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시장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사실상 양강 체제로 정리됐다. 한 때 지역전화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와 SBC 커뮤니케이션즈가 광활한 통신시장을 놓고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된 것이다.
버라이즌과 SBC는 1984년 AT&T의 강제 분할 조치로 만들어진 베이비벨의 후예들. 이들은 이후 여러 업체들과 합종연횡을 거치면서 미국 통신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05년 벽두부터 각각 AT&T(SBC)와 MCI(버라이즌) 합병이란 '잭팟'을 터뜨리면서 미국 통신시장을 양분하는 전국적 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게 된 것.
양사는 합병을 통해 유무선을 아우르는 통합 통신서비스, 이른바 '논스톱 통신서비스'란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국적 통신망을 바탕으로 한 통합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야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버라이즌과 SBC는 장거리전화사업자를 인수하면서 통신 네트워크는 물론 고객기반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통방 융합으로 사업영역 구분 의미 없어져
SBC의 웨스 워녹 대변인은 최근 AT&T와의 합병승인을 요청하기 위해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장거리전화사업자와 지역전화사업자간의 합병은 소비자는 물론 임직원, 주주, 통신산업 전반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고 강조했다.
1996년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통신법이 개정되면서 통신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2000년 이후 인터넷통신망을 통해 통신-방송간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사업영역 구분이 의미없어졌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전화의 경우 이동전화처럼 개인 고유의 IP번호와 인터넷망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같은 번호로 통화할 수 있다. 시내, 장거리, 국제 전화를 가리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 경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더이상 종래의 통신관련법을 적용하기 힘들게 됐다. 인터넷전화 한가지가 상황에 따라 시내전화, 장거리전화, 국제전화 등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들어 SBC는 "전국적인 통합서비스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면 서비스 제공이 한결 수월하다"는 이유를 들어 FCC에 합병 승인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SBC와 AT&T는 합병 승인의 이유로 '국가안보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이 외국업체에 인수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T&T는 백악관, 국토안보부, 국무부, 국방부 등 수많은 주정부 관련기관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 버라이즌과 SBC가 얻게 될 이익
SBC와 AT&T간 합병이 성사되면 개인용 지역전화시장의 27%, 개인용 장거리시장의 37%를 차지할 전망이다.
또 기업용 시장에선 'AT&T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AT&T가 지난 해부터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개인소비자의 장거리전화 가입은 받지 않겠다고 천명하긴 했지만 기업고객부문에서만큼은 막대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올해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전화 및 데이터 서비스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SBC는 이러한 AT&T의 기업고객 영업능력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해 말부터 신규사업 진출에 의욕을 보여온 SBC는 올해 IPTV와 인터넷전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AT&T를 인수하면서 확보하게 된 초고속 통신망은 SBC 사업 전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 AT&T의 인터넷전화 사업인 '콜밴티지(Call Vantage)'를 그대로 이어받게 돼 2005년 중 인터넷전화 사업을 하겠다는 그동안의 공언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버라이즌도 MCI 인수로 SBC에 필적하는 진용을 갖추게 됐다. MCI 인수를 통해서 당장 1천400만명의 개인고객과 100만 군데의 기업고객을 얻게 된 것. 이제까지 주로 장거리전화회사들의 몫이었던 기업고객을 대거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버라이즌이 MCI 인수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봤던 부분이기도 하다.
비용 측면에서도 두 회사는 확실한 이익을 얻게 된다. 버라이즌과 SBC가 합병으로 얻을 수 있는 예상매출은 각각 연 700억 달러 규모다. 지난 해 말 넥스텔 커뮤니케이션즈를 합병한 스프린트가 합병 후에 얻게 될 매출이 연 350억달러로 예상되는 데 비하면 엄청난 규모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네트워크 운영과 요금부과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추가적인 자본투자 규모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버라이즌의 경우 인건비 절약을 위해 7천명 정도의 인력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버라이즌은 내년 1분기까지 MCI 인수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인데 합병 이후 첫해에는 5억달러, 2년째는 7억5천만달러, 3년째는 10억달러 정도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버라이즌 역시 SBC와 마찬가지로 TV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이미 텍사스에 TV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텍사스주 댈러스와 캘리포니아주 LA근교에 이미 케이블 사업권을 획득해 놓기도 했다.
◆ 케이블업체들과의 경쟁 피할 수 없을 것
전화와 인터넷, TV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겠다는 양사의 전략은 곧 케이블업체들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많다. 컴캐스트, 타임워너, 콕스커뮤니케이션즈 등 케이블업체들은 이미 각각의 서비스 지역에서 전화시장에 진입해 무서운 기세로 유선통신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타임워너는 지난 한 해동안 20만명의 전화서비스 가입자를 유치했으며 컴캐스트 전화 서비스 가입자는 오는 2006년까지 4천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콕스커뮤니케이션스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지역의 시내전화시장에서 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또 이 업체들은 인터넷전화사업도 한다. 컴캐스트는 이미 3개 주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며 콕스 커뮤니케이션즈도 월 49달러의 요금을 받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통신업체들은 케이블과 TV 사업 진출을 통해, 케이블업체들은 전화와 인터넷전화 사업 진출을 통해 서로의 영역을 넘보면서 통방융합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 SBC와 버라이즌의 사업영역 |
| SBC 커뮤니케이션즈 | 사업영역/규모 |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즈 |
|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 13개주 | 시내전화(지역전화) | 뉴욕, 버지니아 등 동부지역 12개주 |
| 13개주(제2위 장거리 사업자) | 장거리전화 | 51개주 전역 |
| 싱귤러 와이어리스 지분 60% 보유 | 이동통신 |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지분 55% 보유 |
| 웹포털 서비스(야후와 공동) | 인터넷(DSL) | 웹포털 서비스(야후와 공동) |
| AT&T의 콜밴티지 사업 인수. 월 29.99달러 | 인터넷전화 | 서비스명 보이스윙. 월 24.95달러 |
| 올 중반 시범서비스, 올해 말부터 상용서비스 예정 | IPTV | 텍사스에 시범서비스중 |
| 매출 410억달러, 순익 85억달러 | 실적(2003년) | 매출 678억달러, 순익 31억달러 |
| 16만7천명 | 직원수(합병 전) | 20만명 이상 |
케이블업체들은 대체로 "통신업체들이 서비스를 위해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전화 네트워크망의 기술력은 아직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며 통신업체들의 IPTV 서비스 도입에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조사기관 인사이드 디지털 미디어의 필 레이 사장은 "지금 통신업체들은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한 변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변신하는 것이다. 통신업체의 현재 움직임이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에서 감행된 것임을 안다면 케이블업체들은 분명 긴장해야 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두 회사의 계약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번 합병 계약이 통신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법무부 반독점 조사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연방통신위원회(FCC)도 '공익'을 침해하지 않는지의 여부를 심의한다.
인터넷뉴스닷컴은 업체들의 합병 계약 체결 소식을 보도하면서 "합병 승인이 나는 데까지는 최대 12개월에서 18개월까지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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