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현기자] 334년 된 기업이 첨단 산업을 선도해나갈 수 있을까?
독일기업 머크는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원천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의사결정구조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 머크그룹은 1668년 독일 담슈타트의 작은 약국으로 시작해 100년 넘게 대를 이어가며 약국을 운영하다 1827년 알카로이드, 식물 추출물, 기타 화학 제품의 양산에 뛰어들었다. 현재 머크 그룹은 67개국 228개 자회사에서 4만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미국 머크와는 별도 기업인 독일 머크그룹은 의약과 액정, 생명과학 및 시약 그리고, 기능성 안료 및 화장품 원료 같은 화학분야에서 사업을 해나가고 있다. 특히 핸드폰·노트북·TV 등에 빠짐없이 탑재되는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소재인 액정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머크는 창업자 가문인 머크 가문이 13대째 소유하고 있으며, 1995년 기업공개를 통해 순수한 가족기업 형태에서 벗어나 주식합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머크 그룹의 지주회사인 머크(Merck KGaA)의 지분 70%는 모기업 이머크(E.Merk KG)에 있다.
이머크는 머크가 사람들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모회사로 가족 130여명이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한다. 이머크 소속 9명의 파트너위원회가 지주회사 머크의 최고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기구다.
머크 파트너 위원회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회장은 "단기간의 실적에 집착하기보다는 세대를 아우르는 사업을 더욱 중요시했던 점이 가족 경영 체제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밝혔다.
즉, 단기 실적이나 이익보다는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사업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하버캄 회장은 "가족 모두가 다음 세대를 위해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1년에 두 차례, 15~20세, 20~30세 두 그룹으로 나눠 사업 소개회의를 진행하고 미래의 머크 가족을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머크 가문은 어린 시절부터 주주로서 수시로 기업 경영을 배우지만 가족이라 하더라도 머크의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크가 일원이 머크에서 일하고 싶으면 외부에서 전문성을 쌓고 인정 받아야만 경영진의 형태로 참여할 수 있다. 다른 직원들과의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고위 직급에 한해서만 길을 열어두고 있다.
머크가의 역사를 소개한 책 '머크웨이'에 따르면, 머크가 사람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인 길은 우선 다른 회사에서 고위 임원으로 승진한 뒤 그 경력을 인정받아 엄격한 선정 절차를 거쳐 가문의 지지를 얻어 머크에 입사하는 길 뿐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검약과 기업가 정신을 앞세우는 게 머크의 전통"이라며 "머크 가문의 이익을 대표하는 13명의 가족위원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존 바움하우어 위원장은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섞여 밥을 먹으며 그만을 위한 전용 라인이나 식탁은 물론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가족이 매주 경영진으로 상황을 보고 받는 등 머크의 경영과 소유가 완전히 분리됐다고 볼 수 없지만, 머크는 가족과 사업자금을 분리해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오히려 안정적인 경영구조를 갖췄다.
하버캄 회장은 "우리 가족은 화려한 전용 비행기가 없다"며 "가족이 몇 세대에 걸쳐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자금을 쌓아두고 모든 자금은 기업이 최상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금은 2007년 스위스 생명공학 기업 세로노를 인수하고, 2010년 미국 생명과학 기업인 밀리포어를 인수해 머크가 바이오시밀러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밑거름이 됐다.

또한 머크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액정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 선두업체이기도 하다.
머크는 1904년부터 액정 디스플레이 소재 연구를 시작해 OLED, 백색 LED용 형광체, 유기 TFT 등 다양한 차세대 물질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머크가 2005년까지 액정·액정 혼합물·디스플레이 응용 기술과 관련해 보유한 특허만 2천500건에 달한다.
액정은 현대 전자 산업의 키를 쥐고 있는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크는 이 달에도 11개 기업과 연구소가 3년간 참여한 프로젝트를 통해 OLED 신소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LCD에 비해 수명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OLED의 수명을 늘리고 기존 OLED의 진공증착 방식을 인쇄 공정으로 돌릴 수 있는 소재라 제품 단가 하락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르겐 퀘닉 한국머크 사장은 "액정기술은 원래 머크가 100여년 전 개발했으나, 당시에는 응용분야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100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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