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국 307편의 영화가 상영돼 모두 19만3천여 명의 관객들이 다녀가는 등 역대 최고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시아의 대표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4일 폐막됐다.
세계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기적'으로 불린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10돌을 맞아 다채로운 이벤트와 학술행사를 함께 열며 국내외에 그 위용을 떨친 2005 부산국제영화제는, '디지털'에 집중하고 있었다.
◆ 영화도 디지털이다...선택이 아닌 예정된 미래
영화제 1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7차례의 국제 학술대회 서막을 연 주제는 바로 '디지털 영화'.
11일 오후에 열린 세미나에서는, '디지털시네마 국제 네트워크와 기술 교류'를 화두로, 월트 디즈니 기술책임자인 마크 킴볼, 중영집단 디지털영화 유한공사의 첸 양, 한국 KT의 오옥태 서비스기획본부 데이터솔루션 담당 상무 등 각 국 관계자들이 참석해 기술표준화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세미나에 하루 앞선 지난 10일에는, 문화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와 중국 전영과학기술연구소가 "디지털 시네마 기술 관련 사업에 대해 상호 협력하고, 아시아권의 관련 기술 표준화 작업에 함께 나서자"며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영진위와 전영과학기술연구소는 모두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회원국, 양측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디지털시네마 시스템 및 표준화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추세? 가능성? 아니, 그런 표현은 옳지 않다. 디지털시네마는, 혹시 세계적인 추세가 그 쪽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머스트(Must)'의 문제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얘기다."
◆ 2009년까지 490억 투입...디지털시네마 산업 육성
지난 8월 24일, 문화부가 '디지털시네마' 산업 육성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산업에 대한 담론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화부가 발표한 계획은, 향후 세계 영상산업이 표준화된 규약에 의해 '디지털시네마'로 재편될 것에 대비해 오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 분야별로는 기술기반 구축에 86억원, 테스트베드 및 R&D에 105억원, 인력양성에 32억원, 디지털상영관에 206억원, 영화제작지원에 61억원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문화부 계획안의 골자였다.
문화부는 더불어 디지털시네마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대학교 이충직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전위원회'와 각각 산업화 및 인력양성과 기술 및 표준화 문제를 다룰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31일에는 첫 비전위원회가 열려 논의해야 할 문제들을 모두 테이블위에 올려놓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9월 한 달을 지나며 두 개의 분과위원회가 두 차례씩 열려, 민·관·학 관계자들이 머리를 모았으며, 한 차례의 회의를 더 거쳐 11월 중순 경에는 중간보고서를 작성할 방침이다.
11월 25일경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중간 보고서에는, 산업과 기술 양측에서 디지털시네마 사업 추진에 관한 개괄적인 로드맵과 함께 기술 사양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문화부 예산에는 14억 원이 반영돼 디지털시네마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테스트베드 관련 장비가 도입되며, 연구 조사 사업도 병행될 예정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결코 빠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디지털시네마 관련 정책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미 디지털시네마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가도록 돼있는 '예정된 미래'"라고 입을 모은다.
8명의 비전위원회 위원 중 하나인 영화진흥위원회 박창인 영상기술부장 역시 "디지털시네마란, 이미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제작부터 마스터링까지 모든 작업이 디지털 장비를 통해 이뤄지거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디지털시네마 논의는 결국, 상영관의 영사기를 디지털 장비로 바꾸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 디지털시네마인가'라는 질문에는 "현재의 모든 매체들은 융합되어가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며, "모든 콘텐츠가 컨버전스의 흐름을 타는 지금, 영화콘텐츠만 아날로그에 머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에 "당장은 장비 교체 비용이 커보이겠지만, 5년 이내에 프린트 비용 절감분으로 비용을 보전할 수 있다"는 부연도 잊지 않는다.
박 부장에 의하면 현재 영화 필름을 한 번 프린트하는 데는 회당 20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 때 흥행을 예감하는 작품의 경우 보통 400 프린트 정도를 만들어두는데, 그렇다면 대작 한 편을 전국 상영관에 거는 데 드는 비용은, 프린트 비용만 8억 원에 이른다.
이 계산법대로라면, 전국 1천 500개 정도로 추산되는 각 스크린에 걸릴 상영작 프린트를 2주일에 한 번씩 교체한다고 가정할 때 연간 1천억 원에 이르는 프린트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 박 부장의 의견이다.
따라서 3천 억 안팎으로 계산되는, 전 스크린의 디지털시네마 장비화 작업은 3년 내에 투입비용 대비 산출이 더 많은,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따라서 단기 비용만 계산해, 전 세계 각 국이 나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시네마 산업 육성에 고개를 갸우뚱할 일은 아니라"라고 말한다.
◆ 정부 예산지원 두고 봐야...'필름 룩' 서정성 상실 우려
그러나 한편에서는 디지털시네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문화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예산 490억 원의 편성 및 지출에 대해 기획예산처 측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관련 예산 집행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여기에 '필름 룩(Look)' 즉, 필름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디지털 룩으로는 구현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보는 영화 대신 새로운 윈도우를 사랑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스크린 외에도 인터넷 사이트나 위성DMB폰 등 새로운 윈도우를 집중 겨냥하고 있는 디지털시네마의 흥행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길은 정해졌으며, 이왕 가야할 길이라면 앞선 IT기술을 바탕으로 업계 선두가 되자'는 목소리와 산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 국가의 지원 정도에 대한 이견이 교차하고 있는 디지털시네마.
그러나 이견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이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것이다. 중간보고서 발표 이후 보다 구체화된 로드맵을 담아 공개될 예정인 비전위원회의 연말 보고서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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