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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핀테크는 금융의 혁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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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IT인사이트]

하바드 대학교 크리스텐슨(Christensen)교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의 대가이다. 파괴적 혁신이론에서 혁신은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바로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존속적 혁신은 과거보다 더 나은 성능의 고급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목표로 기존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보다 높은 가격에 제공하는 전략을 말한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현재 시장의 대표적인 제품과 다른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도입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혁신은 '존속적 혁신'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이며 존속적 혁신이란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선'이라는 단어와 다르지 않다.

◆왜 '파괴적' 혁신인가?

'파괴적'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혁신을 설명할 때 꼭 필요한 단어인 이유는 파괴적이라는 단어가 혁신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필름을 사용하던 사진기를 디지털로 바꾼 디카의 탄생은 혁신이다. 디카의 혁신에 의해 필름시장이 파괴되었으며 필름시장을 주도하던 사업자인 코닥, 후지, 아그파 등이 몰락했다. 이들 역시 디지털 카메라에 의해 파괴당한 것이다. 스마트폰 역시 파괴적 혁신인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기존의 피처폰 시장이 파괴되어 스마트폰 시장으로 재편성되었으며 피처폰 시장을 주도하던 사업자였던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등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파괴적 혁신은 혁신 기술에 의해 기존 시장 및 기존 사업자의 파괴를 수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변화는 개선이지 혁신이 아니다.

영화산업에서 3D, 4D 기술이 작용된 영화들이 등장했다. 이 기술은 혁신인가 아닌가? 기존 영화제작 시스템에서 3D와 4D 제작기술을 적용하고 기존 영화관을 개,보수하여 상영함으로서 오히려 기존 영화 사업자들의 수익은 더욱 늘어났다. 3D, 4D 기술에 의해 기존 영화 제작업계나 배급회사, 영화관이 망하고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기에 이 기술들은 혁신이 아니라 개선이다. 만약 오큘러스에 의해 새로운 VR 영화라는 개념이 만들어져 사람들이 기존의 영화를 보지 않고, 집에서 VR 영화를 본다면 기존의 영화 제작시스템이나 배급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VR이 더욱 발전하여 VR고글을 쓰지 않아도 실사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 퀄리티의 홀로그램이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을 수도 있으며, 현재와 같은 형식의 게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신은 개선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이다.

◆핀테크는 개선인가 혁신인가

현재 핀테크에서 이야기하는 기술들은 크게 결제 부분에서의 편리함, 간편함 등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애플페이처럼 지문인식을 통해서 쉽게 결제한다던가 알리페이나 페이팔처럼 결제나 송금에서 불편했던 UX(카드정보 입력, 보안정보입력 등)을 간소화하여 빠르고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핀테크가 UX의 간소화를 통해 파괴하고 대체하는 것은 기존의 액티브 X기반의 보안업체들인데, 이는 결제 솔루션에 대한 지엽적인 변화일 뿐 금융의 혁신이라 부를 만큼의 변화가 아니다. 핀테크가 금융의 혁신이라고 불려지기 위해서는 금융의 판을 뒤바꾸어야 하며, 이는 핀테크가 현재 금융업을 독점하고 있는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의 시스템과 사업구조를 파괴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사업자와 룰을 만들어내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 핀테크에서 이야기하는 기술들은 기존 플레이어들의 기능을 강화하고 개선하는 일이지 이들을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금융의 혁신인가

음반업계에서 LP를 CD로 바꾸어 유통하던 것은 기존의 사업자와 시스템에서 CD라는 음질이 더 좋은 솔루션으로 개선한 것이지만 냅스터에 의해 음반대신 음악파일 자체가 유통이 된 것은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존 음반시장이 음악파일 또는 스트리밍 시장으로 대체되었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전자화폐들은 혁신의 속성을 핀테크보다 더 많이 갖추고 있다. 비트코인은 아직 초창기라 보급률이나 인식이 낮아 금융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다. 또한 전세계 정부 당국과 금융업계의 견제가 심해서 ‘비트코인’ 자체가 성공할 지의 여부 역시 미지수이다. 비트코인은 망해서 없어질 수 있지만 비트코인이 가진 의미는 비트코인 자체의 성공여부가 아니다.

마치 이전에 냅스터가 음반을 대체하는 음악파일을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하여 메이저 음반사들의 공격으로 문을 닫았지만, 냅스터의 영향으로 이후 음악파일이 음악 유통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비트코인 자체는 망할 수 있어도 비트코인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금융개념과 거래방식은 후에 비트코인을 더 발전시킨 유사한 다른 서비스에 의해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하루 아침에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대체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던 시기에 같은 길에서 마차와 자동차가 같이 달리던 것처럼 일반 금융과 비트코인이 트랜지션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며, 비트코인이 자리를 잡는다면 기존의 금융업 중 상당수가 파괴된다. 이점이 비트코인과 핀테크가 다른 점이다. 비트코인은 편리함, 간편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수수료 등을 없앰으로서 기존 금융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이들을 대체한다.

비트코인의 최대 장점으로 알려진 사실은 환전수수료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 여행을 많이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어떤 나라는 한국의 은행에서 환전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있다. 당연히 그 나라에 가서도 한국 돈을 환전하지 못한다. 결국 한국에서 달러나 유로로 환전하여 들고가서 그 나라 화폐로 다시 환전해야 한다. 보통 환전할 때 수수료율은 국가나 은행에 따라 다 다르고 과거에 비해서 많이 내려갔지만 일반적으로 3~5% 정도이다. 한국 돈을 달러로 환전하고 다시 그 나라의 화폐로 환전하면 벌써 6%~10% 정도를 수수료로 날리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일반화되어 사용된다면 우선 이러한 환전시장이 사라진다. 기러기 아빠들이나 애들이 외국에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이 느끼는 부분인데, 외국으로의 송금시장 역시 비트코인으로 대체된다. 나중에는 전자상거래에서의 결제시장 역시 수수료를 없앤 비트코인으로 대체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비트코인 기능은 아직 불편하고 미비해서 이러한 분야까지 당장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후일에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금융의 혁신의 가능할까

앞서 이야기한대로 핀테크는 금융을 혁신시키는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금융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기술이다. 핀테크처럼 현재의 금융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통해 금융업을 혁신하기는 불가능하다.

금융업의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금융업은 일반 산업들과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한 금융업의 혁신은 비트코인처럼 제도권 밖에서 생겨나 기존 금융을 대체할 수 있어야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파괴하지 않는 혁신은 개선이지 혁신이 아니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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