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기자] 지난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퇴장으로 파행 운영을 면치 못했다.
안건이 민감했다. 방통심의위가 설립된 후 최초로 소속 위원을 심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박경신 위원이 블로그에 게재한 성기사진, 화약 제조법 등 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위원 간 본격적인 설전은 박만 위원장이 "박경신 위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자"고 말한 뒤부터 시작됐다. 소속 위원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박경신 위원을 평가하고, 위원회 전체 입장으로 만들어 공개하자는 취지였다.
야당 추천 위원인 김택곤 상임위원, 장낙인 위원은 출장 때문에 회의에 참석치 못한 박경신 위원이 돌아온 뒤 논의하자며 위원장과 다른 위원들을 설득시켰다.
하지만 박만 위원장을 비롯 정부, 여당 추천 위원들은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치 6대 2로 싸우는 꼴이었다. 일부 위원들은 설전을 벌이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끊는 등 비신사적 행동을 하기도 했다.
김택곤 위원은 "본인이 없는 데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방통심의위 앞날을 놓고 견해가 다른 점이 있으니 좀 더 차분히, 이성적으로 논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말했다.
장낙인 위원도 "박경신 위원 행위에 대해 질의를 하던 문책을 하던 비판을 하던 답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박경신 위원의 입장을 동의하더라도 그를 대변할 수 없다. 당사자가 없는 가운데 이 문제 논의는 무리"라고 만류했다.
이에 박만 위원장은 "그 동안 대담, 인터뷰를 통해 박 위원이 어떤 뜻을 가지고 이런 일을 했는지 향후 계획이 뭔지 알 수 있다"고 회의를 진행하자는 뜻을 꺽지 않았다.
권혁부 부위원장도 "(박경신 위원이) 파장을 낳았기 때문에 차제에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 의사를 종합적으로 담아 전체 의사를 표명할 필요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김택곤, 장낙인 위원이 회의실에서 퇴장했고 여당 추천 위원들의 의견만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식 입장'으로 만들어져 배포됐다. 이는 소수의 의견을 담지 못한 반쪽짜리 입장일 뿐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물론 방통심의위는 문제 해결이 시급할 경우 다수결을 통해 사안을 빨리 처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방송, 통신을 단순히 '심의'할 뿐인 방통심의위의 회의에서 정쟁이 난무하는 국회의 모습이 보이는 건 왜일까. 여야가 안건을 두고 다투다가 결국 '쪽수'가 많은 여당이 다수결로 단독 처리하는 행태 말이다.
최근 방통심의위가 심의 안건을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방통심의위의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방통심의위가 다수결로 이뤄지는 합의제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은 정부, 여당에 의해 방송통신 내용들을 통제받고 있다는 의심을 키울 수 밖에 없다.
방통심의위는 숫자의 힘을 내세워 안건을 처리하는 구태를 버리고 공존의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한 채 한쪽 목소리만 담긴 입장을 '방통심의위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하는 일이 계속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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