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올해 초 앤드루 설리반이란 '1인 미디어' 운영자가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 연간 20달러씩 내는 후원자 모집에 착수한 지 불과 20여 일만에 약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를 모금한 때문이다.
앤드류 설리반은 뉴리퍼블릭과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 몸 담은 경력이 있는 언론인 출신. 디시(Dish)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그는 타임, 애틀랜틱에 이어 지난 2011년부터 데일리 비스트의 지원을 받으면서 글을 써 왔다. 데일리 비스트는 뉴스위크 모회사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설리반은 올 들어 홀로 서기를 선언했다. 맘껏 글을 쓰면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설리반의 독립 선언은 최근의 미디어 지형도가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 한 눈에 보여준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되면서 저널리즘의 중식축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IT 저널리즘 영역은 작지만 강한 언론사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모바일--SNS, 뉴스 구독행태 완전히 바꿔
대형 언론사가 여론을 주도하던 저널리즘 지형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1인 미디어 뿐 아니라 작지만 강한 언론사들이 속속 등장한 때문이다. IT의 본거지로 통하는 미국에선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하다.
이런 변화를 몰고 온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다. 이들 때문에 뉴스를 보는 행태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1, 2년 사이에 SNS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7%, 9%였던 SNS와 모바일 뉴스 습득 비율은 2012년엔 20%와 15%로 증가했다. 패러다임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상황을 살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재단이 지난 해 '최근 1주일 동안 신문기사 이용 경로'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습득한 비율이 47%에 달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습득한 비율은 2011년엔 19%에 불과했다. 1년 사이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종이신문 이용 비율은 40.9%로 모바일 기기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은 곧바로 '브랜드 실종' 현상으로 이어졌다. 퓨리서치센터가 2011년 미국 25대 사이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브랜드 실종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조사 결과 특정 사이트를 한 달에 10번 이상 방문한다고 응답한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범위를 2회 이상으로 대폭 늘려도 35%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면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65% 수준에 이르렀다. 이 정도 결과면 아예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SNS나 구글 검색 등을 통해 관심 있는 뉴스에 접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역시 언론재단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뉴스 독자들 중 54%는 어떤 언론사 기사인지도 모르고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사를 알고 기사를 읽는다는 답변은 6%에 불과했다.
정보 홍수 속에 노출돼 있는 독자들은 더 이상 '매체 브랜도'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독자들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 더 이상 매체 브랜드가 독자들을 유인하는 매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뉴스 시장에선 평평한 플랫폼이 형성돼 있다고 봐도 크게 그르진 않다. 적어도 이론상으론 그렇다.
작지만 강한 언론사들이 만만찮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이런 시대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물론 작다고 해서 다 경쟁력을 갖는 건 아니다. 변화된 취재 환경과 독자 취향을 잘 이용해야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작지만 강한 IT 언론사들은 저만의 뚜렷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분식점 식으로 이것 저것 다해서는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버지, 뛰어난 인력+ 탁월한 SW 결합이 경쟁 포인트
2011년 4월3일.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IT 전문 매체 엔가젯의 저널리스트 8명이 무더기로 회사를 떠났다고 보도한 것. 이들은 엔가젯이 AOL에 인수된 뒤 편집권 문제를 놓고 회사 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터였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1년 11월 '더버지(The Verge)'란 사이트가 새롭게 출범했다. 더버지는 출범한 지 3개월 여 만에 월간 순방문자 수 650만 명을 돌파하면서 IT 저널리즘 현장의 '떠오르는 샛별'로 부상했다. 더버지는 이후 아이폰5나 갤럭시S4 같은 주요 제품 발표 때마다 한 발 빠른 기사를 순식간에 쏟아내면서 IT 시장의 여론을 주도했다.
후발 주자인 더버지가 단기간에 유력 IT매체로 떠오른 비결은 뭘까? 물론 뛰어난 콘텐츠 품질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더버지가 쏟아내는 기사들은 속도와 깊이를 함께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시로 선보이는 동영상 리뷰 역시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이런 콘텐츠 경쟁력은 당연히 뛰어난 맨파워에서 나온다. 실제로 더버지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의 맨파워는 만만치 않다. 편집장 역할을 맡고 있는 조수아 토폴스키는 엔가젯 시절부터 IT 시장에 대한 이해와 미디어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함께 합류한 인력들 역시 실력 있는 IT 저널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더버지가 단기간에 유력 언론으로 떠오른 비결을 다 설명해주지 못한다. 올싱스디지털을 비롯한 경쟁매체들의 맨파워도 결코 더버지 못지 않기 때문이다.
더버지의 또 다른 경쟁력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슈가 될만한 것들은 철저히 파헤치는 반면, 일상적인 이슈들은 과감하게 무시한다. 연초 CES땐 아예 트럭 한 대를 빌려 편집국 전체가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다. 아예 그 곳에 편집국을 차려 CES 이슈만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대신 남들이 다 쓰는 기사는 과감하게 무시해버린다.
