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급행회선(fast lane)’ 허용을 골자로 하는 망중립성 초안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FCC가 이번 망중립성 안을 확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어 최종안이 어떻게 확정될 지는 미지수다.
FCC는 15일(현지 시간) 전체 회의를 열고 톰 휠러 위원장이 제안한 망중립성 원칙 초안을 3대 2로 통과시켰다고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공화당 출신 위원 두 명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출신 위원 두 명이 찬성하면서 FCC의 기본 안으로 확정됐다.
톰 휠러 위원장이 망중립성 원칙을 새롭게 마련한 것은 지난 1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FCC가 2010년 발표한 ‘오픈인터넷규칙’을 사실상 사문화한 때문이다. 당시 항소법원은 FCC가 정보서비스로 분류돼 있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판결했다.
항소법원 판결 직후 FCC는 대법원에 상고하는 대신 새로운 망중립성 규칙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준비 작업 끝에 ‘급행 회선’ 허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마련한 뒤 전체 회의 표결을 하게 됐다.
FCC는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 크게 ▲질의공고(NOI) ▲규칙제정공고(NPRM) ▲보고서 및 명령(R&O) 등 세 가지 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NOI는 새로운 규칙 제정을 앞두고 이슈를 제기하고 의견을 구하는 단계다. 이 단계가 끝나게 되면 새롭게 제정될 규칙을 고지하는 NPRM을 하게 된다. 이번에 FCC 전체 회의에서 결의한 것은 바로 NPRM이다.
FCC가 “이러이러한 망중립성 규칙을 제정하려고 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안하는 형식이다.
NPRM을 제안한 뒤에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이렇게 수집된 의견과 자료를 최종적으로 정리한 뒤 최종 규제 방안을 확정한 것이 R&O다.
아스테크니카를 비롯한 외신들에 따르면 FCC는 오는 7월 15일까지 2개월 동안 NPRM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다. 이렇게 접수된 각종 의견에 대해서는 오는 9월10일까지 FCC 공식 사이트를 통해 답변할 예정이다.
톰 휠러 위원장은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연내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FCC에선 표결을 앞두고 ‘급행회선 허용’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특히 톰 휠러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망중립성 초안이 급행회선을 무차별 허용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휠러 위원장은 “이번 제안 그 어디에도 추가 요금 지불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것을 합리화하는 부분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는 원칙적으로 인터넷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차별하는 데 반대한다”면서 “인터넷에는 급행 회선도, 느린 회선도 없다. 인터넷은 하나다”는 입장을 밝혔다.
FCC 역시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급행료를 지불한 업체에게 특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방안이 가능할 경우에도 급행회선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하지만 톰 휠러 위원장은 일종의 상호접속 계약인 ‘피어링 계약’은 망중립성과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 제안한 망중립성 초안은 망사업자의 네트크 안에서 이뤄지는 문제만 다룬다는 것이다.
이날 FCC 전체회의 표결에선 민주당 위원들의 찬성 여부가 관건이었다. 한 때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전체회의 표결을 연기해야 한다면서 톰 휠러 위원장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 위원들이 휠러 위원장 편에 섬에 따라 망중립성 NPRM이 전체 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민주당 위원들이 톰 휠러 위원장이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을 1996년 통신법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FCC 전체 회의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여전히 톰 휠러 위원장 앞엔 만만찮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콘텐츠 업계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 간의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 페이스북 등은 FCC의 새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콘텐츠 사업자인 넷플릭스 역시 ‘강한 망중립성 원칙’을 요구하면서 FCC를 압박하고 있다.
시민단체나 인터넷 이용자들의 집단 행동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등이 회원사로 있는 인터넷연합은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새 망중립성 반대 운동을 일으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터넷연합의 마이클 베커만 회장은 FCC 전체회의 표결 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로비스트는 없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한 목소리를 낼 경우 망사업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담은 FCC의 새 망중립성 원칙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망사업자들의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컴캐스트 등은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타이틀2로 분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는 톰 휠러 위원장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FCC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해 FCC 수장으로 새롭게 임명된 톰 휠러로선 최대 이슈를 떠안게 된 셈이다. 올 연말까지 지리하게 계속될 공방에서 톰 휠러가 어떤 역량을 보여줄 지, 또 FCC가 인터넷 이용자와 망사업자 사이에서 어떤 운영의 묘를 보여줄 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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