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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한국의 인터넷 적대국 선정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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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IT 인사이트]

원래 유가는 인·의·예와 같은 덕치주의가 근본이라고 하는데 비해 법가는 엄격한 법치주의가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2400여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상앙(BC 390년~BC 338년)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상앙은 위나라 출신의 진나라의 유학자로서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였다.

상앙은 진나라의 부국강병 등을 외치며 오늘날 국무총리와 같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5개의 가구를 묶어 서로 감시하는 오가작통제를 만들었고 범죄를 고발하지 않거나 범인을 숨겨준 사람 역시 죄인으로 몰아 허리를 베어죽이는 형벌을 내렸다. 이것이 불고지죄의 시초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5개월 후 진나라의 왕인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태자의 측근이 상앙을 ‘반란죄’로 밀고하였고 태자는 곧바로 상앙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상앙이 체포되기 직전 탈출하여 국경에 이르렀으나 자신이 만든 ‘불고지죄’ 때문에 아무도 상앙을 숨겨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상앙의 최후는 수레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죽이는 거열형에 처해졌고 멸족형도 더해져 가족과 친족까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상앙은 자신이 백성들을 감시하고 통제,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에 의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 지도에서 까만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인터넷 적대국(The Enemies of the Internet)’이며 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도가 바닥인 나라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지도에 까만색 국가들의 공통점은 언론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들로서 OECD국가는 단 한곳도 없다.

이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국가는 인터넷 적대국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정부의 통신 감시와 검열이 존재하는 인터넷 감시국(Countries under surveillance)이다. 이 리스트에서 선진국이라고 할만한 나라는 프랑스와 호주, 한국 정도이며 나머지 국가들은 까만색으로 표시된 곳들과 비슷한 국가들이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감시국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지만 NSA를 통해 광범위하게 민간인들을 감시하고 사찰해왔다. 2013년 6월 NSA 계약직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가 테러 용의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외국인의 통신기록까지 무차별적으로 수 백만 건을 수집해 도청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고 이 사실에 대해 세계가 경악했다.

NSA가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감시하고 도청한 근거는 미국의 ‘테러대책법 215조’로서 2011년 911 이후 부시 정부가 급조하여 한달 만에 통과시킨 법률로서 안보라는 명분으로 일반 시민들에 대해 ‘합법적 도,감청’을 일삼았다.

결국 이 폭로로 항의 여론이 빗발쳤고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직속의 특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NSA 활동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지시했다. 의회 역시 2013년 10월 NSA의 ‘무차별 집단 통신기록 수집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USA Freedom Act)’을 발의한다. 여러 반대와 우여곡절 끝에 이 법안이 지난 6월 2일부터 발효됐다. 이 법안은 완벽하게 NSA의 도,감청을 막지는 못하지만 이전과 같이 무분별한 민간인 사찰을 제지하는 장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래 RSF의 인터넷 감시국 보고서는 2010년, 2012년 등 해를 건너 짝수 해에 발표했으나 아마도 2013년 NSA사건의 영향으로 2014년에는 발간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작년에 나오지 않았던 보고서는 아마도 올해 나올 것으로 예측되며 미국의 경우 USA Freedom Act의 발효로 인터넷 감시국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이 USA Freedom Act으로 정부기관의 무분별한 감시와 도,감청 등을 제재하기 시작한 6월 2일의 하루 전인 6월 1일,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감청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이한성 김태환 김성찬 황진하 김광림 홍일표 권성동 안효대 여상규 경대수 이채익 의원이 동참한 이 통비법 개정안은 2005년 8월 국가정보원의 휴대폰 불법감청 사과 이후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는’ 중단한 감청을 합법화하는게 핵심이다. 제 15조 2항에는 ‘협조의무 사업자’를 현행 전기통신사업자에서 ‘전화, 인터넷, SNS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통신 서비스 역무를 담당하는 전기통신사업자’로 바꾸고, 사업자들에게 감청설비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 법안과 유사한 법안이 중국에서 실행되자 감청을 거부한 한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의 모든 사업을 철수했다. 바로 구글이다. 중국에서는 구글 검색을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마켓도 이용할 수 없다. 물론 구글의 철수로 중국 토종 검색엔진인 바이두가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개 사기업을 키우는 대가로 중국은 인권후진국에 인터넷 적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2008년 이래로 7년간 인터넷 감시국으로 분류되어왔다. 사실 이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것만으로도 매우 창피한 일이며 특히 IT 강국이라는 기치에 더욱 어울리지 않는 현실이다. (RSF의 인터넷 감시국 분류 보고서는 2012년 마지막으로 나왔지만 홈페이지(http://rsf.org/)에 가면 아직도 발표된 분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올해 보고서가 발표되면 세계최초의 ‘소셜네트워크 합법 감청 법안’으로 인해 7년간 인터넷 감시국(Countries under surveillance)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적대국(The Enemies of the Internet)’ 리스트의 새로운 국가로 등록되는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 중국, 시리아, 이란, 쿠바 같은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완전한 국제적 망신이며, 국가 신임도나 국격 같은 것을 따질 수도 없게 된다. 인터넷 적대국에서 만든 인터넷 서비스나 소프트웨어를 어느 누가 쓰고 싶을 것인가?

2010년 한국이 인터넷 감시국에 발표되었을 때 많은 언론들이 이에 대해 기사를 통해 정부에 책임을 묻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2012년 역시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방통위, 문광부 및 인터넷 관련 산하 단체들 모두 ‘우리 소관이 아니다’로 일관했고 이번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여기에 추가될지도 모른다.

진나라 상앙뿐 아니라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도나 법률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비참한 말로를 걸었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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