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의 대립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전주 무단사용 혐의로 KT가 일부 케이블 SO들을 고소한 데 이어, 케이블TV서남방송이 KT를 불법방송 송출 혐의로 형사고소하는 등 양측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것.
이 같은 양상은 이번 달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하는 케이블SO들이 기간통신사업자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계기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여 향후 양측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지 주목된다.
◆ 연이은 소송, 긴장과 갈등 이어져
KT는 최근 360만개의 전주 실사 결과 케이블 SO들이 전주 10개 중 7개를 무단사용하고 있다며 무단사용에 따른 부당이득금 반환과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T에 따르면 SO가 사용중인 36만5천개의 전주 중 69%인 25만2천개가 무단사용중이며, 방송 이외에 초고속인터넷까지 제공하는 목적외 사용 전주는 이용 전주의 11%인 4만150개다.
KT가 전주를 무단사용한 해당 SO를 상대로 예상하는 부당이득금 및 목적외사용에 따른 대가는 총 1천억원이다. 이같은 금액은 초고속인터네 사업 수익이 수십억원도 넘지 못하는 영세한 규모의 케이블SO의 경우, 사업 존폐에 처할 수도 있는 규모다.
KT는 "전주 무단사용 외에도 KT 관로에 케이블을 설치한 사례나 계약을 맺은 케이블에 무단으로 추가 설치한 사례도 발견됐다"며 "SO들이 불법시설물 철거나 손해배상을 거부할 경우 소송 등 법적절차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케이블 진영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KT가 전주 임대료를 지나치게 인상한 데 따라 SO들이 재계약 및 계약사항 변경을 요구해왔으나 KT가 협상 자체를 거부해 온 상황이라는 것.
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난 2004년 이후 원만한 임대료 산정을 위한 공동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KT가 거부했다"며 "임대료 원가 구체적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은 채 과도한 비율의 임대료 인상 요구는 국가 필수설비를 이용해 경쟁사업자를 지나치게 견제하려는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케이블SO 진영에서도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목포와 영암지역에 케이블방송 서비스를 하고 있는 한국케이블TV서남방송은 최근 불법 방송 송출 혐의로 KT목포지사 직원과 KT의 하도급업체 대표, 방송 송출을 허가한 아파트 입주자대표 등을 형사고소했다.
서남방송에 따르면 피고소인들은 지상파 시청용으로 깔린 공시청망(MATV망)을 유지보수한다는 핑계로 안테나를 무단 설치, 불법으로 방송을 송출했다. 이들은 무허가 방송을 내보내면서도 "불법이 아니며 책임은 방송국에 있다"며 입주자 대표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공시청망을 무단 사용해 불법방송을 송출하는 크고 작은 사업자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이번에 국내 최대 통신사업자인 KT까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 목포지사 관계자는 "옥상에 안테나를 세워 전파를 모아 방송하는 것이 불법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서남방송측은 '명백한 불법방송'이라며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 SO 기간사업자 전환 계기로 갈등 불거져
이 같은 양측의 대립양상은 통방융합이 진행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통방융합 추세에 따른 방송과 통신간의 주도권 싸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KT는 통신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SO로 인해 자사의 입지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KT는 그동안 SO들이 요금이나 약관신고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았던 덕분에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이번에 SO들이 기간통신사업자로 전환되면서 경쟁환경이 조성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특히 KT는 망 이용에 따른 상호접속료 협상이나 전주 임대료 협상을 통해 최대한 SO들의 초고속인터넷 원가를 올려보겠다는 전략을 취할 전망이다. 정보통신부나 케이블방송협회는 SO들도 동등한 기간사업자 지위를 얻은 이상, KT와의 협상에서 불리할 것은 없다고 보고 있으나 협상에서 '칼자루를 쥔 쪽'이 KT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KT가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KT가 법규제 틀 미비로 IPTV 사업이 제 때에 시작되지 못하면서 방송시장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케이블SO들은 통신사업에서 조금씩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협회 관계자도 "서남방송이 제기한 이번 불법방송송출건은, KT가 자사 초고속인터넷 사업 위축이 우려되자 "무료로 방송을 보게 해주겠다"고 입주자들을 현혹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케이블SO들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가격경쟁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SO들은 상품 가격에는 손대지 않는 선에서 '허리띠를 졸라' 원가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케이블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간사업자 지위를 얻으면서 신경쓸 게 많아 힘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규제의 틀이 더욱 강화되는 환경에 적응해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O들의 기간통신사업자 전환을 계기로 KT와 케이블SO들의 전면 대결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추세 속에서 양측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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