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현기자] "화학재료는 빵처럼 규격품이 아니라서 조금만 입맛이 달라도 제품이 달라집니다. 기계에 맞게, 환경에 맞게 계속 맞춰나가야 하죠. '맞춤복'과도 비슷합니다."
조근호 이그잭스 회장은 최근 경북 구미 공단동에 있는 이그잭스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국내에서 처음으로 광학용 투명 접착액(OCR)을 개발하기까지의 과정을 옷 만들기에 비유했다.
조 회장은 "이그잭스가 좋은 원단을 만들고 LG디스플레이가 마지막 가봉을 해서 라인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 냈다"며 "두 회사가 머리를 맞대고 작년 6월부터 수많은 테스트를 거친 결과 일본 경쟁사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일본 업체가 전량 공급하는 OCR은 현재 거의 양산 채택 단계에 와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상생협력 프로그램인 성과공유제의 수확물이자 첫 국산화라 의미가 깊다.
OCR은 스마트기기 시대에 터치 기능이 필수 기능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화학재료이다. LCD와 커버글라스 사이를 접착하는 역할 뿐 아니라 두 층 사이의 공기층을 채워 빛을 굴절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실외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도 선명하게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투명 레진을 채워넣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전력효율을 높여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고 외부 충격을 방지하는 역할까지 해 하이엔드급 스마트폰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품이다.
조근호 회장은 "현재는 스마트폰에만 적용되지만 터치 기능이 노트북·TV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보니 OCR 시장 또한 향후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터치스크린패널과 OCR 시장은 동반해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12년 매출 555억원, 영업이익 23억원을 냈던 이그잭스는 OCR을 통해 약 15~20%의 매출 신장을 기대하고 있다. 성과공유제를 통해 이그잭스와 손발을 맞춘 LG디스플레이에도 최소 20% 이상의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OCR 제품의 원천기술은 이그잭스가 가지고 있었지만 LG디스플레이의 공정 기술이나 제품 기술이 제품 개발에 더해져 양산화까지 이를 수 있었다.
LG디스플레이 상생기술팀 조승열 과장은 "OCR 제품의 몸은 이그잭스가 만들었지만 LG디스플레이는 팔·다리 모양을 제대로 만들고 보기 좋게 꾸미는 역할을 했다"며 "예를 들어 LG디스플레이가 이그잭스 제품의 접착력이 실제 라인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평가를 해서 데이터를 내면 이그잭스는 다시 그 데이터를 기준으로 해서 접착력을 향상시키고 계속 데이터를 만들어 나간다. 결국 실제 라인에서 접착력이 어느 정도인 제품으로 나오는지 개발방향을 잡아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과정을 설명했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사간 상생활동을 통해 성과가 나면, 이를 사전에 합의한 방법으로 상호 분배하는 제도다. 때문에 LG디스플레이는 이그잭스의 OCR 제품에 일정기간 수입제품과 같은 가격을 지불할 예정이다.
조근호 회장은 "국산화를 통해 단가가 인화되는 효과가 발생하지만 중소기업과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대기업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간 수입 제품과 비슷한 가격을 보전하는 인센티브제도가 있다"며 "LG디스플레이의 원가 절감 효과는 6개월에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가격 협상을 거친 뒤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16년 협력관계…상장 후 신용등급 하락에도 믿어줘"
이그잭스와 LG디스플레이는 16년 동안 계속 디스플레이 공정용 전자재료 등을 공급하고 공급받는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지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11월 이그잭스가 우회상장을 거치며 상장비용 등으로 자금 조달에 위기가 온 것. 때문에 이그잭스는 2011년에는 59억원, 2012년에는 6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조 회장은 "상장 데미지로 인해 부채비율이 올라갔고 신용도도 나빠졌다. LG 입장에선 조달·생산에 차질이 있으니까 거래를 끊을 수도 있었는데 '당신을 믿는다. 꾸준히 납품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덕을 많이 봤다. 한번도 실수없이 납품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신뢰가 또 쌓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동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차입경영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상장을 시도했습니다. 기업을 키우려면 상장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고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조근호 회장은 "LG디스플레이에서 20억원을 지원받아서 갚은 적도 있고 필요하면 또 빌릴 생각이다. 시중보다 더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상생기술팀 조승열 과장도 "기업은행과 공동으로 '상생펀드' 등 금융지원상품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아이템에 따라, 업종에 따라 금액은 다 다르지만 필요한도 내에 지원을 해주니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LG디스플레이도 협력회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매출액 7% 연구개발비로 써…'나누니까 커지더라'"
이그잭스는 1976년 3월에 대구시에서 일동화학이라는 회사로 설립됐다. 출발부터 과제는 일본·독일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화학재료·약품 시장에서 제품을 국산화시키는 것이었다.
"'조 사장, 도매업은 오래 못 간다. 제조업을 해봐라.' 그래서 뛰어든 게 시작이었죠. 당시에 구매 담당자가 수입하는 약품들을 국산화 해 보라고 아이템을 몇 가지 줬습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전부 일본에서 가져오던 제품들이었어요. 그 땐 저도 젊었고 '이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도전의식이 있었죠. 어떤 물건들이 들어오는지 몰라서 쓰고 나오는 약통을 유심히 보다보니 쓰레기 버리는 창고에 자주 가는 사람으로 기억이 되더군요."
이그잭스는 창업 이래 줄곧 LG와 삼성에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에서 사용되는 공정용 화학약품 및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평균이 7.5%에 달하고 총 임직원 116명중 25%가 연구개발부서일 정도로 연구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조 회장은 "이제는 선투자를 해서 초기 시장에 들어가야 기업에도 이익이 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선행투자를 하다보면 모험심을 가지고 도전을 해야하는 것들이 많다"며 "외국 기술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에서 '해봐, 써줄게'하는 격려만 있어도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산업이 크려면 상생활동은 필수적입니다. 저도 초기에는 기술들을 '나만 알아야지', '나 혼자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비밀리에 해나갔지만 뒤를 돌아보니 '나누니까 커지더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융합 시대인만큼 이제는 그런 것들을 서로 나눠 상대방과 내 장점을 활용하고 호흡을 맞춰서 판을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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