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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역대 최초 제3 후보 당선자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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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이인제·고건·문국현, '바람'에도 기존 정당 조직력 못 넘어

[채송무기자] 대선이 불과 18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시민의 힘을 토대로 제3 후보 자격으로 역대 최초 대선에서 승부를 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역대 대선 과정에서 제 3후보가 돌풍을 일으킨 적은 많았다. 기성 정치권에서 대안을 찾지 못한 국민들이 다양한 이유로 제 3후보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돌풍이 대선 본선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조직과 자금, 고정표의 한계 등 수 많은 문제로 제 3후보들은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제 3후보 중 대표적인 인물은 지난 1992년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박찬종 전 의원이다. 당시 박 전 의원은 정치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바람을 타고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조직력 부족 등을 실감하며 실제 대선에서는 6% 득표에 그쳤다.

1995년 제1회 민선 시장선거에서도 박 전 의원은 4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 막판 DJP연대 등으로 조순 민주당 후보에게 역전당했다. 다만 박 전 의원은 33.5%의 득표를 얻어 무소속 사상 최고의 지지를 받았다. 1997년 대선에서도 박 전 의원은 당시 신학국당 대선에 참가했으나 결국 중도 하차했다.

97년 대선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에 도전했던 이 후보는 경선에서 패배하자 이에 불복해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다.

당시 500만표를 득표한 이 후보의 선전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낙선에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07년 대선에서는 고건 전 총리가 오랜 기간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보여준 안정된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지지율 상승의 원인이 됐지만, 정치 참여 시기와 관련해 여권과 갈등을 벌이다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문국현 후보는 경제 정의의 요구를 안고 출마해 완주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의 거듭된 후보 단일화 요구에도 문 후보는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를 고집했고, 결국 완주했다.문 후보는 대선에서 5.8%로 4위에 그쳤다.

안철수 열풍은 현재의 정치권이 과거 '3김 시대'처럼 강한 고정표와 단결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제1야당이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대선에서도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 변화에 대한 국민의 강한 열망이 기존 정당의 조직력을 누른 것에서 비롯됐다.

작년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박원순 후보가 야권의 후보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국민의 정치 열망은 폭발했다.

당초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예측됐던 현장 경선이 그랬다. 현장 경선이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단위의 유권자가 몰려들었고, 젊은 층 유권자들까지 크게 늘어나자 민주당 관계자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자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의 힘이 낡은 한국정치의 역동적인 개혁의 시작을 알렸다는 지적이다.

안 원장이 현재 고물가·고유가·전세대란·일자리난·경제민주화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당면 과제에 대한 혜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한다면 과거 한계를 보였던 다른 제3 후보들과는 달리 오는 12월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5년을 책임지게 될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채송무기자 dedanhi@i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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