도마위에 올라갈) 바즈테일(Bard's Tale) 시리즈를 꼽는데 울티마 시리즈와 나머지 두 시리즈의 차이점이 결국은 IBM PC의 융성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잘 탔느냐 그렇지 않았느냐(혹은 못했느냐) 하는 점이라는 것을 감안할때 당시 애플 시대에서 IBM PC 시대로의 전환은 (주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여부에 관심을 갖던) 게이머뿐만 아니라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애플 시절에는 울티마와 쌍벽을 이루던 게임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IBM PC 시절에는 혹평이 자자했던 위저드리는 8편의 제작과 발표를 통해 작년 9편으로 막을 내린 울티마의 역사를 결국 따라잡게 되었다.
그러나 애플 시절의 성공에 반한 IBM PC 시절의 실패는 위저드리로 하여금 울티마의 등뒤에 설수 밖에 없는 No.2의 자리를 부여했고 그 위치는 변하지 않고 있다. 과연 8편의 출시로 No.1, RPG의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