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황금빛 기자] 한진그룹의 정기 주주총회가 끝났지만,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는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정관 변경 의안이 모두 부결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발목을 잡은 '3분의 2룰' 정관 변경을 성공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향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열린 한진칼 주총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정관 변경 의안이 모두 부결됐다. 정관 변경을 위해선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모두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해당 의안은 한진그룹 측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 주주연합 측에서 모두 제기했다. 한진그룹 측에서 올린 의안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등의 이사회의 구성과 소집 변경 ▲내부거래위원회를 거버넌스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보상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위원회 변경 등이다.
주주연합 측에서 제시한 의안 또한 비슷하다. ▲이사 선임의 투명성을 위한 개별 투표 ▲이사 자격 기준 강화 ▲이사의 의무 신설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중에 선임해 대표이사와 분리 ▲사외이사 권한을 강화한 거버넌스위원회, 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감사위원회 위원 증원 ▲ESG(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역량 강화를 위한 이사회 외 위원회 신설 ▲이사회 성별 대표성 확보 ▲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 신설 등이다.
양측 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경영 투명성 제고 조치와 이사회 역할 강화 등을 제시했지만 주총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반면 같은 날 열린 대한항공 주총서는 이사 선임 관련 정관 변경 의안이 통과했지만, 이 또한 지배구조 개선 조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사 선임 방식을 기존 특별결의에서 보통결의로 변경해 주총 출석 주주의 3분의 2이상 동의를 과반수 동의로 변경했는데, 내년 3월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연임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해당 정관 때문에 지난해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바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이 과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진정성이 있었는지 관련해 시민단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은 주총 이후 논평을 내고 한진그룹 측을 비판했다.
이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힘쓰겠다고 공언하던 주장이 공염불에 그쳤다"면서 "특히 조원태 회장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 관련 주주연합 측 변경안에 모두 반대표를 던져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시늉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들은 주주연합 측도 비판하면서 "양측이 유사한 안들을 협의해 함께 상정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며 "결국 경영권 싸움에 급급했을 뿐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가 희박했음이 드러났다"는 점도 지적했다.
물론 한진칼은 지난해 11월 회사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주주권익 보호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거버넌스위원회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자발적으로 이사회에서 결의해 설치한 것이다. 즉 이는 이사회 결의로 다시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관 변경을 통해 이를 명시한다면 강제성이 있을 뿐 아니라 주주들의 입장이 더 반영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전문위)가 늦게 꾸려졌다. 상법상 주주제안을 하려면 주총 개최일 6주 전 각 회사에 주주제안을 통보해야 하는데 수탁전문위가 지난 2월 24일에서야 최종 구성됐다.
국민연금은 지난해에는 한진칼 주총 전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로부터 3년간은 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는 이사의 자격 관련 정관 변경 주주제안을 한 바 있다. 물론 당시 해당 주주제안은 부결됐다. 하지만 이후 국민연금은 적극적 주주활동을 진행하지 않았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스튜어십코드 도입 2번 째 해인 올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새로 구성하는데 너무 늦어졌다"면서 "주총을 3월에 하면 주주제안을 1월 정도에는 해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서 올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하나도 하지 못해 기대에 좀 못 미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시주총 때도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정관을 변경할 수 있지만 일정 수 이상 지분을 가진 자가 소집해야 하고, 자기네들 때문에 소집했는데 과연 주총에서 투표해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고민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 회장의 의지에 달려 있어서다.
한편 조 회장은 주총이 끝난 후 "이번 주총은 그 어느 때보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면서 "그 과정은 주주들과 직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계기가 됐고 이를 한진그룹 발전의 또 다른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황금빛 기자 gol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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