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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이수경, '침묵'이 남긴 이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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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쩡 넘어가고 싶지 않아요"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4년 전 단편 '여름방학'(감독 손태겸)에서 배우 이수경을 처음 봤다. 28분 분량의 짧은 이야기 속, 이수경은 소년 준희(박종찬 분)의 주변을 서성이던 소녀 순영을 연기했다. 순영은 우연히 준희의 비밀을 마주하고, 이를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에게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한다.

'여름방학'은 지난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무심한척 쭈뼛대며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 이수경의 얼굴은 극장을 나서면서도 쉬 잊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과 입매를 하고선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분명 뭔가가 깃든 감정을 쏘아대던 모습이 이 배우를 간단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지난 2012년 제작된 이 단편은 배우 이수경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펼쳐 보인 데뷔작이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을 하고, 어디서도 본 기억이 없는 색깔의 연기를 하던 이수경의 눈엔 여전히 그 묘한 기운이 담겨있다.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에서 빨간 머리를 한 채 어두운 세계를 지키던 쏭,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 속 '밀당'의 고수 호경을 떠올리면 숨을 내뱉듯 편안하게 대사의 결을 살려내는 이수경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표정 없이 학원가를 오가는 수재 고등학생 예은으로 분한 단편 '티치 미'(감독 김민주), 연애 금지 조항에 맞서는 서현 역을 맡아 또랑또랑한 눈동자를 빛낸 단편 '윤리거리규칙'(감독 이정곤), 타이틀롤로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연기한 '용순'(감독 신준)과 통통 튀는 20대를 연기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감독 조용익)까지, 모두 이수경이란 배우가 지닌 풍성한 재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지난 5년여 간 이수경의 활약은 이토록 꾸준했다.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공력을 쌓고 담력을 키웠다. 상영 중인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 제작 용필름)의 미라는 그런 이수경이 물을 만난듯 반갑게 그려낼 수 있는 배역이었다. '특별시민'에서 한 차례 호흡을 나눴던 최민식과 또 한 번 부녀 관계를 연기했다.

미라는 죽은 엄마의 자리를 새 약혼자로 대신하려 하는 아빠에게 단단히 화가 나 비뚤어진 인물이다. 아빠 태산 역 최민식, 그의 연인 유나 역의 이하늬는 미라가 표출하는 분노의 주된 대상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이수경의 연기에 가장 놀랐을 법한 장면들 역시 그가 두 배우와 맞붙은 신들이다.

특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미라가 태산의 앞 나지막히 욕설 섞인 대사를 내뱉는 순간은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하다. 관객은 이제 막 6년 차의 경력을 쌓은 22살 배우의 에너지가 근 30년 간 연기자로 살아 온 명배우의 그것과 동등한 크기로 분출될 수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반항, 애증, 반성, 후회가 모두 스쳐 간 그 어린 눈동자를 선뜻 기억하게 될 터다.

이하 이수경과 나눈 일문일답

-'침묵'은 그간 참여한 영화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었고, 배역의 중요도도 커졌다. 완성본 속 자신의 연기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아직 결과물을 보고 잘 나왔는지 아닌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그저 연기를 하던 그 상황에서 내가 받은 느낌을 말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차이나타운' 때는 내가 자신이 없었다. 이번엔 더 열심히 했고, 연기를 했을 때의 내 감정은 좋았는데 결과물이 어땠는지는 보는 분들이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연기를 보고 판단하는 일은 더 경험이 생긴 뒤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차이나타운'과 '침묵' 속 인물들을 하나의 분류에, 단편 '티치 미'나 '윤리거리규칙' '용순' 속 캐릭터들을 또 하나의 분류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선 기대 이상의 발랄함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서로 다른 부류의 인물들을 어떻게 준비해 연기했나.

"이제까지 한 모든 작품들이 그랬지만, 내 안에 각 인물들의 모습이 한 가지씩은 있었다. 그걸 점점 확장해 나가는 편이다. 고민해서 새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우연히 출연하게 됐다. '차이나타운'의 프로듀서가 출연을 제안했는데, ('차이나타운'에서 인연을 맺은) 엄태구 오빠가 나온다고 해서 출연했다. 너무 좋은 작업이었다."

