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신시장이 폭풍에 휘말려 있다. 바로 거대한 '인수합병' 폭풍이다. 지난 해 초부터 불을 지피기 시작한 통신시장 인수합병 바람은 유무선 사업을 가리지 않고 올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다.
왜 미국 통신시장에 인수 합병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또 합병 바람이 잦아들고 난 뒤 통신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아이뉴스24는 '미국통신 시장 빅뱅' 시리즈를 통해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미국 통신시장을 집중 해부한다. <편집자 주>
◆ 계속되는 통신시장 대형 M&A
지금으로부터 꼭 1년전인 2004년 2월 17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제2의 이동통신회사인 싱귤러 와이어리스(이하 싱귤러)가 라이벌인 AT&T 와이어리스를 410억 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싱귤러는 AT&T 와이어리스 인수를 통해 단번에 이동통신시장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이동통신시장 빅뱅이 마침내 성사된 것. 하지만 싱귤러의 AT&T 와이어리스 인수는 '통신시장 빅뱅'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지난 해 12월에는 스프린트가 넥스텔 커뮤니케이션즈를 합병하면서 '이통시장 빅3' 대열에 합류했다. 주식 교환 방식으로 성사된 스프린트-넥스텔 합병 규모는 무려 710억 달러. 넥스텔 주주들은 기존 보유 주식의 1.3배 상당을 합병회사인 '스프린트 넥스텔' 주식으로 받을 예정이다.
스프린트 넥스텔은 합병 작업을 완료한 뒤에는 기존 지역전화 사업을 분사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된 이동통신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조치다.
또 올해 초에는 올텔이 미국 6위의 이동통신사업자였던 웨스턴 와이어리스를 44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또 하나의 이통사업자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지난 해의 '빅딜' 여파로 미국 이동통신시장은 '3강1약 구도'로 정착됐다. 전국적 사업망을 구축하고 있는 싱귤러 와이어리스,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스프린트 넥스텔의 '빅3'와 T-모바일이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동통신시장에서 시작된 지각변동 바람은 올 들어선 유선사업 쪽으로 번져 나갔다. 연초부터 대형 인수합병이 두 건이나 성사된 것이다.
그 신호탄은 지난 해 이통시장 빅뱅의 진원지였던 싱귤러 와이어리스의 모회사인 SBC 커뮤니케이션즈가 쏘아올렸다. SBC는 지난 1월 31일 AT&T를 전격 합병하면서 통신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인수규모는 220억달러.
특히 SBC의 AT&T 합병은 '자회사가 모회사를 역인수'한 사례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난 1984년 반독점 소송에서 패배하면서 AT&T와 7개의 베이비(아기)벨로 분할됐던 AT&T가 20년만에 베이비벨 계열인 SBC 품에 안긴 것.
이어 지난 13일에는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가 MCI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 해 가을부터 MCI 인수를 추진해 오다가 잠시 주춤했던 버라이즌은 SBC의 AT&T 인수합병에 자극을 받은 듯, 협상 끝에 결국 67억5천만달러에 MCI를 손에 넣게 됐다.
◇ 2004~2005년 미국 통신시장 주요 M&A 일지
| 인수합병발표일 | 인수회사 | 피인수회사 | 인수규모 |
| 2004.2.17 | 싱귤러 와이어리스 | AT&T 와이어리스 | 410억달러 |
| 2004.12.15 | 스프린트 | 넥스텔 커뮤니케이션즈 | 350억달러 |
| 2005.1.10 | 올텔 | 웨스턴 와이어리스 | 44억달러 |
| 2005.1.31 | SBC커뮤니케이션즈 | AT&T | 220억달러 |
| 2005.2.13 |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 | MCI | 67억5천만달러 |
이로써 유선시장은 SBC와 버라이즌의 양강구도로 재편됐다. 시내전화사업자인 SBC와 버라이즌이 장거리전화 사업자인 AT&T와 MCI를 인수하게 되면서 시내전화와 장거리전화 간의 사업자 경계도 무너지게 됐다.
물론 SBC-AT&T, 버라이즌-MCI 합병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FCC)의 허가를 받아야만 합병이 완전 성사된다. 하지만 공화당인 부시 정부가 '탈규제' 기조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인수합병 자체에 제동을 걸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소모적 경쟁 줄이려는 게 대세
최근 들어 미국 통신시장이 빅뱅 회오리에 휘말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규모의 경제 실현'이다. 과당 경쟁으로 ▲수익성 악화 ▲장기적인 사업경쟁력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통신업체들에게 '합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미국 통신시장이 사실상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게 된 연원을 따져 들어가면 1984년 AT&T 분할 조치를 꼽을 수 있다. '독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AT&T를 8개 회사로 분할한 미국 정부는 통신시장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더 이상 AT&T 같은 공룡 기업의 탄생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독점업체 출현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대로 '과열 경쟁'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7개로 출발한 베이비벨이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해, 현재는 4개만 남게 됐다.
