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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K리그'…롤러코스터 축구 인생 접은 노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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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입문한 아들 보면서 묘한 감정…지도자로 돌아온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나이 먹으니까 눈물만 많아졌어요."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을 스스로 끝낸 노병준(38)의 목소리에는 시원섭섭함이 섞여 묻어 나왔다.

노병준은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해 리그를 치르면서 마음을 먹고 있었고 소속팀 대구FC가 K리그 클래식에 승격하면서 부담을 내려놓았다. 클래식 승격 당시에는 기여하지 못했지만, 맏형으로 선수단에 용기를 불어넣는 등 힘을 주려 애를 썼다.

승격에 성공한 뒤 구단과 상의해 은퇴를 결정했다. 이미 11월께 은퇴가 정해져 있었고 공식적으로 공표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대구는 오는 3월 1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개막전에서 노병준의 은퇴식을 치르며 새 인생을 응원한다는 계획이다.

처가가 있는 전라남도 광양에 머물고 있다는 노병준은 "백수가 됐다. 집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다"며 웃은 뒤 "흘러가는 시간도 아깝고 고민하다가 은퇴를 하기로 했다. 구단에서 은퇴식을 열어준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가벼운 마음이지만 큰아들 수인(11) 군이 축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 서울 잠원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수인 군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적성에 맞는 위치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우승하는 것을 봤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축구를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본인의 의지가 정말 강하더라. 아버지가 경기에 뛰는 것을 봤으니 그렇지 않을까. 말리기도 어렵더라"며 웃었다. 10여 년 후에 K리그에서 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열심히 하고 볼 일이다"며 평가를 유보했다.

일단 당장 계획은 없다.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에 1년 뒤 A급에 도전할 생각이지만 일단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은퇴의 결정적인 이유는 회복력이었다. 지난해 노병준은 각종 부상에 시달렸고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K리그 최선참격인 동갑내기 이동국(전북 현대), 현영민(전남 드래곤즈), 김용대(울산 현대)가 여전히 펄펄 나는 것과 비교하면 스스로 아쉬움이 컸다.

노병준은 "나이 먹고 수술을 하니까 재활 속도도 떨어지고 체력을 올리기도 힘들더라. 이제 내가 은퇴하니 1979년생은 세 명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그래도 그들은 잘 뛰고 있지 않은가"라며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밤송이 머리가 인상적인 노병준은 2002년 전남 드래곤즈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한양대 재학 시절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경험을 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에 프로에서의 노병준에 대한 관심은 컸다. 첫해 5경기 출전에 그쳤던 노병준은 이듬해 39경기에 나서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냈고 K리그에서 중요한 축을 자리 잡았다.

물론 그의 축구 인생이 늘 쉽지는 않았다. 2006년 오스트리아 그라츠AK 이적은 눈물겨운 생활의 시작이었다. 전남과의 이적료 분쟁에 부상까지, 조기 은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돈이 없고 생활고를 걱정할 정도로 무적 신세로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2008년 인생의 팀이나 다름없었던 포항이 손을 내밀었다. 노병준은 충실하게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고 반전에 성공했다. 주전, 조커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월드컵에만 출전 경험이 없을 뿐, 내 축구 인생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운이 없어서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는 노병준은 프로 생활을 하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팀에 대해 "K리그"라는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조건을 만들어준 모든 팀에 감사하고 그 무대가 K리그이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노흥복 씨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다. 노병준은 골을 넣으면 항상 하늘 위로 손을 올려 "아버지!"를 외치며 눈물을 쏟았다. 인생의 멘토인 부친은 신종플루가 한참 유행하던 2009년 위험을 감수하고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을 찾아 포항과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관전했다.

그는 "몸도 좋지 않으신데 도쿄까지 오셨다. 아내가 손발 다 닦아 드리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회상했다. 당시 노병준은 프리킥 골을 넣으며 아버지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노병준은 당분간 자유로운 삶을 즐길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지도자로 돌아온다는 계획이다. 그는 "어느 무대가 됐든지 간에 기회를 준다면 지도자로 다시 시작하겠다. 내 축구철학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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