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엔 시스코 강풍이 강하게 불었다.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의 2001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양호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증시가 초강세를 보인 것.
이날 시스코는 지난 4월 27일 마감된 2001 회계연도 3분기에 매출 48억 달러에 순익 7억2천900만 달러(주당 10센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의 실적 전망치인 주당 9센트 순익을 웃도는 실적.
또 지난 해 같은 기간 47억3천만 달러에 비해 2% 정도 향상된 수치다.
◆ 나스닥-다우 지수 ‘시스코 훈풍’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우지수는 전일 대비 3.10%, 305.28포인트 급등한 1만141.83포인트를 기록해 단숨에 1만선에 재진입했다.
나스닥 역시 폭발적인 급등세를 보이며 7.78%, 122.47포인트 수직 상승한 1696.29포인트를 기록했다.
시스코 주식도 24% 상승, 지난 1990년 2월 상장된 이래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 마디로 시스코의 날이었던 셈.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델컴퓨터 등도 ‘시스코 효과’에 힘입어 동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처럼 시스코의 실적 호전으로 나스닥 지수가 폭등하면서 ‘IT 경기 회복의 신호탄 아니냐’는 기대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 전반적 호황 신호탄으로 보긴 힘들어
시스코의 판매 실적이 증가세를 기록한 것은 5분기 만에 처음이다. 물론 2% 성장세는 시스코가 한창 잘 나가던 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루슨트 테크놀러지스, 노텔네트웍스 등 경쟁업체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이다. 지난 분기 루슨트는 35억2천만 달러의 판매 실적을 기록, 전년에 비해 40%가 추락했다.
노텔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분기 판매 실적이 49% 폭락한 29억1천만 달러를 기록한 것.
이처럼 통신장비 업체들이 전반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2% 성장세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시스코의 분기 실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업계 전반의 실적 호전 신호탄으로 보기 힘든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황 탈출 신호탄이라기 보다는 시스코 자체의 구조조정 노력의 결과물이란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 주문량 증가보단 경비 절감이 큰 역할
시스코가 소폭이나마 분기 실적 성장세를 기록한 것은 매출보다는 경비 절감에 힘입은 바 크다.
시스코는 지난 분기 연구개발 비용 절감을 비롯, 마케팅 및 관리 비용을 크게 줄였다. 이에 따라 운영 경비를 42억 달러에서 21억9천만 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또 지난 해 11억7천만 달러를 지불했던 리스트럭처링 비용을 없앨 수 있었던 것 역시 분기 실적 호조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존 챔버스 회장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이날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 “불황에 종지부를 찍고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챔버스의 이 같은 경고는 전 분기에 비해 실적이 제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챔버스 회장은 2001 회계연도 4분기 주문량이 3분기에 비해 5%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이 기간 동안 수요가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 수준인 셈이다.
◆ ‘시스코 효과’ 장기화되긴 힘들 듯
컴퓨팅 업계에서 시스코의 실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주로 대기업들에게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컴퓨터 관련산업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역시 시스코의 실적 예상치 등을 통해 다른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데스크톱 등 장비 구입량을 예측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스코의 분기 실적이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를 웃돌았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텔, 델, 주나이퍼 네크웍스, AMD 등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시스코의 실적이 주문량 증가보다는 경비절감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에서 ‘시스코 효과’가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긴 힘들다. 챔버스 회장 역시 “대부분의 고객들은 아직 투자에 소극적이다”고 말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통신 애널리스트인 제프리 카간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반등세는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소식이 장기적으론 호재가 될 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불황의 늪을 탈출했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시스코 효과’가 IT 산업 전체에 훈풍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경비 절감보다는 주문 증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투자자들 역시 바로 이 같은 ‘시스코 효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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