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에세이]
"내가 예술원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어, 심사에서 학력만 보더라구. 우리 때야 먹고 살기 힘든 데 그런 것 갖출 여건이나 됐나. 우리 세대 예술인에게 학력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야, 그런 간판(학력)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건지..."
팔순을 앞둔 한 원로 영화인이 문화예술계의 학력 문제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그는 일평생을 충무로 영화계에서 실력과 작품 하나로 존경을 받아왔지만 정작, 예술인에게 학력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이 영 탐탐칙 않았던 모양이다.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에 이어 광복절 아침 날아든 연극배우이자 돌꽃컴퍼니 대표인 윤석화씨의 학력위조 소식으로 문화예술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제 '다음 차례는 누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동안 안팎에서 쉬쉬했던 학력위조 문제가 이참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윤석화씨는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인물이란 점에 앞으로 문화예술계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은 적잖아 보인다.
문화예술계에 이처럼 유독 거짓학력과 경력이 많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원로 영화인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한 전문성과 연극-영화-문학-미술 등 각 분야에서 쌓아올린 공로보다는 '학력'이라는 겉포장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제 아무리 그 바닥에서 실력으로 인정을 받았어도 학벌이 없으면 말년에 별 볼일 없다'는 게 문화예술계에 만연된 사고이자 풍토이다.
실례로, 국내 예술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예술원이나 정부 기관이 운영하는 각종 문화예술단체의 회원이나 심사위원에 한번 오르려면 실력과 인품보다는 소위 '잘 나가는 학벌이나 학위'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는 게 예술계 인사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늦깎이 유학을 떠나거나, 대학 등 강단에 서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학력위조'라는 잘못된 풍조를 스스로 바로 잡지 못한 문화예술계의 책임도 크지만 '학벌 좋은 예술인이 더 존경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사고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고해성사를 하기까지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윤석화씨의 고백처럼 이러한 사회적으로 만연된 인식과 풍토를 버리고, 깨뜨리지 않는 한 문화예술계의 학력위조 도미노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홈페이지를 통해 "나는 이대에 다닌 적이 없다"며 자신의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한 연극인 윤석화씨.]
정진호기자 jhjung@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