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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결산①]강수연이 포기하지 않은 한 가지(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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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영화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꼭 1년 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 레드카펫에 선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위기의 상황에 처했던 영화제에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발을 들인 그는 영화제 수장으로는 처음 레드카펫을 밟았다.

하지만 그날도 부산에는 태풍과 함께 비구름이 몰려왔다. 비행편을 통해 부산에 오기로 돼 있던 게스트들은 기상 악화로 급히 경로와 수단을 변경했다. 도착 스케줄도 의전 계획도 허무하게 꼬여버린 날이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KTX를 타고, 혹은 예정에 없던 나라를 경유해 무사히 개막식에 도착했다.

그리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비바람을 뚫고 부산을 찾아 준 국내외 영화인들을 한 명 한 명 미소로 맞이했다. 개막식이 끝날 무렵, 근사하게 차려입었던 드레스는 비에 흠뻑 젖어 아주 다른 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화제의 얼굴 마담"이라 불리곤 했던, 그런 이야길 듣고도 "얼굴 마담을 하라면 해야지!"라며 호탕하게 맞장구를 쳤던 강수연 집행위원장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진 순간이었다.

1년 전 영화제 폐막을 앞두고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나눴던 대화를 돌이키면, 그는 물론 영화계와 언론계 역시 당시로선 이듬해인 올해 영화제 개최를 낙관했었다. '다이빙벨' 상영 결정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영화제와 부산시의 대립이 영화제의 스무 돌을 기점으로 느슨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희망은 빠르게 일그러졌다. 난관 속에서도 성공적 개최를 이뤄낸 영화제 조직을, 보복 의도로 해석되는 회계 감사와 고발이, 그리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해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영화계의 상징적 스타이기도 한 강수연은 1년 전 난관을 이 전 집행위원장과 함께 나눠 졌었다. 예측할 수 없는 정국 속에서 결국 강수연은 올해 영화제 준비 기간 동안 집행위원장직을 홀로 수행했다. 그간 며칠을 풀어놔도 다 말하지 못할 사건들이, 당혹감이, 스트레스가 쌓여갔을 법하다.

하지만 영화제 폐막을 앞두고 만난 그는 그저 담대했다. "처음엔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 개인 강수연의 입장이나 생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강수연은 어느덧 충무로 원조 스타의 존재감을 넘어 영화제 조직의 믿음직한 리더가 되어있었다.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영화"임을 강조하며 "한 작품도, 한 명의 영화인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올해 영화제를 돌아봤다.

이하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일문일답

-우여곡절 많았던 영화제의 폐막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

"지금은 후반부라 이렇게 앉아있을 시간이 있지만, 전반부엔 기자들을 5분, 10분씩 만나야 했을 정도로 바빴다. 잠을 못 자는 게 힘들다. 가끔 말을 하다 조는 기분도 든다.(웃음)"

-막역한 사이였던 김동호 이사장(조직위원장의 새 명칭)이 부임한 뒤엔 부담이 줄었는지도 궁금하다. 업무 분장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일의 양이 많고 적은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책임감이 굉장히 많아졌다. 일단 김동호 이사장 부임으로 민간위원장 체제가 되면서 많은 부분을 영화제가 한정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이전엔 시장이 조직위원장이었으니 행정적으로 시의 도움을 받은 면이 있었다면, 이제 영화제 자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들이 생겼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고무적이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변화라 굉장히 혼란한 시기다. 불안한 면도 있고, 영화제에 자율성이 생긴 만큼 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작년 이 자리에선 '내년엔 괜찮겠지'라고 전망했었는데.

"올해도 '내년엔 괜찮겠지'라고 한다.(웃음) 내년에는 영화제를 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는 안 나오지 않겠나. 매년 영화제를 하다 보면 힘든 순간들, 예상 못한 순간들이 있겠지만 개최 자체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없는 상황은 심각한 것이었다."

-외압 논란도 있었지만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영화인 비대위)의 보이콧 결정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영화제가 표현의 자유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싸워왔지만,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다르다. 네 단체가 보이콧 결정을 유지했고 네 단체가 철회, 한 단체가 유보 입장을 취했다. 모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은 같았다. 영화제에 대한 애정과 지지는 다 똑같았다. 영화제가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의심할 필요 없이 같았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과 입장에 따라선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예산이 줄어 부대행사나 관객 이벤트 등이 많은 부분 축소됐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것이 확정되고 나서 전체 사업 규모가 줄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대행사를 없애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관도 많이 줄었다. 이 정도 규모 축소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건 각오하고 있었지만 태풍과 김영란법(으로 인한 리셉션 등 행사 축소) 등은 예상 못했다.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그래도 영화제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개최했다."

-예산 축소로 인한 빈틈을 어떤 다른 강점으로 메우려고 노력했는지도 궁금하다.

"작아진 것은 못 덮는다. 그건 거짓말 아닌가. 이 정도로 작아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했다. 더 작아질 거란 예상을 했는데 마지막에 그나마 보완이 된 면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야기했지만 다른 것을 다 못하거나 포기해도 괜찮다고, 비난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단 하나, 영화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포기하는 순간 영화제의 개최 여부를 문제삼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본질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개막 전날엔 태풍으로 인한 무대 훼손 등의 피해를 입었는데.

