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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저작권관리(DRM)는 해제돼야 할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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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물론 세계 음원 업계가 디지털저작권관리(DRM)란 해묵은 소재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전쟁'을 펼칠 기세다.

'전쟁 구도'는 단순하지 않다.

각 주체 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음원 권리자, 음원 서비스 업체, 소비자 등 3주체 모두 DRM 정책에 할 말이 많다. 상대 때문에 음원 시장이 죽는다고 탓하는 게 기본 입장이다.

DRM에 대한 각 주체별 입장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본다.

◆DRM이란

DRM은 디지털로 된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과 솔루션을 의미한다. 음악 등 콘텐츠가 디지털 형태로 바뀌면서 불법복제가 쉬워짐에 따라 저작권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저작권자의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점은 온당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이에 대해 합의해가는 추세였다. 디지털 콘텐츠에 DRM을 설치하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DRM을 해체하자"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분위기가 급반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는 벅스가 'DRM 무용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두 업체 모두 영향력이 적지않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최근 "음반사들이 저작권 보호를 위해 DRM을 채택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한 음악을 사용하는데 제약을 받고, 그런 이유로 합법적인 음악 구매를 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아이튠스에서 판매되는 음악이 다른 MP3 플레이어에서 재생되지 않는 이유는 세계 음악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 EMI,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뮤직 그룹의 DRM 정책 때문"이라며 "DRM을 없앨 경우 애플은 아이튠스에서 타사의 기기가 동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며 아이팟도 개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DRM이 소비자에게 불편을 초래해 음악 시장을 키우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에 이를 해제하라고 음원 권리자들한테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애플 또한 현재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DRM을 개방하겠다는 취지다.

잡스가 이렇게 나온 배경은 유럽 국가들의 공세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는 애플의 폐쇄적인 DRM 정책이 불공정하다고 보고 오는 10월까지 아이튠스를 개방하지 않을 경우 서비스 폐쇄 등의 법적 조치를 단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잡스가 밝힌 'DRM 무용론'은 이들 국가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세계 음반 업계를 방어막으로 삼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잡스는 특히 소비자들이 애플의 정책을 지원할 것으로 계산했음직하다. DRM이 해제되는 것에 대해 소비자는 겉으로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벅스도 최근 이런 조치를 취했다.

벅스는 "음원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DRM을 도입했지만 표준화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다"면서 "DRM을 해제하는 대신 정액제 요금을 통해 들어온 수익을 적정한 방식으로 권리자에게 돌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주장은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DRM이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고, 그래서 결국 음원시장의 축소를 가져오게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벅스의 경우 DRM이 표준화하지 않은 탓을 지적한 반면 애플의 경우 표준화를 거부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다시 불법복제 시대로 가자고?"

이들의 주장처럼 소비자들이 디지털 음원을 이용하는데 DRM이 어느 정도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DRM을 없앤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음원 권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DRM을 없앨 경우 '불법복제의 시대'가 다시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관광부 저작권팀 관계자는 "DRM은 불법복제 방지와 라이센스 제한 등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해제하자는 이야기는 불법복제를 허용하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DRM를 해제하자고 주장할 때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다른 대안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는 게 권리자들의 주장이다. 대안 없이 저작권 보호의 유일한 수단을 해제하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특히 "DRM 때문에 소비자가 불편하다는 주장은 소비자 불편의 본질적인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소비자가 디지털 음원을 사용하는 데 불편을 느낀 진짜 이유는, DRM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애플이나 국내 이동통신회사처럼 독점적 지위를 가진 음원 서비스 업체가 자사 이익을 위해 DRM 표준에 소극적이고 다른 DRM에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는 어떤 사이트이를 이용하든, 또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한 번 구매한 노래는 자유롭게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서비스 업체나 기기 업체가 DRM을 폐쇄적으로 운용해 이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팟으로는 아이튠스에서 산 노래만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의 주장과 달리 진정으로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애플의 폐쇄적인 DRM 정책이라는 게 음원 권리자들의 주장이다.

◆누가 소비자를 볼모로 삼고 있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논쟁은 디지털 음원 소비의 불편을 초래한 '악'을 DRM 그 자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DRM 표준화의 실패 혹은 의도적인 거부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애플은 전자가 본질적인 이유라 말하는 것이고, 음원 권리자들은 후자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애플을 압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점적 지위을 이용한 애플의 불공정한 DRM 정책 때문에 소비자들은 스스로 구매한 음원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게 이들 국가의 판단인 것.

한편 해묵는 이 논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은 DRM 표준화의 실패 때문이다. 음원 업계는 지난 수년동안 DRM 표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음원 서비스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에 실패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저작권자를 보호하면서도 소비자의 불편을 상당히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DRM 표준화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자 않자, DRM 그 자체를 '악의 축'으로 본 애플과 벅스가 선공을 개시한 것이다.

각 사업 주체 모두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사업자들은 소비자를 볼모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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