더버지는 삼성-애플간 특허소송 최종 판결이나 아이폰5, 갤럭시S4 같은 주요 제품 발표 현장에선 실시간으로 맛갈스런 현장 중계 기사를 쏟아냈다. 속보를 쏟아내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게 더버지의 진짜 경쟁력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선 '세이(Say)'란 잡지가 지난 해 게재한 'Rise of Tech Bandits'란 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세이는 그 기사를 통해 신생 매체 더버지의 경쟁력은 '뛰어난 인력과 소프트웨어의 유기적인 결합'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여기서 소프트웨어는 기사 송고 시스템을 의미한다. 더버지 모회사인 SB네이션의 코러스(Chorus)란 기사 송고 시스템은 ▲이슈 특집 페이지 ▲그래픽 제작 ▲관련 DB 활용 등을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각종 제품의 가격, 성능 등을 곧바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코러스 시스템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요즘처럼 수시로 신제품이 쏟아지는 IT 저널리즘 현장을 발빠르게 취재할 때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버지가 아이폰 같은 제품 출시 때 다양한 비교 기사를 발빠르게 쏟아내는 건 선진화된 기사 송고 시스템도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가젯을 사직한 토폴스키 등이 더버지를 만들면서 SB네이션 우산 속으로 들어간 것 역시 뛰어난 기사 송고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뛰어난 취재력을 가진 인력들이 탁월한 콘텐츠 관리 플랫폼이란 신무기까지 손에 쥐면서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창 한 자루로 조조 군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조자룡 같은 장수가 자동연발소총으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한 뒤 전투에 나선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매셔블, 소셜 미디어 강점 내세워 여론 주도
미국 IT 저널리즘 현장에서 '강소 미디어'로 꼽히는 것은 더버지 뿐만이 아니다. 2005년 출범한 매셔블 역시 대표적인 강소 IT 매체다. 매셔블은 스코틀랜드 에버딘 출신인 피터 캐시모어가 만든 매체. '블로고스피어의 브래드 피트'로 통하던 캐시모어가 매셔블을 만들 당시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매셔블'이란 블로그 명칭엔 '웹 2.0 정신'에 대한 캐시모어의 깊은 신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시작한 매셔블은 곧 한 달 광고 매출이 3천달러에 이르게 됐다. 그러자 캐시모어는 블로거 한 명을 더 고용했다. 그 무렵 마이스페이스를 비롯해 페이스북, 유튜브, 텀블러 등 유명 SNS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매셔블의 인기도 무섭게 치솟기 시작했다.
매셔블은 대표적인 IT 매체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상근 직원은 50명 남짓한 수준이다. 디스플레이 광고를 비롯해 스폰서 광고, 컨퍼런스 등을 통해 짭짤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월간 페이지 뷰 역시 5천만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지만 강한' 미디어의 전형으로 꼽힌다.
매셔블 역시 더버지와 마찬가지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강한 매체로 부상했다. 스마트폰 같은 이슈에 집중하는 더버지와 달리 매셔블은 소셜 미디어 쪽에 강점을 갖고 있다. 각종 소셜 미디어 활용법을 비롯한 분석 기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경쟁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매셔블의 기자들은 대부분 소셜 미디어 마니아들이다. 남들은 채 개념도 알지 못하는 각종 소셜 미디어들을 한 발 먼저 사용해보고, 경쟁 포인트와 활용 노하우를 소개해주면서 여론을 주도해 나갔다. 매셔블이 수시로 선보이는 인포그래픽 역시 명품 기사로 손끕힌다.
소셜 미디어 전문가답게 매셔블은 '검색 엔진 최적화'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매체로 유명하다. 검색엔진 최적화란 구글을 비롯한 각종 검색엔진에 잘 노출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지난 해 CNN이 매셔블 인수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 역시 소셜 미디어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셔블은 CNN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소셜 미디어 분야를 중심으로 IT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뉴스, 이젠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
더버지나 매셔블 같은 작은 매체들의 성공 비결은 ▲IT 흐름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취재력 ▲뛰어난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 ▲선택과 집중 전략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다 뉴스에 대한 전통적인 상식을 깬 점도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서 잠시 언론학 교과서를 한번 펼쳐 보자.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역피라미드형 기사'에 익숙했다. 중요한 내용이 앞 부분에 나오는 것이 역피라미드형의 골자. 당연하지만 이런 기사 유형은 전신 시대의 산물이다. 전신으로 기사를 전송하던 시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중요한 내용을 앞으로 빼야 했다. 종이신문 시대에도 지면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역피라미드 기사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다.
전통 저널리즘, 특히 신문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바로 '완성품' 개념이다. 판갈이를 하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뉴스가 도달할 때는 완성품 형태로 전달된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완성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빌딩, 동아일보 빌딩, 한겨레신문 빌딩.
