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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HP시대-상] 더 험난한 싸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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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패커드(HP)가 천신만고 끝에 컴팩 합병을 공식 인정 받았다. 미 델라웨어 법원이 월터 휴렛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지난 3월19일(이하 현지 시각) 주총 투표를 공식 인정한 것. 1일 발표된 주총 투표 최종 집계에서도 3% 정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HP는 오는 7일 합병 법인 출범을 목표로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news24는 ‘통합 HP시대’ 시리즈를 통해 통합HP의 앞날을 3회에 걸쳐 긴급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2001년 늦봄.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은 휴렛패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CEO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엘리슨 회장은 ‘HP가 라이벌인 컴팩과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HP-컴팩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경우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 피오리나는 엘리슨의 충고를 받아들여 마이클 카펠라스 컴팩 회장 겸 CEO와 접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 해 9월초 25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합병이 전격 발표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같은 일화와 함께 엘리슨 회장의 반응도 소개했다. 래리 엘리슨은 양사 합병 발표 직후 “나는 단지 그들에게 서로 만나보라고 권고했을 뿐”이라면서 “데이트를 즐기고 약혼(합병)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날 탓하지 말라”고 말해 HP-컴팩 합병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 지를 분명히 했다.

◆ 다시 한번 뚝심 과시한 피오리나

실리콘밸리 역사상 ‘HP-컴팩 합병’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커플도 없다. 경영진과 창업자 가족 간의 치열한 다툼, 주총 표 대결에다 법정 공방까지. “나올만한 것은 다 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한 때 월스트리트에선 ‘피오리나의 바보 같은 짓(Fiorina’s Folly)이란 표현까지 나돌 정도. 일부 전문가들은 ‘합병이 실패하고, 피오리나는 쫓겨날 것’이란 냉정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피오리나는 이 같은 시련을 딛고 결국 합병을 성사시켜 다시 한번 특유의 뚝심을 과시했다. 그는 특히 합병 반대파의 수장인 월터 휴렛으로부터 ‘합병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항복선언을 이끌어 내 외면상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이제 피오리나는 그 동안 수차에 걸쳐 밝혀 온 대로 ‘5월 7일 합병법인 출범’을 목표로 본격적인 통합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 가시밭길 기다리고 있는 피오리나의 앞날

하지만 피오리나의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법정 공방에 승리하긴 했지만 HP 역시 그 과정에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델라웨어 대학의 기업지배센터 책임자인 찰스 엘손이 지적했듯 ‘희생을 많이 치른 승리’(Pyrrhic victory)였던 것.

이 과정에서 칼리 피오리나 CEO를 비롯한 HP 경영진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1만5천 명에 달하는 감원 태풍을 앞두고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게다가 불확실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HP-컴팩 고객들이 경쟁 업체인 델컴퓨터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델라웨어 법원에서의 법정 공방 기간 중 폭로된 HP 내부 문서에 따르면 HP-컴팩 양사 경영진조차 합병의 재정적 전망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PC 시장이 장기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2, 3위 업체가 몸을 섞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기업 지배 전문 애널리스트인 넬 마이노우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합병 캠페인을 하는 것은 쉽다. 진짜 힘든 승부는 이제부터”라면서 “힘든 합병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신뢰성을 견지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간-비용 손실 최소화도 과제

HP는 심리를 끝내면서 델라웨어 법원 측에 “피오리나 CEO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판결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피오리나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치열한 공방전을 통해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델라웨어법원은 ‘근거 없다’며 기각하긴 했지만, ‘도이치뱅크 위협설’은 피오리나에겐 두고 두고 부담이 될 가능성이 많다.

칼리 피오리나는 통합법인 CEO로 내정돼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차하면 마이클 카펠라스 컴팩 CEO가 승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불확실한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초래한 시간과 비용 손실 역시 극복해야 될 부분. 합병관련 컨설팅 회사인 M&A 파터너스의 짐 제프리스 회장은 “공방전이 장기화되면서 합병의 장점들이 많이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 지붕 두 가족’이 첫해 별도 운영 때에 비해 12% 정도 매출이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약 32억 달러 규모. 당초 5%(25억 달러)를 예상했던 HP 전망치에 비해 훨씬 큰 폭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 땅에 떨어진 직원 사기 진작도 과제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 역시 HP 경영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판 과정을 통해 내부 메모가 폭로되면서 경영진과 합병추진 팀 간의 재정 전망이 다른 것이 드러나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피오리나를 비롯한 경영진이 1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 역시 직원들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끼는 부문이다. ‘1만5천 명에 달하는 대대적 감원’이 예고돼 있는 만큼 동요하는 직원들을 달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특히 지난 달 ‘도이치뱅크를 찬성쪽으로 돌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피오리나의 음성 메일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HP 직원들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HP 경영진 측은 “직원들은 동요 없이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현재 HP 직원들은 의기소침한 상태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슬럼프에 빠진 PC 산업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피오리나에겐 되레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합병 법인의 실적이 나쁠 경우 경기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프리스는 “칼리 피오리나는 (부진한 실적을) 경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것”이라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합병 초기의 시련을 무사히 넘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승부는 이제부터”

‘델라웨어 목장의 결투’를 힘겹게 마무리한 피오리나의 앞에는 지난 6개월 여의 공방보다 더 힘겨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1+1=2’를 만드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 거대 기업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합병 주총 투표’를 승리로 이끄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힘든 과업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피오리나의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유의 뚝심으로 수 많은 난관을 헤쳐 온 칼리 피오리나가 이번 승부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승부여하에 따라 세계 컴퓨팅업계의 지형도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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