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터넷 상의 검열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곳은 검찰, 경찰, 방송통신심의위가 아니다. 바로 네티즌들 자신이다. 네티즌들이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를 이용해 포털들을 통해 블라인드(임시조치)시키고 있는 게시물의 수가 다른 방법의 검열보다 훨씬 많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정보의 삭제요청 등)에 따르면 특정인이 포털에 게재된 정보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받았거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포털 측에 요청하면 포털은 최소한 그 정보가 30일 동안 임시로 차단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요즘 상당히 많은 수의 게시물들이 소위 '피해자'의 요청으로 임시로 차단되고 있다.
물론 네이버는 게시자가 복원요청을 하면 곧바로 복원하는 모범적인 사례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음은 30일 기간을 채우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음측은 제44조의2를 들어 "삭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임시조치는 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기간을 30일로 정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의무와 권한을 주고 있는 제44조의2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
게시물 하나 하나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행사의 결과물이다. 위 조항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결과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주장이 있는 인터넷 게시물들은 모두 30일 동안 임시차단 돼야 한다"는 법조항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타인이 반대하는 말은 30일 동안은 하지 말라"는 법조항과 같다. 위와 같은 상황은 명백히 위헌이다. 요즘같이 정보의 가치가 며칠 사이에 순식간에 줄어드는 세상에서 30일간 억제하는 것의 위헌성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조차도 없다.
또 임시조치의 폭이 너무 넓다. 모든 명제는 복잡다기한 사실관계를 통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기업이 하나의 신기술을 두고 서로가 자신이 '국내 최초 개발자'라고 주장하는 경우 두 기업의 주장은 서로에게 명예훼손이 된다.
단지 한 기업의 '최초' 주장이 다른 기업을 '2등'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한 기업의 '최초' 주장은 다른 기업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명예훼손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제도 하에서는 포털은 두 기업의 신기술 홍보 게시물을 모두 임시조치 처리해야 할 것이다. 신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다른 기업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홍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포털들이 피해 주장자의 일방적인 요청만 듣고 임시차단하면 게시자 입장에서는 그 게시물이 합법적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다. 우선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임시조치를 한 것이 아니므로 그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포털을 상대로 복원을 구하는 소송도 불가능하다. 물론 포털들을 상대로 공정거래법 위반이나 위임계약 위반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론적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위 조항들은 포털업자들에 대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자들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차별적 규제이기도 하다. 신문 방송 등의 어떠한 다른 매체도 누군가 나타나서 보도내용에 대해 피해를 단순히 "주장"만 했다고 해서 보도내용을 번복하거나 삭제해야 할 의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중에 누군가 나타나서 "저 드라마가 나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곧바로 30일간 방송금지가 내려진다고 생각해 보라.
여기에 이번에 한나라당이 상정한 개정안들의 문제가 있다.
첫째 나경원 의원 안은 게시자가 포털의 조치에 불복하면 분쟁조정부에서 회부해 72시간 내에 답변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안은 7일 내에 답변을 얻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두 가지 안 모두 일견 게시자가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입증책임을 게시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나경원 의원안은 이 분쟁조정 마저도 피해 주장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성립되도록 하고 있어 불복기회를 주는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입증책임을 게시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결국 분쟁조정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길 때까지 게시물은 계속 내려져 있는 상태가 된다. 즉 합법적인 게시물이라고 할지라도 포털이나 피해주장자의 의견에 따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3일 또는 7일간) 게시물이 내려져 있게 된다.
무엇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일개 행정기관이나 그 행정기관이 임명한 분쟁조정부의 결정에 의해 게시물의 게재 또는 삭제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은 헌법 제21조가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해당한다.
권력의 정책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정기관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면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포털업자 및 게시자는 방통심의위나 분쟁조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따르고 말겠지만 게시물이 추후 사법적 판단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나경원 안과 정부 안 모두 포털에게 불법정보를 모니터링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니터링 의무는 추후에 포털들에게 불법정보의 게시에 대한 방조책임을 부과하는 근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결국 포털들은 피해자들의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도 삭제와 임시조치에 열을 올리게 될 수 밖에 없다. 모니터링 조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기도 하지만 현행 임시조치 제도와 함께 생각할 때 반대해야 하는 대한민국 고유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셋째 정부안은 포털이 44조의2 1항과 2항의 의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3천만원씩 물리겠다고 하고 있는데 이 역시 포털들이 삭제요청이 없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검열에 열을 올리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미국의 경우 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DMCA)와 Communication Decency Act의 notice-and-take-down(인지후 삭제조치)조항들이다. 이는 ISP(인터넷서비스업체)가 특정한 절차를 준수하면 ISP가 저작권침해나 음란물 유포의 공범으로 처벌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다.
위 법들을 이해하기는 쉽다. 이미 우리나라 현행법에 DMCA의 정신을 계수해 만든 법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103조 2, 3, 5항은 인터넷 콘텐츠의 확산성을 고려해 누군가 피해를 주장하면 '무조건' 삭제를 하고 게시자가 복원을 요구하면 '무조건' 복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피해자가 삭제를 원하면 피해자는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이는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것 같지만 이 절차를 통해 대부분의 게시물들이 처리된다. 현재도 게시자들이 이의제기를 하는 경우(어차피 법적으로 근거도 없지만)는 5% 미만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법으로 포털에 대해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면책의 혜택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게시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권리 사이에 균형을 잡는 대부분의 국가들의 선택인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교수 kyungsin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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