-'특별시민'부터 '침묵'까지, 상대 배우이자 대선배이기도 한 최민식이 유달리 이수경을 아꼈다고 들었다. 한 소속사에 몸 담고 있는 김혜수나 '침묵'을 함께 한 배우 이하늬, 박신혜 등도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소위 말해 막내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살가움이 없는 편이라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잘 못 한다. 노력도 해 봤지만 억지로 하자니 너무 어색하고, 소심한 편이라 오히려 실수를 하게 되더라. '난 왜 그런 성격이 못 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굉장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유명한 선배들이 날 좋아해주시는 거다.(웃음) 김혜수 선배를 비롯해 최민식, 박신혜, 이하늬 선배가 날 좋아해주시는 것을 보면 '지금의 내 모습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다.

-두 번째 함께 한 최민식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전작에서보다 더 깊은 감정을 나눴어야 했는데.

"'특별시민' 때는 우는 장면이 않았다. 최민식 선배는 나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내가 몇 십년 후배인데다 연기를 잘 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시간을 주셨다. 현장이 급했을텐데도 내가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셨다. 그 때부터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으니 이번엔 마음이 편했다. 다시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이렇게 바로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나에게 '침묵'은 최민식 선배와 함께 해서 가능한 작품이었다. 내가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확실히 열어두신 면이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최민식 선배님을 믿고 했다'는 말이 맞다. 내가 낯을 많이 가리거나 보통의 막내들 같은 모습을 갖고 있지 못해도 선배는 '고쳐야 해'라고 하지 않고 '넌 그런 애야'라고 인정해주셨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현장이었다."

-낯가림이 심해 연기 학원에 다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들었다.

"아빠가 연기를 먼저 시키셨다. 아무 생각이 없던 중학생 때, 연기학원에 가라고 해서 억지로 갔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 앞에서 '안녕하세요, 이수경입니다' 같은 말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대사를 했겠나.(웃음) 한 두 시간 그냥 서 있던 적도 있다. 이런 성격의 나에게 일찍이 직업이 될 만한 것을 찾아주려고, 아빠가 이것 저것을 많이 시키셨다. 악기를 배워보기도 했는데, 하다 보면 점점 어려워져 하기 싫었다.(웃음) 그 와중에 연기를 하게 됐는데 연기 선생님이 '안 한다고 그냥 넘어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무조건 시키는 분이었는데, 한 번 대사를 지르고 나니까 그 때부터 편해지더라.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정말 연기를 해야겠다' 싶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침묵'에서 처음 만난 정지우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전에도 좋은 감독들을 많이 만났지만 정지우 감독님이 지닌 다른 면이 있었다. 나는 연기를 할 때 내가 느낀 분위기, 상황, 추상적인 것들을 끌어와 연기하는 편이었는데 정 감독님은 구체적 상황을 제시해줬다. '(미라가) 여기에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야'라고 문장으로 말해주는 식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게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감독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모티콘처럼 머릿속 전구에 불이 탁 들어오는 느낌이었다.(웃음) 나는 디렉션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편인데, 이번 작업에서는 무슨 뜻인지를 묻지 않아도 되겠더라.

디렉팅을 많이 하기보다 알아서 하게 해 주시는 편이었는데, '수경, 여기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하시곤 했다. 만약 나의 생각이 달랐을 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의견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의미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자신감이라기보다 어물쩡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전에는 실례가 될까봐 아무 말 못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그 때처럼 넘어가고 싶지 않고,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다. '내 생각이 이렇다'고 해서 그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 저를 설득시켜 주세요'에 가깝다. 대사의 속도와 어조까지 모두 준비한대로 연기하는 편이었는데,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을 하면서 촬영 현장의 빠른 속도에 '멘붕'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표민수 감독님이 그 틀을 깰 수 있도록 정말 큰 도움을 주셨고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을 영화 현장에도 많이 적용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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