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이 정부로부터 조건부 합병인가 승인을 받았다.
오랫동안 숨죽여왔던 011-017 두 사업자에게는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고 PCS사업자들에게는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두 사업자들이 합병 인가 승인을 받음에 따라 우리나라에는 가입자 1천520만명(2001년 12월 기준)에 연간 매출액이 8조원을 상회하는 초거대 이통사업자가 탄생하게 됐다.
문제는 정부가 부과한 합병 조건들.
정보통신부는 유효경쟁 구축을 위한 추가조치 시행과 무선망 개방의 의무화, 상호접속 허용 등을 골자로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했다.
이중 논란이 되는 부분은 '유효경쟁을 위해 정통부 장관이 추가 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의 13번 조항이다.
지금까지 말로만 무성했던 접속료 조정과 마케팅 규제 등 정부의 유효경쟁체제 구축(비대칭규제) 정책이 합병 조건을 빌어 명문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통업계는 궁금증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 조건이 앞으로의 모든 사업 과정에서 질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PCS 사업자들도 조건의 모호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 역시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상태로 다만 앞으로 점유율 등 시장 경쟁 추이와 상황 등을 감안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은 '미래의 조건'을 전제로 합병을 인가받았으며 이통시장은 상황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합병 조건을 두고 끝없는 전략전을 치르게 됐다.
◆숨겨진 합병 조건들
정통부는 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의 합병인가에 총 13개 조건을 붙이고 앞으로 3년동안 반기별로 조건 이행 여부를 검사, 위반시 강력 징계 조치할 방침이다.
징계 방법으로는 전기통신사업법이 정하는 제재와 과징금 이외에 합병인가 취소와 1년이내의 사업정지 등 초강력 조치들도 있다.
◇마침내 열리는 011 무선망
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의 합병을 인가 승인하며 정부가 가장 명확하고도 뚜렷하게 완성시킨 경쟁 규정은 무선인터넷 망개방과 상호접속의 명문화다.
정통부는 이번 합병 인가 조건으로 ▲무선데이터서버(IWF)를 연동지점으로 한 무선망 개방과 ▲기간통신 뿐 아니라 별정과 콘텐츠, 인터넷 접속사업자를 두루 망라하는 망연동 허용을 명문화시켰다.
이들은 초미의 관심 사항이면서도 지금까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던 것들.
특히 IWF를 연동지점으로 한 무선망 개방은 SK텔레콤의 반대가 심했던 부분으로 이번 합병 조건에 포함되면서 마침내 해결점을 찾았다.
KT를 비롯, SK텔레콤에 011 무선망 개방을 요구해왔던 사업자들은 수개월을 기다린 끝에 공식적으로 망접근 권리를 따낸 셈이다.
상호접속 조항 역시 정부가 무선망 개방과 데이터통신시장 활성화를 위해 고민해왔던 부분으로 011-017의 합병과 함께 해결책을 찾게됐다.
전기통신사업법에는 상호접속 대상이 기간통신사업자로 한정돼 있을 뿐 별정통신사업자나 콘텐츠사업자(CP)나 인터넷접속사업자(ISP)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기간통신사업자들이 기타 별정사업자의 망연동과 같은 상호접속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정부가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단말기 보조금 법제화의 단초 마련
단말기 보조금 법제화 역시 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의 합병을 계기로 명문화됐다.
단말기 보조금 법제화는 아직 국회를 정식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이통 사업자들 사이에서 일부 찬성과 일부 반발을 동시에 자아냈던 것.
정통부는 그러나 합병 인가 조건에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와 '단말기보조금 법제화시 그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을 붙여 보조금 법제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정부가 제시한 합병 인가 조건에는 '합병인은 다른 이통사업자와 동일하게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해서는 아니되며', '위탁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이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정통부는 SK텔레콤이 단말기 보조금 금지를 위반하면 지금까지의 과징금은 물론 합병 허가 취소나 1년이내의 사업 정지 등 초강력 징계를 구상하고 있다.
◇이용자 보호는 필수
정통부는 이밖에 ▲011-017간 망내 통화할인 금지 ▲ 통합법인 출범에 따른 약관 통합과 ▲ 017 사용자의 요금전환 보장 ▲ 통화품질 유지 ▲ 가입자 번호의 유지의무 ▲ 번호사용계획 제출 ▲ 보호대역 주파수의 사용 불가 ▲과징금 승계 등을 조건으로 요구했다.
이들 조건의 공통점은 합병에 따른 이용자 불편을 최소화하고 지금까지 유지돼 온 통신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비단 대상이 SK텔레콤이 아니어도 누구나 합병을 한다면 필수적으로 부과되는 조건들이다.
◆미완의 합병 조건과 남은 과제들
'합병 조건은 완성되지 않았다'
정통부가 제시한 합병 조건의 특징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동적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정통부가 부과한 합병 조건에는 ▲ SK텔레콤이 합병 인가 후 90일 이내에 조건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 3년간 반기별로 이를 보고하도록 돼 있다.
특히 정통부는 ▲정통부장관의 판단하에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추가 조치도 시행할 수 있음을 조건에 포함시켜 날카로운 '규제의 칼'을 손에 쥐었다.
시장 경쟁 환경에 따라 정부가 유효경쟁정책을 펼 경우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은 합병 조건에 따라 반드시 순응해야 함을 명확히 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행여부에 대한 점검 기준과 추가 조건들의 시행 시기 및 내용에 있다.
SK텔레콤이 수립한 합병 조건 이행 계획 및 실천 정도에 대해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징계의 대상 역시 뚜렷하지 않아 앞으로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정통부 장관이 시행하겠다는 추가 조건은 더욱 큰 논란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접속료 차등화를 비롯, PCS사업자들이 주장해 온 마케팅, 판촉 제한 등이 모두 이 조항의 우산아래 있다.
SK텔레콤은 추가 조건의 내용과 형식에 불안해 하고 있고 PCS사업자들 역시 불투명한 미래에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PCS사업자들은 특히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냐며 조건의 모호함을 지적하고 있다.
LG텔레콤은 "현재에도 이동전화 시장은 심각하게 경쟁이 위축돼 있으며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역시 고민하기는 마찬가지. 아직 이렇다할 답은 없다. 다만 앞으로의 시장 추이를 보아가며 규제정책을 완성해 갈 뿐이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무선사업자간 접속료 차등화는 정부와 이통사업자들의 고민과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규제 역시 정부와 사업자들에게는 한 가지 가능성일 뿐 완성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윤경기자 y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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