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고정삼 기자]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ETF를 핵심 수익원으로 삼기 위한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러 운용사가 같은 테마의 ETF 상품을 같은 날 상장하게 되는데, 이 때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와 상품 판매 채널을 갖춘 대형사로 자금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에 중소형 운용사들은 상품 차별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지만, 시장을 주도할만한 테마가 아니면 금세 시장의 외면을 받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상품 다변화를 위해 배타적 사용권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시장 후발주자들의 진입이 용이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ETF에 투자된 총 금액을 의미하는 순자산총액은 70조6천57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8년 초(37조9천858억원)와 비교하면 86%가량 증가했으며,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성장하는 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시장 점유율(순자산총액 기준)을 각각 42.54%, 35.79%가량 차지하면서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두 운용사가 전체 시장의 4분의 3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뒤를 KB자산운용(7.62%), 한국투자신탁운용(4.87%), NH아문디자산운용(3.03%), 키움투자자산운용(2.58%), 한화자산운용(2.25%), 신한자산운용(0.80%) 등의 후발주자들이 추격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이 ETF 보수인하와 이색 테마 상품 출시 등 ETF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좀처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선 특정 테마에 대한 ETF 상품 출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운용사별로 수요 조사를 실시하는데, 이 때 상장을 희망하는 운용사들을 묶어서 같은 테마의 ETF를 동시 상장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로 대부분의 자금이 유입되는 실정이다.
개별 상장 방식으로 진행해도 상품 개발 역량이 뛰어난 대형사가 특정 테마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중소형 운용사들은 차별화된 테마를 발굴하는데 전사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시장을 주도할만한 테마가 아니라면 시장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 테마의 ETF를 동시 상장하게 되면 중소형 운용사의 ETF로 자금 유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상품을 먼저 출시하면 일종의 선점 효과를 일부 누릴 수 있는데, 같은 날 동시 상장하게 되면 자금 유입 차이가 확 벌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ETF 상품을 동시 상장하게 되면 대형사에 비해 후발주자들이 어려운 건 분명 사실"이라며 "다만 그렇다고 후발주자들에게 먼저 상장할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도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과창판(科創版) 투자 ETF 4종이 지난달 13일 동시 상장했을 때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의 자금 유입 차이가 뚜렷한 모습이 나타났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차이나과창판STAR50(합성) ETF'가 상장 첫 날 78억원으로 가장 많은 거래대금을 보였다. 뒤이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차이나과창판STAR50(합성) ETF' 50억원, 한국투자신탁운용의 'KINDEX 중국과창판STAR50 ETF' 44억원, 신한자산운용의 'SOL 차이나육성산업액티브(합성) ETF' 19억원으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해 시장을 주도했던 메타버스 테마 ETF에서는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의 차이가 더욱 확연했다. 지난해 10월 13일 동시 상장한 ETF 4종의 상장 첫 날 거래대금을 살펴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Fn메타버스 ETF'가 112억원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K-메타버스액티브 ETF' 47억원, KB자산운용의 'KBSTAR iSelect메타버스 ETF' 14억원,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Fn K-메타버스MZ ETF' 3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가령 자산운용사 6곳이 ETF 상장을 신청했을 때, 동시 상장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상장시키면 제일 먼저 상장하는 운용사가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반대로 마지막에 상장하는 운용사는 상품을 상장시켜도 웬만해서는 잘 되기 어렵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도 동시 상장을 하지 않으면 어느 때는 빨리 상품을 개발해 상장시켜서 좋을지 모르지만, 다음번에 상품 개발이 늦어지면 뒤늦게 상장시키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날에 지명도가 높은 운용사와 낮은 운용사가 같이 상장하면 중소형 운용사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며 "다만 일괄 상장하면 좋은 점이 여러 운용사의 홍보가 중첩되기 때문에 홍보 효과를 높게 가져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은 자산운용사의 배타적 사용권 제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지난 14일 발표했다. 배타적 사용권은 신상품을 개발한 금융투자회사가 일정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신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금융투자회사의 신상품 개발에 따른 선발이익을 보호하고, 금융사 간 신상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신상품을 개발한 금융투자회사가 배타적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투자협회에 심의를 신청하면 심의위원회에서 사용권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심의위원회의 평가 점수에 따라서 배타적 사용권 기간이 차등화돼 부여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배타적 사용권 제도가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활성화를 위해 조율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업계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ETF도 새로운 상품으로써 확실하게 구분할 가치가 있다면 배타적 사용권이 보장될 수 있는데, 이런 부분도 업계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배타적 사용권 기간이 어느 정도까지 보장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차별화된 지수와 테마 상품에 대해 배타적 사용권을 지금 보다 자유롭게 부여한다면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지수나 테마 상품을 일정 기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기대했다.
/고정삼 기자(js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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