지난 1996년의 통신법 개정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통신법 개정으로 시내전화 사업자가 장거리전화사업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두 사업영역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게 된 것. 이에 따라 AT&T와 MCI 같은 장거리사업자들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결국 지역전화 사업자들에게 인수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이런 추세는 이동통신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동통신사업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긴 했지만 단말기 및 서비스 수요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싱귤러가 AT&T 와이어리스 인수란 모험을 감행한 것도 바로 시장 1위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스프린트 역시 3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넥스텔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도모해야만 했다.
| < AT&T 분할 조치란? > AT&T는 독점의 폐해를 우려한 미국 법무부의 제동에 여러 차례 멈춰야만 했다. 1913년 독립 지역전화회사들과 AT&T의 장거리 전화네트워크가 상호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킹스베리 서약'이 법무부의 최초 제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1974년 '장거리전화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다시 AT&T를 반독점 혐의로 제소했다. 결국 1982년 1월 AT&T는 패소했고 법무부의 지역전화 사업 분리 조치를 수용하기로 하면서 1984년 8개의 회사로 쪼개졌다. 특히 미국 정부는 통신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정책적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AT&T는 장거리전화사업, 쪼개진 나머지 7개 회사는 각 지역에서 시내전화사업을 하는 지역전화사업자로 나눈 것이다. 벨 계열의 전화사업자 외에도 GTE(시내전화사업자), 월드컴, MCI, 스프린트(이상 장거리전화사업자)등의 독립적인 전화사업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겼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은 신규업체들에게는 좋았지만, 대신 무한경쟁 체제에 접어들게 된다. 1980년와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7개의 베이비벨이 SBC, 벨사우스, 퀘스트, 버라이즌 등 4개 업체로 줄어들었다. ![]() ◆ 수평적 합병에서 수직적 합병으로 물론 통신시장 합병 바람은 최근에만 있던 현상은 아니었다. 1984년 AT&T 분할 조치 이후 '합종연횡'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합병은 지금까지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서비스 지역을 늘리기 위한 단순 수평적 합병 위주에서 사업영역을 늘리는 수직적 합병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수직적 합병은 더 커진 규모를 바탕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본적인 시너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역전화사업자간 인수합병이 활발했다. 이 때만 해도 영역 확장을 위한 몸집 키우기식 합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분출자를 통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거나 지역전화사업자가 장거리전화사업자를 흡수하는 식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인수합병 경쟁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통합된 서비스를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얻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SBC는 싱귤러 지분출자를 통해 이동통신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 기존 지역전화사업에 더해 AT&T의 장거리 통신망까지 확보하게 됐다. SBC는 이를 바탕으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은 물론 AT&T가 진행하고 있던 인터넷전화 서비스인 콜밴티지 사업도 그대로 이어받게 됐다. 버라이즌 역시 제2위 이동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지분을 55%나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제 2위의 장거리사업자 MCI 통신망을 가져오면서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버라이즌은 최근 보다폰이 보유하고 있는 버라이즌 와이어리스의 나머지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신산업 전체에 퍼져 있는 '통합서비스' 제공 분위기와도 흐름을 같이 한다. 사업자 입장에선 유무선 통합 서비스를 통해 고객 이탈을 막을 수 있어서 좋고, 고객들 역시 단일화된 창구를 이용할 경우 불편 해소가 한결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통합된 서비스의 질이 충분히 담보될 것인가, 이를 위해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또는 서비스 가격은 어떻게 책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부터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 ![]() ◆ SBC-AT&T, 버라이즌-MCI 합병의 의미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SBC와 버라이즌이 AT&T와 MCI를 인수한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지역전화 사업자가 장거리전화 사업자를 합병했다는 의미 이상이다. 우선 두 기업은 유무선을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를 통해 전체 통신시장의 지배적인 사업자로 올라설 준비를 마쳤다. 또 AT&T, MCI 등 장거리 사업자가 대부분 갖고 있던 기업고객들이 지역전화 사업자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매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업고객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곳은 AT&T(연매출 245억 달러)이며 2위가 바로 SBC(203억 달러)이다. 기업 시장 1, 2위 업체가 전격 합병한 셈이다. 기업고객 서비스를 통해 연매출 152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버라이즌으로선 SBC-AT&T 커플 탄생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결국 막강 커플에 대항하기 위해 MCI를 서둘러 합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MCI의 기업고객 매출은 183억달러다. 이렇듯 우량 기업고객들이 SBC와 버라이즌에 그대로 편입되면서 수익성에 있어서도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미국 통신시장을 양분하게 될 SBC와 버라이즌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