"태풍에 해운대 무대가 물에 떠다닐 때, 관객들이 굉장히 위축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바람 속에 관객이 와도 안 되는 일 아닌가. 모든 비행기가 결항됐고 해외 게스트들은 비행기가 멈춰 다 다른 지역에 있었다. 개막 전날까지 '올해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오후에 거짓말처럼 해가 나더라. 최악을 예상했었는데 그것보다 나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러 난관 속에서도 놓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부산국제영화제의 본연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했다. 심각하게 생각한 말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0회 만에 이렇게 사랑받고 성공하고 인정받게 된 데에는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작가 발굴, 아시아 영화 지원, 아시아 영화 교육, 아시아 영화의 연대가 있었다. 그것이 이 영화제가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아 영화제를 못 열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지원과 관련해) 한 작품도 양보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지원작 규모를 축소해 준비하려 했는데, 절대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큰 영화를 포기하더라도 지원 작품에선 한 작품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늘리진 못했지만,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영화 전체 프로그램의 흐름을 만드는 데 굉장히 신경 썼다. 다행히 지금 오늘까지 참가한 게스트들은 그 부분을 인정해줘서 너무 좋다. 물론 영화제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되겠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살려준 것도 아시아 영화라 생각한다. 너무 다양한 국가의 감독과 영화들이 나와줬다. 물론 우리 프로그래머들이 굉장히 열심히 찾았다. 어느 때보다 모든 포커스를 맞춰 일했다. 한국 영화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 좋다는 평가와 결과도 나온다. 아시아 감독들 중엔 벌써 해외에서도 접촉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중국의 감독을 만났는데, 여기에 와서 다른 영화제 초대를 받았다고 큰 절을 하더라.

영화인들의 보이콧 이후 프로그램 구성을 못 하고 있지 않았나. 한 달 조금 남기고 시작했다. 한국 영화인들이 보이콧을 하면 영화만 안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모든 부대행사들을 다 진행하지 못한다. 모두 보이콧을 하는데 어떻게 행사를 하고 초청을 하겠나. 불과 한 달을 남기고 프로그램을 시작했음에도 이만큼의 결실이 나온 건 기적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지지해줬다. 관객들도 많이 찾아줬다. 하루 하루 절하고 싶을 정도의 기분이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영화의 힘인 것 같다. 물론 우리 프로그램팀, 영화인들이 고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빠른 시간에 단합해서 영화제를 도와준 것이다. 특히 올해 영화제가 복이 많다고 생각하는 점은 너무 다양한 신인 감독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는 지점이다. 그게 가장 기쁘다. 정말 영화제를 하길 잘 했다는 이야기와 결과들이 들리고 있으니까."

-비전 부문 등 한국 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칭찬은 정말 많이 들었다.

"예산이 30% 줄었으니 사업의 규모도 확 줄었다. 게다가 (태풍으로) 바닷가 행사가 취소됐다는 건 관객을 위한 서비스가 줄었다는 것이니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올해 초 영화제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심각한 불안에 내 자신이 시달렸을 때, 영화제를 꼭 하겠다고 한 이유는 절대 단 한 작품,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기존에 감독조합이 주관했던 비전 부문은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라 준비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인 비대위를 만나서도 비전 부문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한 작품도 줄이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제발 영화를 많이 보내 달라고 했었다. 결국 이런 소용돌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영화인, 관객 아닌가. 그 피해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영화제가 본연으로 돌아가서 본연의 것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올해 좋은 성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회고전도 그렇고, 좋은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감독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여지껏 부산을 통해 많은 아시아 작가들이 발굴됐지만 올해 특별히 더 많이 인정받고, 세계 시장에 알려지고, 한국영화는 흥행도 얻었으면 좋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창동 감독과 대담을 연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제에 대한 지지의 크기를 짐작케 했는데, 이들의 섭외 과정도 궁금하다.

"두 감독은 영화제가 겪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지지의 글도 보내준 분들이었다. 한국 영화인들 못지 않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애정이 있는 분들이다. 영화가 없어도 무조건 오겠다는 이야기에 우리도 깜짝 놀랐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너희가 올해 힘드니 내가 자비로 가겠다'는 이야기도 해 줬다. 사실 어떤 화려한 스타보다도 영화제에서 이 세 명의 감독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선물이고 도움 아닌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거장이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전 세계 영화 시장에 많지 않다. 오직 부산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년 영화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내년보단 우선 올해 잘 끝내면 좋겠다. 하루 하루 너무 힘이 들었는데, 올해 알차게 잘 끝내 결실을 맺길 바란다."

-강수연이라는 인물은 한국영화계를 상징하는 스타다. 사실 이런 고된 직책을 맡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 않나. 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가.

"작년에는 정말 솔직히 모르고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고, 작년이 지나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얻지 못하고 이렇게 극단의 상황으로 몰려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을 저녁마다 할 정도다.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는데,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오다보니 영화인들과 관객, 그 사이에서 영화제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지 개인 강수연의 입장이나 생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영화고 관객이다.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책임도 느낀다. 이들이 세계 영화계를 향해 나아가는 만큼 조합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개인 강수연의 의견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 함께 일을 마치고 저녁에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제 영화제의 내년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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