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이지만, 소비자 보호나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소홀한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들이 내 휴대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겨 수십, 수백만원의 요금이 청구돼도 "자식을 잘못 키운 탓"일 뿐이고, 내 블로그나 카페에 적은 글이 갑자기 삭제당해도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 한마디면 그만이다.
디지털중독에 대해 교육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물건을 판 회사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이 판결이 있기 까지 국내 최대 로펌중 하나인 법무법인 율촌(SK텔레콤 소송대리인)을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인 주인공은 변호사 경력이 2년밖에 안된 법무법인 문형의 김보라미 변호사(31)다.
1년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그는 한푼의 수임료도 받지 않았고, 주말과 연휴를 반납하면서 재판에 임했다. 90년대 학번인 그는 공익소송을 주로 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도 아니다.
신세대 변호사가 대기업과 상대해 IT강국의 뒷그늘을 파고드는 이유는 뭘까.
김보라미 변호사는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해 SK텔레콤이 음악서비스 멜론의 무료체험 이벤트에 참여한 고객을 유료가입자로 전환시켜 손해를 끼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시작해 요금 환불과 10만원 무료통화권 지급 등의 배상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이 소송의 경우 동료 변호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동통신회사의 유료 서비스에 가입돼 10개월간 요금을 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인터넷으로 관련단체를 뒤졌고 스스로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정책위원을 찾아간게 시작이었다.
이번 무선데이터요금 소송이나 공정위와 SK텔레콤간 진행중인 디지털저작권관리(DRM)시정조치 관련 행정소송에 보조참가한 경우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학교때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니 복잡한 기술로 이뤄지는 IT, 통신분야에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법원이 사전에 자세한 설명없이 소비자에게 부과된 무선데이터요금에 대해 (정보이용료까지도) 이동통신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은 통신서비스에 있어 소비자 권리보장을 한 단계 진전시킬 것 "이라고 평가하면서 "법원이 무선인터넷의 경우 통신과 수직적 연관관계가 커서 개방된 인터넷과 다르다는 점도 고려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한 때 피고측이 법원에 제출한 참고서면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왜곡된 주장을 하는 원고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 보고 그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피고(SK텔레콤)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어야 한다"는 문구에 상처입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일 법원판결 이후 "피고측이 항소할 것으로 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