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도민선 기자] "의식주(衣食住)가 아니라 주식통(住食通)이다."(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
통신이 생활의 필수재라는 얘기다. 또 공공재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통신업계는 위헌적 발상이라 반발한다. 관계부처 협의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보편요금제 얘기다. 보편 요금제는 위헌 논란 등 업계 반발 및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도 상당하다.
지난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12회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심사가 진행됐다. 사실상 보편요금제의 첫 관문인 셈이다.
하지만 규개위는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질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내달 11일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해 좀더 전문가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는 SK텔레콤과 법안을 발의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 도입에 찬성하는 소비자 단체 등이 참석해 각자 의견을 냈다. 다만 과기정통부 측은 총론만 발표한 뒤 위원들과의 질의는 다음 회의 때 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를 대통령 공약인 '기본료 폐지'를 대신해 나온 현실적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보편요금제가 월 2만원대 요금에 음성 200분, 데이터 제공량 1GB를 예시를 들었다.
의무제공사업자인 SK텔레콤은 이 법이 규개위를 지나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보편요금제를 출시해야한다. 하지만 연간 2조2천억원(이통3사 합계, 정부 추산)의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보편요금제가 달가울리 없다. 이 금액은 지난해 이통3사 매출의 4%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 탓에 규개위 회의에서도 12명의 규개위 민간위원들과 8명의 정부위원들이 보편요금제를 놓고 이견을 보였다.
◆보편요금제는 '위헌'인가?
SK텔레콤과 법률대리인은 과점시장인 통신시장에서의 규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입법을 통한 보편요금제 도입은 사례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강력한 규제라 주장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119조 1항의 예를 들며 국가의 규제는 사적자치의 원칙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 허용돼야 하고, 보편요금제는 이를 뛰어 넘은 정부 시장 개입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
더욱이 이미 이통사는 '보편적 서비스 제도'를 통해 연간 4천억원 수준의 요금감면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기초연금수급자 요금감면 시행으로 늘어난 혜택만큼 이통사 부담도 총 9천억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이에 따라 보편요금제 등 정책적인 추가지원이 필요하다면 정부 재원이나 연간 2조원 규모로 사업자들이 내고 있는 정보통신진흥기금·방송통신발전기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이통업계가 보편요금제에 반대하면서 논란은 이어질 조짐이다. 만약 보편요금제의 입법이 완료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이를 막겠다는 의지까지 보이고 있다.
◆보편요금제로 경쟁 활성화? 연쇄 파장 우려
SK텔레콤은 보편요금제가 출시되면 오히려 소비자 후생이 감소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적 하락 등으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관련 사업의 경쟁력 하락은 결국 이용자 혜택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2년마다 전년도 데이터 사용량과 요금수익을 고려해 보편요금제를 재산정하도록 규정, 이 구조라면 현재 추세를 볼때 결국 통신요금이 0원에 수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이 현 요금제 구성 체계가 '벽돌쌓기'처럼 돼있어, 2만원대 보편요금제뿐만 아니라 전 요금제에서 수익이 악화돼 투자여력 하락의 악순환에 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시장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과 달리 후발업체의 경쟁력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통신회계 전문가인 강병민 경희대 교수(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 위원장)는 "한국 이통시장은 해외에 비해 시장집중도가 높은 게 사실이나 보편요금제로 요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기존 경쟁구조가 망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재무제표를 보면 SK텔레콤의 원가를 추측할 수 있는데, 보편요금제를 견딜 여력이 있는 듯 보인다"며, "하지만 레버리지율이 더 높은 후발사업자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법제화까지 필요할까?
일각에서는 정부가 논리와 통계자료에 오류가 있거나 왜곡된 해석을 바탕으로 보편요금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2~2016년 통계를 근거로 저소득층과 고령층의 통신비가 증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6년까지를 조사기간으로 볼때 전체 가계통신비뿐만 아니라 소득 1분위, 60대 이상 가구주의 통신비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또 최근 4년간 1인당 데이터사용량이 1GB에서 4.6GB로 늘었지만, 가구당 통신요금은 14만5천원에서 12만5천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
정부의 "저가요금제와 고가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324배에 달한다"며 시장실패와 경쟁왜곡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반박했다.
이 같은 차이는 이통사들이 정부 행정지도에 따라 데이터중심요금제의 최저가 요금제에서 300MB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라는 것. 이통사들은 해외처럼 1GB 이상 요금제만을 출시하고 싶었지만, 정부가 소량 이용자들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300MB 요금제를 내놓으라고 했고, 이의 결과에 따른 왜곡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보편요금제 같은 새로운 규제로 이통시장을 압박하기 보다 기존의 요금 인가제 등과 같은 정부 규제를 폐지, 요금 경쟁활성화 등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지연 사무총장은 시장경쟁에만 이를 맡길 수는 없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정지연 사무총장은 "인가제가 폐지되면 소비자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며, "통신사들이 요금을 올릴 때 제어하는 최소한의 역할로 보편요금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알뜰폰 있는데 보편요금제 왜?
규개위에서는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기존 알뜰폰(MVNO)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SK텔레콤은 보편요금제가 출시되면 유사 가격대의 상품을 내놓은 알뜰폰 업계가 직접 타격을 받을 것으로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알뜰폰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의 12% 수준이나, 3만원 미만 요금구간에서는 알뜰폰 사용자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그러나 알뜰폰 보다 브랜드가 우위인 이통사의 보편요금제로 고객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한 민간위원은 "알뜰폰은 가격경쟁력이 있지만, 통신방송결합상품을 판매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입 찬성측인 정 사무총장은 "알뜰폰 업계는 영세한 규모인 업체도 많고, 이통3사의 자회사도 있어 시장의 경쟁활성화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보편요금제 도입 후 알뜰폰 업계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규개위는 내달 속개된 회의에서 이 같은 보편요금제 도입에 관한 치열한 찬반 논란을 더 다루게 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를 참석시켜 의견을 들을 예정인 것. 다만 알뜰폰 업계 관계자를 섭외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도민선기자 doming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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