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지 하루만에 '불찰'이라며 사과해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김 대표는 중국 방문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고,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밝혀, 당장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선을 그어 온 박근혜 대통령에 대립각을 세우는 '항명성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하루 뒤인 17일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참석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어야 되는데 제 불찰"이라며 "대통령께서 아세안 외교를 하고 계시는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발언 배경에 대해서도 "중국 방문 활동을 총결산하는 의례적인 기자 간담회가 있었고, 정식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기자가 개헌에 관해 질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대표는 회의 직후 별도의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대통령께 미안하다. (언론에서) 대통령과 정면 충돌이라고 하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듭 밝히며 진화에 주력했다.
◆청와대 압력? 친박계 반발 의식?
당장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을 두고 '청와대 압력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은 확대간부회의에서 "김 대표가 개헌 발언을 하자 청와대에서 발끈한 것 같다"며 "집권 여당 대표가 청와대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정치도, 집권여당도 불행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가 국정감사 대책회의 참석에 앞서 이완구 원내대표와 단독 면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가 이 원내대표를 통해 김 대표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활성화에 전념해야 할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개헌 블랙홀'을 언급한 김 대표가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당내 친박계의 반발을 의식, 스스로 발언을 '철회'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미 친박계는 김 대표가 방중 직전 출범시킨 조직강화특위 활동을 둘러싸고 친박계 당협위원장 물갈이설이 나돌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터다.
여기에 개헌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친박계가 결집, '반(反) 김무성 전선'이 형성될 경우 자신의 당내 입지가 위축되고 향후 추진될 당 혁신 행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연말 개헌정국 노린 전략적 계산?
일각에서는 사태의 이면에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5선 중진으로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요직을 거쳐 집권 여당 대표를 맡은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 단순 '실수'로 이 같은 '해프닝'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 사과하면서도 자신이 언급한 개헌 불가피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 대표는 "연말까지 개헌 논의가 없어야 되는데 이렇게 크게 보도된 것에 대해 죄송하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우리 당에서는 개헌 논의가 일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뒤집어 보면 결국 연말 개헌 정국이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당장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론자들은 "집권 여당 대표가 개헌 이야기를 했다가 청와대 눈치를 보는 사태야 말로 대한민국이 제왕의 대통령을 갖고 있다고, 이를 바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는 연말 또는 연초 개헌 정국이 점화되면 자신의 소신을 앞세워 정국 주도권을 잡을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여기에는 현 정권 집권 3년차인 올 연말을 개헌의 적기로 보는 당 안팎 개헌론자들의 힘이 보태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김 대표로서는 '미래 권력'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자신의 대권가도를 본격화할 계기가 마련되고, 자연스레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그런 일을 하는데 왜 타임 스케쥴을 안 따지겠느냐", "대통령 선거가 3년 반이나 남았는데 다시 대선 정국으로 몰고 가서 무슨 도움이 될지 걱정이다"라고 김 대표를 비판한 배경에도 이 같은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윤미숙기자 come2m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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