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애플이 지난 5일 '최초의 공간컴퓨터'라는 수식어를 붙인 '비전 프로'를 발표하면서 확장현실(XR) 시장에서의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내 산학연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에서는 과기정통부가 '미래 디스플레이 민·관 협의체'를, 산업통상자원부가 'XR 융합산업 동맹'을 각각 출범시키면서 부처간의 정책 주도권 경쟁도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국내 XR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XR 융합산업 동맹'을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XR 동맹'은 '국내 공급망 구축 및 협업 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산업부는 "XR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으며, 특히 애플, 메타 등 글로벌 선도기업의 참여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어 국내 XR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산업간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동맹'을 결성한 배경을 설명했다.
'XR 동맹'에는 XR 부품-세트-서비스기업과 유관기관들이 참여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피앤씨솔루션,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레티널, 버넥트 등 관련기업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등 유관기관이 함께 한다.
산업부는 "앞으로 참여기업들은 XR 기술로드맵 수립, 협업모델 개발, 전문인력 양성 등 기반구축과 미래전략 수립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에는 과기정통부가 주도한 '미래 디스플레이 민·관 협의체'가 출범했다. 과기정통부는 '디스플레이 미래기술 수요 발굴, R&D 고도화, 성과 교류·협력, 인력양성' 등을 '협의체'의 목적으로 내세웠다.
협의체의 총괄위원회에는 이신두 위원장(前 서울대 교수)을 필두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선익시스템, 라온텍,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등이 이름을 올렸다.
과기정통부는 "협의체는 각계 소통 및 교류 지원과 함께 정부의 디스플레이 R&D 정책과 사업에 상시적으로 민간의 수요와 의견을 반영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밝혔다. 또한 "민간 수요에 근거한 신규사업 기획, 정책 및 사업 계획 공유, 성과 교류는 물론, 전문 연구인력 양성 등 인프라 고도화 등도 담당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의 '협의체'는 연구개발(R&D)에, 산업부의 '동맹'은 산업육성에 방점이 찍혀 있기는 하지만 출범취지나 운영계획, 멤버구성 등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양 부처 모두 보도자료에서 애플의 ‘비전프로’와 메타의 ‘메타퀘스트’를 언급하면서 XR시장의 급성장과 치열한 경쟁상황을 열거하고,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민·관 협력을 통한 기술·시장 선점', '전후방산업간의 유기적인 협력', '기술로드맵 수립', '인력양성' 등을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특히 "그동안 정부에서는 디스플레이 분야 R&D를 꾸준히 지원해 왔으나, 응용·개발 단계 R&D 중심이었다."며 응용·개발 단계 R&D를 관장하는 산업부를 견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산업부의 '국가 R&D 정책비판'에 맞불을 놓은 형국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 둘러싼 해묵은 갈등 표출
최근 산업부는 '정부 R&D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표현을 써가며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국가연구개발(R&D)투자의 생산성을 높일 해법을 찾겠다"며 '기술혁신 프론티어 포럼'을 발족하기도 했다.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는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다.
산업부는 당시 "'기술혁신 프론티어 포럼'은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 전반을 폭넓게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라고 밝혀 과기정통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과기정통부가 '미래 디스플레이 민·관 협의체'를 출범하면서 "디스플레이 분야 정부R&D 규모가 (과기정통부의) 기초·원천 분야는 386억원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산업부의) 응용·개발 분야는 2천600억원으로 80%를 차지한다"고 강조한 것은 '밑 빠진 독에 부은 물'의 대부분이 산업부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기존 우위분야 뿐만 아니라 향후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초·원천 연구 분야도 균형 있게 지원하기 위해 내년부터 미래 디스플레이 원천 연구를 위한 신규사업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부처간 영역 싸움이 물밑경쟁이 아니라 이처럼 '보도자료'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은 지난 2년간 '국가전략기술'을 둘러싸고 양 부처 간에 벌어졌던 신경전이 마침내 폭발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산업부와 과기부는 '첨단전략산업법'과 '국가전략기술법' 제정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혀 왔었다. 긴축재정 기조 속에 부처간 내년도 예산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XR동맹'와 '협의체' 발족의 근거도 산업부는 "지난 5월 산업부가 발표한 '디스플레이산업 혁신전략'"을, 과기정통부는 "지난 4월 과기정통부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디스플레이·반도체이차전지 등 3대 주력기술 분야 초격차 확보를 위한 R&D 전략"을 내세웠는데 이 역시도 양 부처간 영역싸움의 단면일 뿐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미래 디스플레이 민·관 협의체' 발족행사에서 “디스플레이 분야는 우리 민간의 우위역량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1위를 지켜왔지만, 2021년 중국의 추격으로 세계 2위로 밀려났고, 현재 우리 우위분야인 OLED 기술도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늘 미래 디스플레이 민·관 협의체 출범을 계기로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계의 주요 기관이 함께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협력하여 세계 1위 수준의 디스플레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정부도 전략적으로 R&D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어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바꿔도 손색없는 발언이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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