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1988년 이후 24년 만에 규약 변경안을 승인했다. 통신 분야 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관할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ITU는 14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통신세계회의(WCIT-12)에서 인터넷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갖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규약을 승인했다.
규약 변경안에 대해 미국과 많은 유럽권 국가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중동 지역 국가들이 밀어부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미국 주도 구도에 러시아 등 반기
ITU의 이번 회의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인터넷 거버넌스 구도에 대해 러시아 등이 반기를 드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러시아 등은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해서는 모든 나라가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터넷 도메인 정책을 관할하고 있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는 미국 상무부 산하 기관으로 출범한 단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규약 변경 자체가 단순한 국가간 권력 다툼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칫하면 ITU를 통해 인터넷을 규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통과된 규약에는 각국 정부들이 국제 통신 서비스 접속하고 스팸 등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규정했다. 미국 등 규약 개정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이 조항이 인터넷 검열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덴마크, 호주, 노르웨이, 코스타리카, 세르비아 등은 개정된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서명하지 않은 나라들은 이번에 변경된 규약을 적용받지 않는다.
ITU가 규약 변경안을 통과시키자 미국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로버트 맥도웰 커미셔너는 "인터넷 자유를 옹호하던 일부 국가를 포함한 대다수 ITU 회원국들이 국제 기구가 인터넷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오랜 합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맥도웰 커미셔너는 또 "오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리는 ITU 규약 협상 때는 훨씬 더 위험한 규정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글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업체들도 ITU의 행보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구글은 인터넷의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규약 협상에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비영리단체인 모질라 역시 ITU의 이번 행보는 '오픈 인터넷'을 위협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회의 시작 전부터 열띤 공방
ITU가 규약을 변경했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중동을 비롯한 일부 지역 국가들은 ITU에 인터넷 관련 규정이 없을 때도 인터넷을 검열하고 통제해 왔다.
또 ITU는 개별 회원국들에게 이번에 통과된 규약에 서명하라고 강요할 권한도 없다. 또 변경된 ITU 규약을 준수하도로 강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자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IT 전문 매체인 아스테크니카는 많은 나라들이 변경된 규약에 서명할 경우엔 ITU가 인터넷 표준을 만드는 포럼 역할을 할 수도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ITU 규약 변경 문제는 회의 시작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제시민단체인 오픈미디어 재단은 '지구적 인터넷 자유를 지키자(Protect Global Internet Freedom)'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캠페인 사이트(www.protectinternetfreedom.net/)를 통해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들로부터 서명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 아버지로 통하는 빈트 서프과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등도 ITU의 이번 규약 개정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