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100년 대계'라는 말이 있다. 교육 정책을 입안할 때는 10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10년도 안된 대학교를 다른 대학교와 통합하느니 마느니를 놓고 격론이 오가고 있다. 처음 학교를 만들 때부터 잘못했거나 그동안 운영을 잘못 했거나 둘 중 하나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이사회는 지난 달 29일 카이스트(KAIST)와의 통합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이사회로 넘겼다. 다음 이사회는 언제 열릴지 정하지도 않았다. ICU의 운명이 안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ICU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부터 시작됐으나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벌써 2008년도 신입생 모집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형국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ICU는 수많은 우여곡절끝에 1998년 IT 인재육성을 위해 정통부가 주도해 설립했다. 교육부가 정부 부처의 국립대학설립에 반대하자 정통부는 법적으로는 사립대학이되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이상한 모양새의 대학을 만들었다. ICU의 학교법인 이사장은 정통부 장관이며 정통부 본부장이 당연직 이사에 포함된다.
2004년 감사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통부는 2년이 넘도록 이를 시정하지 않고 있다.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장관이 이사장을 사퇴하고 지원금을 중단하면 이 학교는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다. 민간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재정자립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어느 기업도 나서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카이스트와의 통합방안이다. 그런데 카이스트와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 카이스트와 통합하면 ICU는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IT인재 육성을 위한 대학이라는 설립취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운영을 잘 못했다면 모를까 제도나 절차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학교를 없앨 필요까지는 있겠냐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에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ICU 정체성 문제가 불거진 2004년은 공교롭게도 ‘정치인’ 출신인 허운나씨가 총장에 선임된 해였다. 그리고 곧바로 국회 김영선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 의원은 ICU와 카이스트의 통합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2004년에 염동연 의원을 비롯해 5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ICU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발의했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다. 작은 규모의 대학교를 두고 너무나 많은 정치인들이 싸우고 있다.
감사원 지적대로 ICU라는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빨리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통부는 책임을 지기 보다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시간 끌기에 연연하고 있다.
IT 특화대학이 필요하다는 정통부의 당초 소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IT 특화 대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합법적인 정부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더 육성해야 한다.
만약 그 때 결정이 잘못됐다면 판단된다면 정통부는 솔직히 정책실패를 시인하고 ICU와 카이스트의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정통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ICU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내분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자식을 이 학교에 보낸 학부모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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