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멀리 있어도 보고 싶을 때 호출해! 내 삐삐는 012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 배우 이정재는 “누가 삐삐쳤어?”라며, 맨홀 뚜껑을 열어 제낀다. 지하에서도 잘 터지는 무선호출기를 홍보한 한국이동통신(현재 SK텔레콤) 광고 포스터 얘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K-콘텐츠 위상을 높인 이정재가 10대 마지막에 찍은 광고기도 하다.
◆ 한국전기통신공사 출범
1980년초 당시 체신부는 통신사업을 관할하는 조직이 커짐에 따라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관료적이고 규제적인 체계 틀 내에서 이뤄지는 업무 추진 방식은 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할 이동통신 사업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인식이 싹텄다. 여기에 경영 관리의 문제점마저 드러나게 됐다. 안팎으로 유연하고 빠른 대응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통신사업의 공사화를 검토, ‘통신사업 경영체제 개선방안’을 내놓는다. 결론적으로 이 개선방안은 1980년 12월 19일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짐에 따라 통신사업 공사화가 실현됐다. 발 빠르게 움직인 체신부는 이듬해인 1981년 3월 14일 한국전기통신공사법을 제정하고 공사 명칭 역시 법과 동일한 ‘한국전기통신공사(현재 KT)’로 정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그 당시만 해도 국내 기업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설립된다. 설립자금은 2조5천억원. 전액 모두를 정부가 출자했다. 사원 역시 3만5천87명에 이를 정도였기에 그 수준이 짐작된다.
1982년 1월 4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출발은 화려했다. 단기간 내 그간 적체됐던 여러 통신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특수서비스 도입하고 광통신 매설하는 등 신속한 정보통신화를 이뤄냈다.
◆ 페이저·포킷벨·비퍼 → '삐삐'
국내 이동통신의 시작점을 잡는데 있어 여러 이견이 있기는 하나 이동통신 세대별 상용화 근거를 토대로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지원 단말 ▲고객 서비스 등 주요 조건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보급된 시점으로 제한하면 ‘무선호출기’ 사례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무선호출기’는 국내서 호출음을 의성어로 표현한 ‘삐삐’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영어 이름 그대로 ‘페이저(Pager)’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호출음을 따서 ‘비퍼(Beeper)’라 불렀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고 해 ‘포킷벨(Porket Bell)’, 중국에서는 단순한 형태의 ‘BP기’라고 칭했다. 국내서는 정부 보고서나 사업 문서 등에서 무선호출기와 영어를 혼용해서 사용했다. 언론에서는 ‘담배갑보다 작은 휴대신호기’라고 소개했다.
이같은 무선호출기 서비스는 체신부가 1982년 무선호출 서비스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후 가사회됐다. 같은해 12월 15일 한국전기통신공사(현재 KT)가 실제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당시 무선호출기 서비스는 서울시내 6개 지역에 기지국(안테나)를 설치했다. 서울 을지 전화국에 설치된 무선호출 취급국의 중계를 통해서다. 때문에 서울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다. 전기통신공사가 1만회선 용량을 구축하기는 했으나 무선호출기 초도 공급량은 250대로 한정해 소수만 사용이 가능했다. 당시 무선호출기 가격은 15만원, 가입비는 1천500원, 월 사용료는 1만2천원으로 책정됐다. 물가를 감안한다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무선호출기 초도 물량이 제한됐기에 개통일인 15일 이전 원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전화청약 접수를 받았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신청서와 일반전화가입증명서, 기기값과 가입비 등을 내야 했다. 한정판매(?)이기에 가입은 청약 순위로 결정됐다. 이에 순위결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어야 했는데, 관공서 등이 청약 1순위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무선호출기는 7자리 숫자 번호가 부여됐다. 초기에는 미리 정해놓은 자신의 집이나 회사, 기관 등으로 호출대상이 고정화돼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장비 성능과 전파 특성상 전파 장애가 비교적 심한 지하도나 지하철 등에서는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선호출기는 도입 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전화청약접수 마감일은 14일로, 바로 전날인 13일까지 1천500여대 신청 접수가 이뤄졌다. 대략 8대1의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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