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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습지 지리여행(Wetland Geo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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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마다 상쾌하다. 진짜 기분이 좋아진다. 하늘거리는 녹색 물결에 마음도 덩달아 바람을 탄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시원한 공기도 참으로 달다. 어디서 이런 사치를 맛볼 수 있단 말인가? 습지 앞에 서면 지구 생명체 일원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습지란 무엇일까? 그렇다. 글자 그대로 습한 땅이 습지(濕地)다. 그래서 영어로도 ‘wetland(젖은 땅)’라 쓴다. 일시적이나 영구적으로 물로 젖어있는 곳이 습지인 것이다. 습지는 생명체 보고다. 수서동식물을 비롯한 온갖 생명체의 삶터다. 계절마다 보이는 야생동식물도 다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습지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습지의 '물'을 구경해 보기로 하자.습지의 본질은 물이다. 물을 알아야 동식물도 보이는 것이다. 물이야말로 둘도 없는 귀중한 생명체다.

우선 습지는 그곳이 어디냐에 따라 연안습지와 내륙습지로 구분된다. 연안습지라 함은 갯벌을 말한다. 갯벌을 제외한 습지가 내륙습지다. 내륙습지는 다시 산지습지와 하천습지로 나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람사르 1호 습지인 대암산 용늪은 산지습지의 대표주자다. 한강하구 습지나 우포늪은 하천습지의 대명사다.

산지습지는 산에 물이 고인 곳이라면 어디든 만들어진다. 산행 중 물이 흥건한 지역을 발견했다면 그게 바로 산지습지인 것이다. 산정상이나 산허리 아무데든 상관없다. 산에 내린 빗물이 산체(山體)로 스며들어 흐르다 다시 경사가 완만한 데로 배어나오는 곳에 산지습지가 생기는 것이다.

하천습지는 강 한 가운데의 모래톱이나 주변 저지대에서 흔히 발견된다. 홍수 때 강물이 쉽게 넘치는 곳에 하천습지가 생기는 것이다.

습지를 재미나게 구경하려면 지하수를 조금은 알아야 한다. 지하수를 알면 습지를 구경할 맛이 넘친다. 일반적으로 지하수면이 낮으면 습지가 생기기 어렵다. 지하수면이 높아야 지표면이 물로 쉽게 포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천 배후습지처럼 배수가 불량해도 습지가 형성되나 습지는 기본적으로 지하수가 만든다. 그럼 이제부터 인제의 용늪, 신안의 장도습지, 제주의 물영아리오름습지 등 3개의 람사르 습지와 도심지 습지를 대표하는 서울의 석촌호수를 대상으로 습지 물 여행을 시작해 보자. 아래에 언급된 습지별 주요 관전 포인트를 기억하며 말이다.

사례 1.

4,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대암산 용늪(0.1㎢)은 해발 1,280m에 위치한 우리나라 유일의 고층습원이다(사진 2).1 1967년 충북대 강상준 교수에 의해 발견된 용늪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우리나라 람사르 습지 제1호로 등록됐다. 여기서 우리는 용늪을 습원이라 부르는데 주목해야 한다. 습원(濕原, moor)이란 기온이 낮아 유기물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아 생긴 넓은 토탄(土炭, peat)층 습지를 말한다.

두께 1~2m인 용늪의 토탄층은 지하수를 가득 담고 있다. 용늪에 내린 빗물은 갑자기 많은 양의 지표수를 흐르게 한다. 늪 전체가 물로 가득 차있어 콘크리트 바닥에 비를 내린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용늪을 에워싸고 있는 산사면은 용늪의 물탱크다. 사면 내부를 통해 꾸준히 용늪으로 물을 공급해 주고 있다. 안개가 잔뜩 껴도 용늪의 물은 불어난다. 증발산량이 억제됨은 물론, 안개비가 촉촉이 내려 물을 공급해 준 덕분이다.

용늪은 늪 밖으로 많은 물을 배출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 결과, 큰용늪으로부터 빠져나가는 물량은 연간 약 40만 톤인 것으로 나타났다.2 이는 동네에 있는 길이 25m 수영장의 1천 배 정도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3 1㎢ 면적에 4,000mm의 비가 내린 것과 같은 물량이다. 물 생산 공장으로서의 용늪이 재평가되어야 하는 대목이다.

흑산도 옆에 위치한 장도(長島)라는 섬에는 용늪과 얼추 비슷한 크기의 습지가 있다. 바로 장도습지다(사진 3). 람사르 습지인 장도습지(0.09㎢)는 섬 정상부에 위치한 도서 유일의 산지습지다. 장도습지의 물은 계곡을 통해 섬 끝자락에 설치된 식수댐으로 흘러들어 장도 주민들의 생명수가 되고 있다. 장도습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섬은 무인도가 됐을 것이다.