그런데 인터넷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이런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전된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보도 형태가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 때 제기되는 개념이 바로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journalism as a process)'이다.
더버지, 매셔블을 비롯한 강소 IT 매체들은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이란 새로운 시대 조류를 잘 파악하고 적극 대처했다.
'과정으로서의 저널리즘'은 미국의 저명한 미디어 전문가인 제프 자비스가 2009년 '상품 vs 과정 저널리즘'이란 글을 통해 제기한 개념이다.
제프 자비스가 그린 'The new news process'란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가 기사로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출판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 뒤에도 독자들의 반응이나 지적 등을 반영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좀 더 선진적인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독자들과 적극 소통한다. 일종의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다양한 뉴스 원을 수집한 뒤 기사를 쓴다. 하지만 딱 그 지점까지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기사 생산 과정은 이 단계에서 끝이 난다. 독자들을 참여시킨다고 해 봐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뉴스란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며,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할 경우 그것도 바로 반영한다.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나간다는 개념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트위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여기서 일종의 '통신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1년 아랍 혁명 과정에서 트위터가 한 역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앤디 카빈(Andy Carvin)이란 NPR 편집자는 트위터를 잘 활용해 혁명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작지만 강한 미국 IT 언론사들의 기사를 살펴보면 이런 시대 변화가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혁신 정신으로 뭉친 작은 조직이 덩치 큰 언론사와의 이슈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셈이다.
◆창간 13돌, 아이뉴스24의 혁신 유전자는?
멀리 돌아왔다. 이제 우리 얘기를 한번 해보자. 어느 새 창간 13주년을 맞이하게 된 아이뉴스24 얘기. 얘기를 풀어가기 전에 먼저 기사 한 편을 감상해보자. 13년 전인 2000년 3월 20일. 아이뉴스24 메인 화면을 장식했던 기사다.
|
아이뉴스24가 공식 출범했던 그날은 마침 골드뱅크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었다. "광고를 누르면 돈을 준다"는 콘셉트로 인기를 모았던 골드뱅크는 당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그만큼 뉴스 가치가 큰 사안이었다.
당시 아이뉴스24는 그 사안을 좀 특별하게 처리했다. 기자 두 명을 급파해 '현장중계' 형식으로 기사를 쏟아낸 것이다. 기사 역시 문어체와 구어체를 적당히 섞어 쓰면서 기존 문법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덕분에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아이뉴스24란 브랜드를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었다.
일반 독자들 사이에선 오마이뉴스가 현장중계형 기사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2000년 10월 선보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정문 앞 농성사건 당시 18시간 동안 오마이뉴스가 쏟아낸 현장중계 기사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뉴스24는 출범 첫 날부터 기존 매체의 틀을 깨는 과감한 실험을 선보였다.
이후 아이뉴스24 초기 성장을 이끈 것은 뛰어난 인력과 과감한 실험 정신이었다. 그 덕에 2000년대 초 무렵만 해도 개념조차 생소했던 인터넷 언론을 이 땅에 정착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적잖은 특종과 차별화된 기사로 '한국형 강소 IT 매체'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리고 맞이한 창간 13주년.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출범 초기 우리를 옥죈 것은 '전통 언론 중심 패러다임'이었다. 기존 패러다임이 앞서 달리려는 우리 발목을 자꾸만 잡았다. 행사 끝나자 마자 기사를 쏟아내던 우리들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3년.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 때와는 정반대다. 숨가쁘게 변화 발전하는 주변 환경이 제 자리 잡고 안주하려는 우리들을 자꾸만 잡아챈다.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끝없이 재촉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포털과 블로그를 거쳐 SNS가 저널리즘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시대다. 기자와 독자 간의 양방향 소통이 상식으로 통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남들의 혁신 부족에 대해선 가차 없이 비판했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뼈를 깎는 혁신의 고통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작지만 강한 IT 언론'을 지향했던 초기의 다짐을 새롭게 되뇌어본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은 모든 게 엄청나게 달라졌다. 사용하는 도구도 다르고, 아이뉴스24를 지탱하는 기자들도 다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역시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최첨단 IT 흐름을 녹여내는 명품 기사를 선사할 것이란 이상. 우리가 다루고 있는 영역에서 건강한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제대로 해내겠다는 다짐.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 되겠다는 결심.
물론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현실은 척박하다. 미디어 환경이 '빛의 속도'로 진화 발전하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포털에서 SNS, 그리고 모바일로 이어지는 환경 변화가 때론 우리들의 사고 범위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굳게 약속할 수 있다. 어떤 환경이 닥쳐오더라도 처음 간직했던 '순수한 열정'과 '진리를 향한 탐구 정신'은 결코 놓지 않을 것이라고. 10년 뒤, 20년 뒤에도 변치 않는 열정을 간직한 매체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의 끈은 절대 놓지 않겠노라고.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