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력 디스플레이 업체의 대표이사는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의 날은 있는데 디스플레이의 날은 왜 없느냐"고 아쉬워했다.
따지고 보면 반도체보다 액정표시장치(LCD)가 매출이 더 큰 데 국제 무역 분류 코드에 모니터 일부 품목이 빠져 정부 집계에 안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품목에 포함시키려면 세계 통용 코드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그는 "'반도체-디스플레이'라고 통칭하는 순서가 굳어 있어 안타깝다"면서 "'반도체의 날'처럼 '디스플레이의 날'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산업으로 반도체가 첫 손에 꼽히지만 LCD를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 점유율을 50% 이상 차지하고 있는 LCD도 우리의 대표적인 '효자 산업'이다.
◆ 축구장 1만개, 여의도 3배 면적 생산
지식경제부의 6월 발표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패널은 최근까지 12개월 연속 수출액이 증가한 유일한 IT 품목이다. 5월 29억1천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3월 28억4천만 달러, 4월 28억4천만 달러에 이어 3개월 연속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다.
이 중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각각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차지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서치가 집계한 4월 대형 TFT-LCD 패널 시장점유율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23.4%로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21.5%)가 2위를 지켰다. 대만의 CMI(8.5%), AUO(17.9%)는 3, 4위였다.
매출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26.5%)로 1위를 LG디스플레이(23.7%)가 2위를 차지했다. CMI(15.8%), AUO(15.7%)는 역시 3, 4위로 뒤를 따랐다.
지난 2월에는 두 회사가 1995년 LCD를 생산한 이래 대형 LCD 생산량 5억대를 나란히 돌파해 화제를 모았다.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한 5억대의 LCD 모듈을 면적으로 환산하면 대략 6만8천 제곱 킬로미터. 축구장 약 1만개를 LCD 화면으로 덮을 수 있는 너비다. 이는 서울시 면적보다 112배 크다. 삼성전자는 2천216만 제곱 미터로 여의도 면적의 2.6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9년 세계 LCD 패널 시장에서 177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며 시장 점유율 27.6%를 기록했다. 2002년 이후 매출 기준 8년 연속 세계 1위다.
TV 부문의 경우 전 세계 출하량의 25%인 약 4천100만대를 판매해 2년 연속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특히 지난해 TV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양산하기 시작한 LED TV용 초슬림 패널의 경우, 2009년 세계에 출시된 LED TV 중 82.0%를 차지하며 첨단 LCD 패널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해 세계 경제 위기의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며 경쟁사들과의 차이를 넓히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LED 백라이트(Backlight), 3D, 터치 등 새로운 기술의 성장을 통해 경쟁사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제품으로 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을 선보일 방침이다. 우수한 색감과 저소비전력을 구현하는 노트북∙모니터용 LED 백라이트 LCD를 강화하고, 초고화질, 친환경, 원가절감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방식의 3D 및 터치 기술에서의 우위를 확보할 계획이다.
◆ 공격적 투자, 타의 추종 불허
한국 업체들의 투자 규모는 3, 4위인 대만 업체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때 LCD 시장을 호령했던 소니사 등이 현재 순위권 밖으로 밀린 이유는 제때 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시장이 한창 여물고 있을 때 과감하게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쌍독주'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올 초 대형 TV용 LCD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파주 디스플레이클러스터 약 1조5천억원을 들여 8세대 LCD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로 했다. 4월에는 LCD 건물 추가 건설에 7천27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LG디스플레이는 매년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지속된 2009년에도 전년 대비 R&D 투자비를 54% 늘린 바 있다. 지난 해 연구개발비용은 7천740억원이었으며 2008년에는 5천11억원, 2007년에는 4천144억원이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5월 '맞불'을 놓아 당초 목표액 3조원에서 대폭 늘린 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이 중 2조5천억원은 충남 아산 탕정사업장 내 월 7만장 규모(기판 기준)의 8세대 LCD 신규라인('8-2-2') 건설에 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총 4개의 8세대 라인을 갖게 된다.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통한 과감한 투자는 라인 증설에 큰 자금이 드는 하위 업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LCD 업체들은 이처럼 견고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 시장 개척에도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디스플레이 업계의 초미 관심사로 떠오른 3D 패널의 수요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1월에 3D TV용 240Hz LCD 패널을 본격 양산하기 시작했으며, 업계 선도 기술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3D 시장 선점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초슬림 TV용 패널로서 친환경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LED 패널 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고부가 IT 제품과 DID(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 등 신규 응용시장에서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 AMOLED, 플렉서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도 주력
DID 제품의 경우, 신규 규격인 43인치 슈퍼와이드 패널을 양산하며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으로서 신규 적용 분야를 개척, 선점하고 있으며 옥외용 DID 제품, 초슬림 베젤 제품 등과 함께 특화된 제품으로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합작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SMD는 향후 5년 내에 차세대 TV 주력기술로 AMOLED가 3분의 1이나 차지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지난 달 세계 최대인 19인치 AMOLED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SMD는 충남 탕정 디스플레이 단지에 2012년까지 총 2조5천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AMOLED 제조 라인을 건설한다.
LG디스플레이는 AMOLED,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반기 가동 예정인 파주 AMOLED 라인에서는 모바일용 소형 제품 중심으로 생산하며, 향후 대형 TV용 OLED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대형화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크기의 19인치 휘는 디스플레이 개발에 성공한 것을 비롯 전자종이 시대를 열어 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구축해 가고 있다.
종이를 대체하는 전자책(e북)을 필두로 본격 상용화되면서 전자종이(EPD)용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이 급부상한다고 분석, 관련 R&D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리버와 전자책 합작 법인을 설립해, 이 분야의 경쟁력을 세트 제품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특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분야를 특화시켜, 올해 초 세계최대 크기의 19인치 와이드형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였으며, 올 상반기에는 11.5인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2006년 5월 세계 최초로 14.1인치 흑백 플렉서블 전자종이를 개발한 이후 2007년 세계 최초로 A4 용지 크기의 컬러 플렉서블 전자종이를 개발, 다시금 앞선 기술력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LCD 업체들의 1등 사수를 위해서는 '중국 LCD 패널 공장 승인'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남아 있다.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LCD 패널 공장 유치전에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및 일본의 샤프, 대만의 AUO 등 '3국'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4월 초 발표가 날 예정이었지만 계속 연기돼, 현재 6월 말 발표가 날 것이로 보인다.
LCD 패널 공장에 국내 업체 둘이 들어간다면 세계 최대의 '이머징 마켓' 중국의 막대한 매출을 바탕으로 현재의 '독주'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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