장도의 지하수 관측 자료를 보면 지하수가 흥미롭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1).
이 그림을 보면 지하수위가 사인 커브를 그리면서 감소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증발 때문이다. 낮 시간 동안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면 지하수위가 급격히 감소하나, 밤이 되면 지하수위가 다시 올라간다. 증발이 멈추었기 때문에 지하수위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지하수위가 고점을 찍게 된다. 그 후 낮이 되면 다시 증발이 일어나 지하수위가 낮아져 저점을 찍게 되고, 밤새 회복된 지하수위는 또 다시 그 다음날 아침에 고점에 달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지하수위가 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그래프는 산지습지 지하수가 직선상으로 감소하지 않고 매일 증발의 영향을 받아 사인커브를 그리며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걸 우리는 그냥 일직선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경이로운 미세 일변화를 놓친 결과다. 어느 산지습지에서나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면 이런 지하수위 감소패턴이 발생될 것이다. 위의 그림은 대학교재에 인용해도 좋을 그래프다. 이 그래프를 통해 장도습지의 지하수는 하루 약 1cm 속도로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례 3.

땅 속의 지하수를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물 공부를 하다보면 지금 몇 m아래쯤 지하수가 있으며, 그 지하수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제주도 오름의 정상에는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전습지며,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는 물영아리오름습지(0.004㎢)5가 그 대표 예다(사진 4). 그렇다면 오름 정상의 분화구에 담긴 물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물영아리오름습지는 지표수가 습지 밖으로 흘러나갈 수 없는 폐쇄구조를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습지 수위가 거의 같은 기울기로 상승하며, 비가 그치면 수위가 매우 일정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직한 규칙성에 웃음이 절로 난다.

사례 4.

최근 석촌호수가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석촌호수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송파강의 옛 유로에 만들어진 호수다(사진 5). 따라서 석촌호수는 광의로 하천습지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석촌호수의 물은 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송파강이 만든 범람원 위에 놓인 이 석촌호수의 수위 변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가 석촌호수 수위를 자동 관측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1개월 전부터다(그림 3). 2013년 11월 29일에야 비로소 석촌호수에 자동수위계가 처음 설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석촌호수의 물량은 어느 정도나 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호수면적 곱하기 호수깊이’하면 될 것이나, 이 두 수치를 정확하게 알 길이 없어 석촌호수에 담긴 실제 물량은 아무도 모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3cm의 수위 저하는 석촌호수에 넣고 있는 한강물 펌핑량을 토대로 계산해 볼 때 약 8,500톤에 달하는 물량이다.7

습지의 물은 움직인다. 물 순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습지 앞에 서서 습지의 물 이동에 대해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쉬운 일도 아니다. 습지와 친숙해지려면 수문(水文)8 자료를 조금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자료들이야말로 습지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습지 탐방객들에게 습지의 물을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알릴 수 있을까? 람사르 습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보호습지들의 물 관련 콘텐츠의 체계적 홍보가 절실히 요망되는 시점이다.

<각주>1. 대암산 용늪은 큰용늪과 작은용늪으로 구성되나, 현재 작은용늪은 습지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정부는 큰용늪의 보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 가뭄과 호우 등 극도의 기상이변이 없는 수년(water year)을 기준으로 한다.

3. 길이 25m, 수심 1.4m의 6레인의 수영장을 기준으로 한 값이다.

4. 용늪 방문객은 용늪의 보존을 위해 절대로 습지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다.

5. 이 면적은 물영아리오름습지 만의 순수 넓이를 나타낸 것이다.

6. 일반적으로 석촌호수의 평균 수심은 4.5m, 면적은 217,850㎡로 알려져 있으나 그 수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7. 석촌호수에 주입되고 있는 한강물량을 토대로 계산한 값이다.

8. 수문(水文)이란 지표수와 지하수의 물 순환의 특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수문학(水文學, hydrology)이라고 한다.

<인용 자료>1. 박종관, 2008, 물영아리오름습지 보호지역의 수리·수문, 2008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39-55.

2. 박종관, 2010, 2010년 대암산 용늪 수문관측 조사 자료집, 원주지방환경청, p.317.

3. 강상준, 조규송, 최기룡, 2010, 대암산 용늪, UUP, p.290.

4. 박종관, 주국화, 2011, 대암산 용늪의 유출 패턴에 관한 연구, 한국지형학회지, 18-4, 271-282.

5. 박종관, 2013, 장도산지습지의 수리·수문, 2013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I), 환경부 국립습지센터, 451-478.

6. 박종관, 2014, 석촌호수의 거동, 녹색송파위원회 세미나 자료집, 113-150.

글 : 박종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http://jotra.com), 문화체육관광부 생태관광컨설팅위원장(MP)사진, 그림 : 박종관 교수 제공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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