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려함 속 '촌티'와 '싼티'가 공존하는 서울
서울은 얼마나 '멋진 도시'일까.
정답은 '세계적 수준에서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모습은 최근 20~30년 사이에 눈부시게 바뀌었다. 서울은 5공의 한강개발, 88올림픽 유치, 청계천 복원 등 굵직한 대형사업과 강남지역의 팽창 등을 전환점 삼아 면모를 일신해 왔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서울은 일견 글로벌 도시의 풍모를 뽐내는 듯하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도시와 비교해 볼 때 서울의 도시 브랜드 가치는 고작 44위에 머문다. '명품 도시'로 불리는 뉴욕, 파리, 런던, 시드니, 로마, 도쿄 등과 견주기엔 거리가 멀다.
서울의 공공건물들은 상투적 디자인이다. 아파트나 상업용 건물은 성냥갑 같다. 도시의 미관을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게 하는 주요인이다. 게다가 건물마다 원색과 형광색의 간판들이 볼썽사납고 무질서하게 걸려 있다. 화려하다기보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빠르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대표도시 서울은 아직 44위에 그친다. 몸집의 크기에 맞지 않는 낡고 헌 옷을 아직도 입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서울이 이제 '멋진 도시'를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점차 현실화돼 가는 모습이다. '디자인 혁신'이 그 동력이다.
#2. 오세훈의 꿈
지난 2006년 7월3일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
그는 디자인에 승부를 걸었다. "도시계획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을 새로 디자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을 세계 10위권의 고품격 디자인 중심 도시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데 웬 디자인?' 뜬구름 잡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행동에 나섰다. '도시개선기획반', '디자인서울총괄본부' 등 실무팀을 꾸렸다. 이들을 통해 한강 종합개발 구상, 동대문 디자인 콤플렉스 조성방안, 디자인 서울 구상 등 실행계획도 세워나갔다.
2007년10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산업디자인단체총연합회(ICSID) 총회에서 서울시가 '2010 세계 디자인 수도(WDC, World Design Capital)'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싱가포르, 두바이 같은 쟁쟁한 도시를 물리치고 따낸 열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 ICSID 폐막식에 참석,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 수락연설을 통해 "지금까지 한강의 기적과 IT강국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제는 디자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또 서울시장으로 변신을 거듭한 오세훈. 그가 서울을 디자인도시로 변신시키는 꿈을 꾸고 있다.
#3. 시민의 마음을 움직인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그렇다면 서울시민은?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가 서울을 디자인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서울시민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공감할까?
지난 9일 개막해 29일 폐막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은 서울의 디자인 혁신 노력이 시민들의 '마음'을 점차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처음 열린 '서울디자인올림픽'은 주요 타깃이 전문가인지, 시민인지 불분명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었다. 시민의 호응도 기대보다는 떨어졌다. 이에 따라 올해는 철저하게 디자인 소비자와 시민 중심의 '서울디자인올림픽'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지난해 총 관람객은 198만명. 올해는 290만을 상회한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보다 관램객을 100만명 정도 더 끌어모은 성과를 올린 것.

이는 그 만큼 서울시민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이는 디자인도시로 가꿔가려는 서울시의 노력에 시민이 점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고, 참여가 늘어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날 끝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는 시민을 대상으로 디자인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하여 'i-DESIGN,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다'를 주제로 삼았다. 각종전시회, 공모전, 페스티벌, 컨퍼런스 등 생활 속에서 디자인을 쉽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마련,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잠실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한강공원,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등 도심 곳곳으로 행사를 확대해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디자인을 직접 체험하고 참여할 수 있어 시민들이 디자인과 좀 더 가까워지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들이 신나게 만지고 체험하며 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던 'i-DESIGN 놀이터'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홍대 앞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펼쳐진 '서울 디자인 스팟'은 실제 디자이너들의 세계와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만남으로써 시민들이 디자인에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디자인으로 불황 극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체 행사를 하나의 '디자인 장터'로 꾸미고 디자인의 단순 전시를 뛰어 넘어 관람객들이 다양한 디자인 작품을 사고팔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경제회복의 희망을 되살리려는 노력이었다.
