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미기자] '롯데 2인자'로 불리던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그의 가족들과 롯데 임직원들의 눈물 속에 영면했다. 향년 69세다.
이 부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롯데그룹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피의자 소환을 앞두고 있던 지난 26일이다. 경찰에서 얘기한 이 부회장의 마지막 행적을 보면 그는 전날 집을 나선 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두 차례나 차를 돌려 서울 방향과 사건 현장을 왔다갔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했고 롯데그룹에 슬픔과 함께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검찰은 현재 롯데그룹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다.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이 부회장은 지난 43년간 신격호 총괄회장을 거쳐 아들인 신동빈 회장까지 신임할 정도로 롯데 계열사의 주요 요직에서 굵직한 현안들을 잘 처리해 왔다. 이로 인해 검찰은 이 부회장이 롯데 오너일가의 비자금 및 탈세 혐의를 입증할 중요한 '키맨'으로 생각하고 이 부회장 소환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하지만 결과는 직접적이든 아니든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작용해 이 부회장의 죽음을 불러왔다.
검찰은 강압과 망신 주기 수사를 한 정황은 없었지만 이 부회장의 죽음으로 여론의 눈치는 상당히 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롯데 수사를 두고 검찰이 전 정권을 손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보니 명확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하지만 롯데 역시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드러난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문제점과 제기된 여러 의혹에서 벗어나려면 떳떳하게 수사를 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죄가 있다면 댓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지난해 '한·일 롯데 원톱'을 외치던 신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원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앞에 짐들만 쌓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 부회장의 죽음으로 그를 따랐던 임직원들의 심리적 공백도 상당해 조직 내부 분위기도 추슬려야겠지만 당장 이 부회장이 맡고 있던 '정책본부장' 자리에 맞는 적임자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신뢰하는 황각규 사장, 소진세 사장, 노병용 사장 등은 사법처리 대상자에 올라 있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신 회장은 지난해 8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새로운 롯데'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호텔롯데 상장 등 다양한 공약도 내걸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이 약속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경영권 분쟁과 검찰의 수사에 번번이 추진하던 일들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이 부회장의 빈소에 처음 방문했던 날 눈물을 터뜨렸다. 롯데를 재계 5위로 키워오는 동안 이 부회장의 역할이 상당했던 만큼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흘린 눈물은 어쩌면 이 많은 과제를 이제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이 부회장에 대한 그리움이 어우러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신 회장은 하루 빨리 슬픔을 털어내고 그룹 정상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롯데 비리를 둘러싼 전 국민의 관심이 큰 만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비리가 입증이 됐다면 합당한 벌도 받아야 한다. 검찰의 비리 수사와 롯데의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상 롯데는 계속 20세기 시스템에 머물러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제 현 상황에 대한 신 회장의 현명한 결단이 하루 속히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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