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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15>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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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았어요. 손주는 코넬대학교에서 장학생이었고, 우리 손주가 졸업식 때 상을 받는데 이름을 불렀더니, 모두 웅성웅성했어요, 왜냐? 우리 손주가 미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다닌 아이지만, 이름을 폴이니 존이니, 미국 이름으로 안 바꾸고 한국이름을 고수했으니까. 우리 딸이 자식 교육을 잘 시켰다니까.”

요양병원에서 만난 나를 붙잡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 박 할머니.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 딸과 손주 사진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 할머니의 88년 생애가 내 앞에서 펼쳐지려는 순간이다.

“할머니, 왜 미국에 사시지 않고 한국에 왔어요.”“내가 장루 환자요. 그래서 수술도 하고, 미국에서 사는 게 불편하니까, 우리 아들이 나를 데리러 왔지. 한국에 오니까, 여기 병원을 예약해 뒀더라고.”“아드님은 자주 오시나요?”“우리 아들도 박사고 연구원이요. 나라 일하느라 바빠서... 그렇게 바쁜 사람한테 오라 가라 할 수 있나. 그래도 오면 좋재.”

장루환자라서 배에다 배변주머니를 차고 다니지만 그 외에는 너무 정정하시다. 귀도 밝고, 시력도 1,5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 여대에서 수석을 했다고 하신다.

“할머니, 여기가 마음에 드세요?”“우리 아들이 여기가 제일 좋은 데라고 했어. 제일 비싼 데라고. 그러니 마음에 들어야지.”“할머니, 오시기 전에 여기를 둘러보고, 결정하신 게 아니군요.”“.....”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요양병원이라 대부분 와상이나 치매로 입원중인 환자들이다.

할머니는 방 마다 돌아다니며, 친구를 찾지만 누워서 꼼짝 못하는 이웃들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 치매환자 때문에 건물 출입구가 잠겨 있어 혼자서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매일 노래교실도 있고, 그림수업도 있다. 프로그램에 대해 물으니, 반색을 하신다.

“내가 거기 안 가면 뭐하노? 여기에서... 지루한데.”“밖에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뭐 여기가 좋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몸으로 어디를 가겠는가? 다 좋다. 의사가 있어서 좋고, 내가 여기 있으면 자식들이 안심하니까 좋다.”

요양병원이 최근 급성질환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요양병원에 맞지 않는 노인들이 장기 입원하는 사례가 아직도 여전하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면 안심이 되고, 요양원에 모시면 불효하는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요양병원에 모시고 올 때, 아무 말 없이 모시고 와서, 마치 며칠 뒤에 데리러 올 듯이 하고 사라져 버린다. 며칠 동안 자식을 기다리다가, 결국 여기가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울음보를 터트리는 노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중증 질환으로 의료진이 늘 보아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요양병원은 노인들의 생활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 4~6개의 베드가 좁게 들어선 병실, 칸막이도 없이 기저귀를 가는 무신경, 외국인 간병인에 맡겨진 수발, 이런 문제만은 아니다. 요양병원은 아직도 충분히 자립생활 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박 할머니를 보면서 100세 시인으로 유명했던 일본 할머니 시바타 도요가 생각났다.

바람이유리문을 두드려문을 열어주었지

그랬더니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또 같이 웃었던 오후.

(바람과 햇살과 나/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 한 뒤 이 십 여년을 혼자 살았다. 아들이 ‘무료함을 달래는 데 시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 9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99세에 그녀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두었던 100만 엔을 털어서 자작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은 15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노인이란 이름으로 지워지고 잊혀진 외로움, 감사, 감수성이 말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침대 머리맡에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 봉지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찾아와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할머니가 생각났다. ‘행복한 사람’ 타사 튜터. 그림책에 나올 법한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프를 끓이고 인형을 만드는 할머니, 93세에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음미하며, 여러 권의 책을 내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동화로 만들었던 할머니.

박 할머니의 삶이 요양병원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귀도 밝고 눈도 밝고 총명하신 할머니가 요양병원 말고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 이 곳에 만족하며 살려고 하신다. 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흘려 보내며, 새장 아닌 새장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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