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207일만에 '자유의 몸'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현장 경영'을 위한 첫 행선지가 어딜지를 두고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석방인 탓에 '취업·국외출장 제한'이 걸려 있어 해외 출장을 가기는 쉽지 않은 만큼 반도체 등 국내 주요 사업장에 먼저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가장 먼저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경기도 평택 P3 건설 현장이다. 반도체 부문이 삼성전자의 주력 분야인데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 구도 등에 따른 시급성을 감안해서다.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조성 중인 P3 공장은 70만㎡에 반도체 생산라인 2개 층과 사무실 등 부속 동 5개 층 이상을 합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캠퍼스에 건설하는 6개 라인 중 가장 큰 곳으로, 지난 2019년 완공해 운영 중인 P2 공장보다도 300m 정도 긴 700m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 기지가 될 이곳에선 오는 2023년부터 7세대 적층(V) 낸드플래시와 EUV 기반 10나노미터(㎚)급 D램을 양산할 예정이다.
평택캠퍼스는 메모리 반도체를 담당하는 P1과 시스템 반도체까지 생산하는 P2가 운영 중으로, 각각 30조원 이상 투입됐다. 이 중 P2는 올해 상반기부터 극자외선(EUV) D램과 5나노급 EUV 기반 파운드리 제품까지 양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구속 직전 올해 첫 행선지로 P2 라인의 파운드리 장비 반입식에 참석해 경영진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하는 등 반도체 사업에 공 들여 왔다. 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비전 2030'을 내세우며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오는 2030년까지 향후 10년간 총 17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공백기 동안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샌드위치' 신세가 돼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에선 수퍼사이클이 끝났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선 세계 1위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 상황에서 미국 인텔까지 재진출해 삼성전자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에선 각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 경쟁까지 더해져 오너 공백으로 제대로 된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했던 삼성전자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실제로 파운드리 업계 1위이자 경쟁사인 대만 TSMC는 향후 3년간 1천억 달러(약 114조원)를 투자해 미국 내 공장 6곳을 건설하는 등 대대적 투자 계획을 내놓은 상태로, 최근엔 일본과 유럽 내 공장 설립 검토에도 나섰다.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 역시 2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는 한편, 300억 달러를 들여 세계 4위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에 도전한다. 여기에 유럽에서도 파운드리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 독일 정상들과 최근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해 1월부터 이달 초까지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뚜렷한 계획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미국 파운드리 공장에 17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최종 후보지는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또 평택 P3 공장에 대한 투자도 아직 확정짓지 못했고, 인수합병(M&A)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선 미국 파운드리 공장 투자 결정을 위해 이 부회장이 조만간 미국을 찾을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가석방 상태여서 해외로 나가기 쉽지 않은 데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첫 행선지가 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추격자' 입장인 삼성전자는 TSMC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나 규모의 경제, 생산능력, 고객 수 등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텔까지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압박감이 더 커졌다"며 "그동안 총수 부재로 시장에 맞는 투자 계획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면서 뒤처져 있었던 만큼 이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설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데, 반도체 투자는 한 번에 수십조원 이상이 필요해 전문경영인이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메모리 초격차 유지와 파운드리 추격에 나서기 위해선 총수인 이 부회장의 빠른 결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정부가 반도체·백신 분야에서 이 부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원하고 있는 만큼,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공장을 첫 행선지로 삼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모더나와 수억회분 mRNA 백신 위탁생산계약을 맺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공급될 물량으로, 물량 배분은 모더나 본사를 통해서 진행된다. 이로 인해 생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국내 공장에서 진행되지만, 공급은 국내가 우선 순위가 아닐 수도 있다.
청와대는 그 동안 백신 물량 확보를 두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지만, 최근 물량 부족 사태가 일어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29일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천만 명분의 모더나 백신을 확보했고 올해 2분기부터 국내에 공급키로 했다고 밝혔지만, 2분기까지 국내에 들어온 모더나 백신은 11만1천회 분에 그쳤다. 이후 7월 말까지 들어온 물량은 104만 회분으로 문 대통령이 약속했던 4천만 회분의 3%도 안됐다.
여기에 보건당국에 따르면 모더나는 백신 생산 관련 실험실 문제 여파로 8월에 계획된 공급물량인 850만회 분의 절반 이하만 우리 측에 공급키로 해 백신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또 모더나 수급 불안을 화이자가 메우게 되면서 화이자는 2차 접종 간격을 3주에서 4주로 늦추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예고한 11월 집단면역 달성에 대한 우려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정부는 최근 대표단을 꾸려 미국 매사추세츠주 모더나 본사에 찾아가 구체적인 백신 공급 일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도 받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10월이면 전 국민 70%가 2차 접종을 완료할 것"이라며 "목표 접종률을 더 높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모더나 백신 물량 확보에 실패하면서 가석방 된 이 부회장이 '백신 특사'로서의 역할을 해주길 굉장히 바라는 눈치"라며 "오는 9월 안에 생산이 이뤄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백신 물량을 국내에 먼저 돌릴 수 있다면 수급 불안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듯 하지만 모더나가 이처럼 결정하긴 쉽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백신 공급 문제의 해결사로 가장 먼저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가석방 신분인 상황에서 청와대가 백신 물량 확보에 이 부회장이 나서줄 것을 은연 중에 요구한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졌을 것이란 판단이다.
앞서 청와대는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 관계자들이 협상 마무리 시점으로 예정했던 12월 초까지 화이자 고위 인사와의 협상 창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화이자 회장과 정부 협상단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 적이 있다"며 "이번에도 정부가 이 부회장이 모더나와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줄 것을 상당히 바라는 눈치"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첫 행선지를 두고 일각에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찾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지난 17일 진행된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준법위 위원들과 만나 준법경영 및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외에도 이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철폐를 통한 노사 관계 개선을 강조해왔던 만큼 노조와의 만남에 먼저 나설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또 스마트폰과 가전 사업장이 있는 수원 본사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 13일 출소 직후 삼성 서초 사옥으로 이동해 주요 경영진을 만나 경영 현안을 논의했던 만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라며 "가석방 신분이 다소 걸리지만 주요 사업 현안들을 최근 보고 받은 만큼 조만간 현장 경영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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