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반도체 업체들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지만 반도체 업체들은 인공지능(AI), 5세대(G) 이동통신 등 신기술에 적용되는 반도체 수요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M&A로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ARM 인수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빅딜이 성사된다면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내달 서울에서 ARM 인수를 논의할 예정이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모회사다.
이같은 사실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21일 출장 후 귀국길에서 "손 회장의 ARM 인수 제안을 들어보겠다"고 언급하면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발언으로 삼성전자의 ARM 인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연초 대형 M&A 계획을 공식화 한 이후부터 ARM은 삼성의 M&A 후보군으로 거론돼왔다. ARM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IT 기기의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ARM 설계 기반의 AP 시장 점유율은 90% 이상이다. ARM은 자체적으로 반도체 아키텍쳐(설계도)를 구축한 후 라이선스를 판매해 수익을 낸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 '엑시노스'도 ARM의 설계 기술에 기반한다.
올 초 다시 시장 매물로 나온 ARM 인수에 다수의 반도체 업체들이 눈독을 들여왔으며, 삼성을 비롯해 인텔, 퀄컴, SK하이닉스 등이 ARM 인수에 관심을 보여 왔다.
다만 예상 인수가격이 70조~100조원 수준으로 관측되는데다 반독점 규제 심사를 수월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통신칩 강자 브로드컴은 지난 5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분야를 주도하는 VM웨어를 610억 달러(약 87조 원)에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 델의 EMC 인수 다음으로 큰 기술기업 M&A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인수로 브로드컴은 통신칩 부문과 소프트웨어(SW) 부문 매출 비중이 비슷해져, 한층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인텔의 라이벌로 부상한 AMD는 용도에 따라 설계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FPGA) 반도체 강자 자일링스를 지난 2월 60조원에 인수했다. 데이터센터에서 AI를 통한 데이터 처리 성능이 중요시되면서 경쟁이 처리 속도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AMD는 경쟁사들이 규제당국의 M&A 승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문턱을 넘었다. 각 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깐깐한 심사 잣대를 들이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불발됐다. 그러나 리사 수 CEO 등 AMD 경영진은 두 회사의 결합이 시장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각 국 규제당국을 설득했고 이는 통했다.
이처럼 반도체 거물들이 M&A에 적극 나서는 건 5G, AI로 기술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자체 능력만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기반 기술은 물론 인재 확보 차원에서도 M&A를 추진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중앙처리장치(CPU) 절대 강자인 인텔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특정 분야에만 강점이 있다고 시장을 평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도체 업체들의 M&A가 업체간의 의지, 자금만으로 성사되는 건 아니다. 최근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시도했지만 규제 당국의 심사 관문을 넘기지 못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고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지분 투자 등을 통해 M&A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기 위해 인수 불발 시 피인수 기업에 보상금을 지불해야하고 인수 효과도 예단하기 어려워서 리스크가 크다"며 "M&A 규제 심사도 반도체 보호주의 때문에 장벽이 높아져 컨소시엄을 구성해 M&A를 추진하려는 경향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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