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에서 '0:5 참패'로 인한 한나라당 내 후폭풍이 빠르게 걷히고 있는 분위기다. 조기 전당대회 등 지도부 책임론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였지만 재보선 이틀 만에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은 '텃밭'인 영남 두 곳(경북 경주, 울산 북구)에서 패배를 맛봤다. 국회의원 재선 지역 중 유일한 수도권이면서 이번 선거 최대의 승부처로 꼽혔던 인천 부평을에서는 당 지도부가 '올인'하다시피 했는데도 민주당에 패했다. 약세 지역인 호남에서도 두 자릿수 지지율 확보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등 '참패' 그 자체였다.
이로 인한 당 지도부 인책론, 조기 전당대회 등 책임론이 불가피해 보였으나 현 지도부 체제 유지와 전면적인 당 쇄신으로 가닥을 잡았다. 박희태 대표는 "앞으로 더욱 심기일전해서 경제살리기에 신명을 바치고 서정쇄신에 더욱 노력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안 지도부 인책론이 거세게 일 경우 자칫 당내 계파 갈등이 노골화돼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내몰릴 수 있다. 또한 '박희태 체제'의 대안이 안보인다는 점도 현실적 한계다. 재보선으로 '친이-친박'간 전선이 더욱 분명해진 상황에서 당내 갈등을 촉발시킬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소장파 그룹의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이 1일 한 라디오에 출연, "때 이른 당권경쟁을 통해 당내 갈등이 집안싸움 형태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원 의원은 "자성과 쇄신론 차원에서 푸는 것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차선 정도는 될 것"이라고 당내 강도 높은 쇄신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그동안 당과 국회 운영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해 온 당내 초선의원 모임 '민본21'의 쇄신안이 당 쇄신 작업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본21은 최근 당 쇄신 및 화합 방안을 논의해 지도부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지도부가 내놓을 쇄신의 규모에 관심을 모은다. 만일 쇄신이 소폭으로 그칠 경우 '재보선 면피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더러 당 지도부 인책론이 재차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쇄신 규모를 놓고 당 지도부는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 이후 당 쇄신과 함께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4월 재보선에서 '박근혜의 위력'은 여실히 입증됐다. 박 전 대표가 선거 기간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경북 경주 재선거에서 친박계 정수성 당선자는 친이계 정종복 후보를 현격한 차이로 누르고 낙승을 거뒀다. 어디든 마음 먹으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박근혜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박근혜를 배제하고선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경험칙을 한나라당은 또 한번 뼈저리게 겪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재차 입증된 '박근혜 파워'는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과 주류는 좋든싫든 박 전 대표 끌어안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그간 '친이-친박'간 여러차례 화합의 계기가 마련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해 총선 이후 극심한 친박 복당 논란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일갈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친이계를 겨냥한 것으로, 이들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 한 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친이-친박' 양진영은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친이와 친박은 물리적으로만 한 몸일 뿐, 아직껏 '화학적 결합'은 이뤄내지 못했다. 때문에 당내에서는 특단의 화합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원 의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친박 진영을)포용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계기를 계속 놓치다 보니 불신이 쌓이면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과정이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며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초선 의원도 기자와 통화에서 "이제는 박 전 대표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내주 초로 예상된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정례회동에서 박 대표가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여권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박 전 대표와의 화합 등 민감한 사안들까지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친박과의 화합책이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당안팎으로 '기회는 이번 뿐'이라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이처럼 재보선을 계기로 필요성이 제기된 당 쇄신책과 화합책 마련을 위해 박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의 더욱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