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러다이트(Luddite)인가, 정보인권침해인가.'
52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3월부터 가동되는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놓고 교육부와 전교조가 '힘 겨루기'를 하고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학생과 교사에 대한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과 교사에 대한 노동 통제 및 보안 문제 등을 우려해 이 시스템 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부 문제는 있지만 3월부터 가동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10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초 20개월로 예정된 사업 기간을 무리하게 12개월로 단축해 실시하는 바람에 사용자 교육과 시범운영이 제대로 안돼 일부 기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교육부는 이 지적을 받아들여 당초 계획을 변경해 정식 개통 시기를 올 3월로 6개월 가량 연기했다고 합니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클라이언트서버(CS) 방식을 인터넷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학교마다 자체 서버(중대형 컴퓨터)를 두고 시스템을 별도로 관리하던 것을 인터넷을 통해 중앙에서 집중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정보를 중앙에서 관리하게 되는 셈이지요.
이에 대한 두 기관의 갈등 요소는 크게 3가지입니다. 교사와 학생에 대한 정보인권 침해 여부, 노동 통제, 보안 문제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교조 서울시지부 이성대 사무처장은 "새 시스템은 부모 이혼 여부 등 200가지 이상의 학생 정보를 입력하게 돼 있고, 교사도 마찬가지"라며 "이들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인권 침해 소지가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최병만 사무관은 "사실과 다르다"며 "입력사항은 법적 근거에 따라 인사기록카드와 생활기록부로 제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채 사무관은 "이들 사항은 이미 과거 시스템에서도 입력한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이번 시스템이 실효성 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입력케 해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정보화를 통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만 입력하도록 했다고 주장하는 셈인 것입니다.
이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전에 시스템 개발자와 이를 사용할 교사 사이에 미리 충분히 조율할 수 있었던 부분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노동 통제 문제도 논란의 대상입니다. 전교조는 이 시스템이 교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교사에 대한 평가가 왜곡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교사들이 교육 그 자체보다 자신에 대한 평가의 툴로 쓰이게 될 이 시스템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이 변질될 수도 있다는 거죠.
이 처장은 "그렇게 되면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하기 보다 하지도 않은 일을 꾸며내 한 것처럼 거짓자료를 입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미 모든 부처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IT로 무장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 부문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학부모가 참여할 공간을 넓혀준다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보화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사관리를 제대로 하자는 뜻은 있지만 적어도 교사를 감시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돼서는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보안도 논란거리입니다. 전교조는 교육 관련 모든 자료가 인터넷에 노출되면 해킹 등에 의해 정보가 왜곡될 우려가 크다는 겁니다. 학생 성적표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거죠. 따라서 인터넷으로 공개해야할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이 구별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일반행정 업무는 인터넷으로 처리해도 되지만 학생과 관련된 학사 업무나 교무, 보건, 체육 등은 기존의 폐쇄적인 CS 시스템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겁니다.
교육부는 이 문제에 대해 기술적으로 풀 수 있다고 봅니다.
요약하면, 전교조는 새 시스템이 부분별한 정보 공개로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보는 반면, 교육부는 과거 산업혁명 때 일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일부 교사가 IT로 촉발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어 보입니다.
교육부의 일 처리 방식이 그렇습니다. 교육 기관이건 일반 기업이건 IT로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것은 시대적인 대세입니다. 이점에서 교육부가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변화된 세상에 맞춰 교육 행정도 변화하자는 의도이지요.
그러나 변화는 그게 대세라 할지라도 준비될 때만 제대로 진행됩니다. 그렇잖으면 커다란 진통이 불가피합니다. 교육부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미 지적을 당한 바 있습니다. 520억 원을 투자해 새로운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하고도 일선 교사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는데는 게을리 했던 것이지요.
막무가내의 관료주의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변화를 학교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각급 학교의 최고 책임자가 변해야 할 것입니다. 책임자는 아니더라도 힘있는 교사들이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잖습니다. 각급 학교의 정보담당 교사는 젊긴 하지만 힘없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귀찮고 실적 쌓기에도 도움이 안되는 업무이다 보니 교장과 교감은 물론이고 고참 교사는 '나몰라라' 하고 나이 어린 교사가 반강제적으로 떠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가지고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지요. 오히려 불평과 불만만 쌓일 게 뻔하고 교사 사이에도 반목만 생길 것입니다. 점잖은 교사들이 서로 "내일이 아니다"고 떠넘기는 상황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이는 전산시스템을 이식하기 전에 일선 학교의 이같은 분위기를 먼저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에 시행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산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과 사람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 NEIS는 '갓 쓰고 양복 입은 꼴'입니다. 갈등이 불가피한 거죠.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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