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예산안 강행 처리 직후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정의'라고 기세등등했던 한나라당이 거세게 불어닥친 예산안 후폭풍에 비틀대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본회의장 의장석 몸싸움을 보면서 1996년 12월 25일 노동법 기습 처리를 생각했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축배를 들었지만 그것은 YS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홍 최고위원은 "96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 여당을 재편하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면서 "당이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독자성을 잃고 끌려다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이번 예산 처리 과정에서 독자성을 잃고 청와대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민심이 중요하고 선거를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당청 관계가 일방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선거를 앞두고 당이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여권 중진들의 연이은 쓴 소리는 2011년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천안함 등 거대 안보 이슈로 여권의 승리가 점쳐졌지만, 예상 외로 야권의 대승으로 끝났다. 정권 심판론에다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야권 지지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들의 투표율도 높았다. 한나라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의 중간 선거적 성격을 띄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는 컸다. 18대 총선을 기점으로 수도권의 대부분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거꾸로 패배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오찬에서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이 선거 때도 아닌데 마치 선거처럼 지역을 돌고 있다"면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 원외인 민주당 지역위원장들도 지역에 전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나라당의 위기감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한나라당의 예산 강행은 수도권 의원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줬다. 결식 아동 방학급식 지원비, 영유아 접종비 등 복지 예산이 삭감된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이주영 예결위원장, 박희태 국회 의장 등 실세 의원들의 예산이 막판에 삽입된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사퇴와 함께 삭감된 템플스테이 예산을 관광진흥개발기금의 계획 변경을 통해 올해 수준으로 사업비를 증액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수습을 꾀했지만, 조계종은 이 정부에서는 예산을 줘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계종 대변인인 원담 스님은 13일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축소만을 문제 삼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런 행태가 불교계를 더욱 분노하게 한다"며 "예산이 어떤 방식으로 보충되더라도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유권자를 투표소로 끌어들이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이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형성될 때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한나라당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홍준표, 정두언 의원의 발언은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나섰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참여정부 당시 여권 실세들의 선 긋기는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힘을 빼는 결과를 낳았다. 한나라당이 예산안 강행 처리 후 불어닥친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채송무기자 dedanh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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