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9년 말부터 급속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벤처캐피털들은 2000년 들어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게다가 일부 부정한 세력의 비리에 의해 이미지에까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올 들어 정부의 벤처활성화 대책에 이은 코스닥 시장의 반등으로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창투사들은 정부 및 기관투자자들은 물론 일반투자가들에게도 과거의 비리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벤처캐피털협회를 중심으로 각종 통계 자료를 발표하는 등 홍보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제살깎기식 경쟁을 억제하면서 자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아이뉴스24는 창투업계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고 정보기술(IT) 벤처 등 중소기업의 도약, 그리고 벤처캐피털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벤처캐피털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함께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업계에서도 자정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니 만큼 올 안에 창투업계 내에 올바른 체계가 잡힐 것입니다."
일신창투의 대표이자 벤처캐피털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고정석 사장(48)은 정부정책에 대한 부응과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금년을 환골탈태의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다.
이를 위해 협회 수장으로서 내부정화 및 홍보활동, 정책부응, 통계자료 관리 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91년 창투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고 사장은 벤처투자 전문가로 매년 우수한 실적을 거둬왔으며, 수년간 협회 부회장으로 활동에 온 끝에 올 4월 회장으로 추대됐다.
◆ "벤처캐피털 제대로 알리기 주력"
그간 벤처캐피털들은 내부상황이나 투자실적 등을 일반에 알리는 일에 인색했다. 그러다보니 벤처붐 이후 잇따라 터져 나온 비리들에 의해 '미운털'만 박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고 사장은 업계의 이미지 쇄신을 협회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우선 이달 중 인터베스트 정성인 사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창투업계 자율조정위원회의 위원을 인선하는 한편, 업체 간 이해상충 부분을 파악해 위원회가 할 일을 설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벤처캐피털의 실적을 언론에 적극 알리고, 잘못된 점은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는 일에도 충실히 한다는 계획이다.
고 사장은 과거 신임 중기청장이 임명된 직후 "벤처캐피털은 다 사기꾼일줄 알았다"고 말한 것을 뼈아프게 기억한다.
고 사장은 "좋은 점을 알리는 홍보활동에 너무 소홀하다고 지적받은 바 있어, 이제부터 매월 1회 정기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개최, 벤처캐피털의 제대로된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업계의 자정노력에 도움을 주는 중소기업청의 창투사 평가 계획 및 공시제도 도입 등에 적극 부응할 계획이다. 또 벤처캐피털 산업의 동향을 포함, 각종 통계 자료를 수집·분석해 협회가 창투 관련 데이터 창고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고 사장은 "벤처캐피털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 변화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러나 업계의 내부구조 및 활동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기관투자자나 정책입안자들의 경우 점차 우호적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꾸준히 지적하고 요구할 것"
고 사장은 "벤처캐피털은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애국가를 10번 반복해서 부르듯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야 변화될 수 있다"며 우선손실충당제 개선과 투자조합 해산 시 현금배분 강제의 금지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손실분을 벤처캐피털이 떠안는 우선손실충당제의 경우, 투자조합에서 창투사가 부담하는 10%를 전액 받아들이도록 하는 현 제도는 벤처캐피털의 고수익 모험투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벤처캐피털에 대해 우선손실충당의 의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한편, 투자조합 구성 시 창투사가 부담하는 투자금의 비중을 현재 10%에서 5%로, 다시 1% 정도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창투사 자본금 중심의 펀드가 아닌 기관투자자 펀드 중심의 창업투자가 이뤄져야 정상적으로 초기 벤처기업을 견실하게 육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 사장은 또 "투자조합 만기 시 현물자산을 벤처캐피털이 고스란히 떠안도록 하는 현 제도로 인해 올해 업계는 심각하게 유동성 위기에 처할 상황"이라며 "투자조합의 만기를 2년 이상 연장하는 한편 투자자에 현금 대신 현물자산을 분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사장은 "단 정부 정책은 이제 국제 기준에 점차 맞춰가고 있다"며 "정부의 규제를 탓하기보다 창투사들도 실력을 높이는데 더욱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벤처비리 근절의 원년 되길"
고 사장은 그간 벤처캐피털 업계의 불황과 비리의 원인을 ▲선진국에 비해 짧은 창업투자 역사 ▲벤처캐피털 자본금 중심의 펀드 ▲우수 기술력 갖춘 벤처 부재 ▲창투사들의 실력 부족 등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소위 '게이트'로 일컬어지는 벤처비리는 대부분 투자금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그마저도 벤처 기업인의 탈을 쓴 자들에 의한 것이었지 정통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정부차원의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업계에서도 자율정화 활동을 강화할 것이니 만큼 더 이상의 어이없는 비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에하나 창투사 종사자들은 또 다시 업계 전체를 갉아먹는 비리가 터지지 않도록 도덕적으로 무장해야 하겠다"고 독려했다.
끝으로 고 사장은 "우리나라가 진정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몇 개 더 나오든가, 아니면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 속속 배출돼야 할 것"이라며 "후자와 같은 일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창투업계의 변화되는 모습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고 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미국 MIT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해외 유명 IT기업들을 중심으로 '합작기업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어 80년대 말 맥킨지에서 근무하며 전통 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했던 그는 지난 91년부터 일신창투의 대표로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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