주제전시 중 '2009 월드디자인마켓_서울'은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쇼핑하기 위한 사람들로 연일 붐볐다. 지난해 대비 3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디자이노믹스'를 실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디자인 장터전'은 SBS의 '아이디어 하우머치'와 연계하여 우수한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디자이너가 실제 현장에서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아이템을 홍보함으로써 실거래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창출했다.
또 100개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열린 '취업박람회'는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고, 전문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기업에는 검증된 디자인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올해 서울디자인올림픽은 당초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감 등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에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내실 있는 '콘텐츠'를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 예상을 넘는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단적으로, 지난 9일부터 3일간 지안프랑코 자카이, 댄 포모사&데빈 스토웰, 폴 켈리, 하라켄야 등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가들이 연사로 참여한 가운데 열린 디자인서울 국제 컨퍼런스에는 총 4천133명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컨퍼런스라는 형식의 행사였지만,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디자이노믹스)에 대해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서울디자인 전시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전시에서는 '2009 월드디자인마켓_서울'이 행사 기간 내내 관람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마켓형 전시'를 표방한 '2009 월드디자인마켓_서울'은 실제로 작년 대비 3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고 그 판매금액은 유니세프에 전달되는 형식의 프로그램도 진행,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2009 월드디자인마켓_서울' 옆에 위치한 '디자인장터전'에서는 옛것에서 착안한 현대적인 디자인 제품들을 마치 장터와 같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 속에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한중일 생활문화, 일상에서의 休' 전시도 평소 친숙한 동양 3국의 생활문화를 통해 각국 디자인의 차이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서울미래비전'과 '세계건축디자인초대전'은 각각 자전거를 타며 보는 3D 영상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전시를 선보여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을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2년마다 개최되는 덴마크의 '인덱스 어워드' 특별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최종 수상작 후보에 오른 69점을 전시, 관람객들로 하여금 디자인이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다는 디자인의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전달하여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주체들이 선보인 다양한 전시도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21개 대학 27개 학과가 참여한 '디자인 탐구전'은 예비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벤치·의자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전시' 등 생활과 밀접한 주제의 총 10여 개에 이르는 시민참여 전시 또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오감을 통해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디자인 축제를 표방한 서울디자인 페스티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i-DESIGN 놀이터'.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디자인의 원리를 직접 만지고 소리와 감각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아이디어 상상 체험관'은 다빈치의 그림 속에서 디자인 원리 이해하기,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자전거 타기 등 체험형 코너가 다양해 아이들의 디자인 교육에 유익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또한, '문화가 있는 놀이터'는 고래의 꿈, 뫼비우스의 띠 등 동네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 놀이기구로 가득하여 어린이들의 디자인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기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238명이 제작한 티셔츠가 당초 1천여 장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4천 장 이상 판매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또 '무료 축제'인데도 '입장권'을 판매하는 암표상들이 출현하는가 하면, 길게 늘어선 입장객 행렬을 택시승차장에 줄 선 행렬로 착각한 시민의 사연 등 해프닝과 에피소드도 쏟아졌다. 이는 한편으로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는 행사로 발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9일 오후 5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폐막식에서는 2009년 행사 결과보고에 이어 '자연의 꿈' 전시의 시상식, 37개국 1천206개 작품이 접수되어 경합을 벌인 '서울디자인 공모전'의 시상식이 함께 열렸다. 또한 천의영 총감독이 이번 행사의 주요장면을 담은 영상과 디자인서울에 대한 염원을 담은 시민들의 메시지가 담긴 조각보 형상의 'i-DESIGN 상자'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폐회사를 통해 "올해 서울디자인올림픽은 디자인을 직접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도심 곳곳에 다양하게 마련돼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를 찾고 즐겨준 시민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면서 "서울이 명실상부한 디자인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가 절실하다"며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 서울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을 당부했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올림픽(SD0)' 행사의 '올림픽' 명칭과 관련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대한체육회(KOC)의 의견을 수용해 내년부터는 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을 대체하는 새 명칭을 정해 내년부터 사용할 방침이다.
/이재권기자 jay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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