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기자] 10년이 넘는 '대결'은 악연이라기 보다 오히려 서로의 경쟁력을 키운 원동력이라고 해야할 듯하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눈물을 흘려야 할 지도 모른다.
한국 국가대표 게임과 미국 국가대표 게임의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가 한반도에서 펼쳐진다.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과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가 그 주인공들이다.
제작비만 수백억원이 넘는다. 세계 최고의 게임개발자들이 4년 가까운 시간을 매달렸다. 운명일까. 2012년 신작이 공개될 것이라는 얘기는 나돌았지만, 두 회사는 비공개 테스트에서부터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5일과 오는 5월9일 두 차례로 나눠 차례로 비공개테스트(CBT)를 실시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블리자드도 이틀 후 보도자료를 통해 블소와 같은 날인 25일부터 비공개테스트 돌입을 발표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테스트 첫날 두 회사가 운영하는 게임 서버는 몸살을 앓았다. 접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테스터들이 몰려들며 기세를 과시한 것이다. 저녁 늦게까지 접속이 어렵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끈질긴 대결의 시작, 4차전으로 이어져
엔씨소프트와 블리자드의 맞대결은 이번이 무려 네번째. 리니지-스타크래프트(1998년), 리니지2-와우(2003-2004년), 아이온-리치왕의 분노(2008년)에 이은 또 한번의 결전이다. 10여년의 대결에서 쌓은 노하우를 발판으로, 양사는 어느 때보다 완성도가 높은 이번 게임이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미 국가대표 게임기업 간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에 전세계 팬들의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
되돌아보면, 지난 1998년 전국의 PC방에서는 리니지류의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과 스타크래프트류의 게임을 즐기는 고객들로 정확히 나뉘어졌다.
'리니지냐 스타냐'. 당시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 주제였다. 다만 이 두 게임의 장르가 다르다보니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리지니가 온라인게임으로, 스타는 패키지 게임으로 분류된다.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로 기록된, 말하자면 무승부였던 셈이다.
엔씨소프트와 블리자드의 2차 대결은 그로부터 5년뒤인 2003년으로 넘어간다. 2003년 말 '리니지2'가 서비스되기 시작했고 바로 몇 달 후 2004년 초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출시됐다.
이번에는 장르가 같았다. 온라인게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었다. 두 게임이 몇 달 간격으로 서비스에 들어가면서 이용자들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리니지2냐 와우'냐. 각종 게시판에는 한쪽을 지지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게임을 비방하는 민감한 수준의 경쟁단계까지 이르렀다.
◆리지니-스타, 한국에 메이저 게임회사 시대 열어
리니지, 리니지2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와우의 잇따른 경쟁과 성공은 한국 온라인게임 산업에 메이저 게임회사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엔씨의 리니지는 출시때마다 조 단위 매출을 올렸다. 블레이드소울은 국내 시장에 이어 중국, 북미 시장을 공략할 엔씨의 야심작이다. 스타크래프트1 역시 국내에서만 400만장 이상 팔려나가며 폭발적 반응을 이어갔다.
엔씨의 선전은 경쟁력 있는 중소게임회사들이 속속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말하자면 세계 골프계를 휘젓는 '박세리 키즈'의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지난 2010년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4조7천673억원 규모로, 연평균 15.6% 성장해 2013년 11조4천666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엔씨소프트와 블리자드의 빅매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 상생효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양사는 지난 2008년 11월 세번째 운명의 대결을 맞는다. 엔씨소프트가 '아이온'이라는 신작을 내놓자 때맞춰 블리자드는 와우 '리치왕의 분노'를 같은 달 출시한 것. 양사의 대결은 승패를 떠난 자존심 대결의 단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게임 업계의 일반적인 예상은 '리치왕의 분노'의 우세였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고 앞서 수준 높은 확장팩 등을 선보였던 블리자드에 비해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천족과 마족이라는,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대결구도를 선보여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온이 뚜껑을 열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이온은 정액게임 동시 접속자 24만명 돌파라는 신기록을 수립했고, 북미·유럽에서 출시 한 달 만에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와 블리자드의 3번째 빅매치에서 처음으로 승패가 엇갈렸다고 분석한다. 리니지-스타크래프트 이후 10년만에, 리니지2-와우로부터 4년만의 일이다.
◆"2012, 김택진이냐 모하임이냐"
그리고 3년 5개월이 지난 2012년 4월. 엔씨와 블리자드는 다시 외나무다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엔씨의 블레이드앤소울과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는 전세계 시장을 놓고 한반도에서 숙명의 전초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양사가 이번에 내놓은 게임은 개발 초기부터 숙명적인 대결을 예고했다. 공교롭게도 두 게임 모두 2008년 여름에 처음으로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고(블소는 8월 자사의 미디어데이, 디아3은 6월 자사의 월드인비테이션 행사를 통해), 2010년 11월에는 약 100미터 간격을 두고 같은 자리(지스타 2010)에서 국내 팬들에게 처음으로 시연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지스타 게임쇼에서는 두 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4~5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블소냐 디아3이냐'라는 논쟁이 다시 타올랐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창업자겸 대표의 출사표도 남다르다.
"우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10년 넘게 서양 판타지로 경험을 쌓았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스타일의 게임이 블레이드앤소울이다. 동양의 자부심을 그리고 싶다."
지난 2010년 겨울 김택진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블소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 의지를 직접 이렇게 밝혔다.
모하임 블리자드 대표 역시 "우리가 만족하는 게임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며 "블리자드는 이 신념 하나로 20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2년 양사의 진검승부는 양사 모두를 웃게 할 수 있을까. 블레이드앤소울과 디아블로3는 게이머들의 마음을 벌써부터 설레게 하고 있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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