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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노조원 규모? 절대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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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

10년이 지난 것 같다. 영등포역에 가는 게. 많이 변했다. 사람들이 있고 차가 지나가고 여전히 백화점은 버티고 서 있었지만 모습은 10년 전과 달랐다. 높은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길은 곧고 넓게 바뀌었다.

세월은 모습을 변하게 만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삼성일반노동조합 김성환 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전 11시에 만나자 했다. 영등포역 근처 사무실에서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여러 번 통화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몇 분 뒤 김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약속이 11시였죠? 제가 지금 외부에 있는데 근처 어디에 들어가 계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바쁜 사람이다. 이날도 외부 행사 때문에 늦게 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24시간 순대국집이 보였다. 사실 김 위원장을 만나면 점심을 겸해 반주를 곁들이면서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딱딱하고 형식을 갖춘 인터뷰 보다는 그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영등포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여전히 삼성그룹에는 노동조합이 없다는 것. 외부로 알려진 바로는 그렇다. 이 회사에 맞서는 사람이 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을 만나고자 한 이유는 최근 삼성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기업 가치로서의 삼성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로서의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얼마 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 발병, 투병생활을 하던 박지연 씨가 운명을 달리했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였다. 사건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을 기자들에게 공개하고 백혈병과 무관함을 애써 가조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건강연구소를 만들었다.

또 삼성SDS 대전지사에 근무하던 한 직원이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일을 사내 직원들에게 보내 삼성그룹을 긴장시켰다. 삼성SDS는 메일을 즉각 삭제하고 해당 직원을 인사발령 조치했다.

같이 간 후배기자와 음식점에서 30여분을 기다렸다. 조금 지나 김 위원장이 들어왔다. 점심을 시키려 했지만 김 위원장은 "다 드셨으면 사무실로 가자"고 했다. 자신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했다.

사무실은 가까웠다.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에 김 위원장은 보안시스템을 먼저 해제했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과 낡은 사무실은 어울리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갇혀 있던 후텁지근한 기운이 얼굴을 덮쳤다. 3평 남직한 사무실은 대학시절 동아리방을 떠올리게 했다. 어수선하고, 탁자위에는 서류와 유인물로 어지럽게 널려 있고, 컵들은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모습.

벽면에는 '민주노조' '삼성 구조조정' '故 박지연' 등의 문구가 달린 플래카드가 가득 걸려 있었다.

"삼성이 박지연 씨 어머니에게 3억8천만 원을 줬어요. 산재보험보다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하면서. 단 행정소송을 취하하라는 등의 조건을 붙였답니다. 그러면서 이 돈은 절대 합의금이 아니라 위로금이라고 강조했다고 하더군요."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삼성그룹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은 김 위원장 뿐만 아니라 유족도 마찬가지였다.

故 박지연 씨 어머니는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딸이 저 세상으로 가 버린 상황에서 그동안의 치료비와 생활비 등 경제적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또 삼성과 관련된 산업재해 소송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 삼성의 끝없는 회유에 힘들어했다.

최근 불거진 삼성SDS의 노조 설립 이야기로 대화를 옮겼다. 김 위원장은 삼성일반노동조합(이하 삼성노조)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삼성노조는 초기업 단위의 노동조합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그룹의 전 계열사가 대상이고 하청업체, 도급업체도 포함된다. 현직 조합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삼성에 근무하면서 삼성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노조 조합원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얼마나 되고 어떤 업체의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노조원이 얼마나 되느냐고요? 탑 시클릿(Top Secret, 절대비밀)입니다."

김 위원장은 삼성노조가 있고 조합원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대놓고 활동을 떳떳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물밑에서 조금씩 조금씩 삼성노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행동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려지는 순간, 혹은 노조 설립과 관련된 움직임이 감지되는 순간, 사측의 온갖 협박과 회유가 들어옵니다. 미행을 하는 것은 물론, 미행한다는 것을 당사자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겁을 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것, 힘들지 않겠습니까."

"삼성 현장 노동자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 씨(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 무노조 경영한다고 해도 회사 차원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조건 따르라 했지만, 이제 따라하는 척해도 (직원들은) 뒤에서 웃는 거죠."

김 위원장이 알고 있는 삼성그룹 전체 직원은 15만 여명. 이중 현장 노동자는 약 8만~10만 명 정도 된다고 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받는 연봉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故 박지연 씨의 경우 한 달에 130 여만을 받았다고 했다.

연말이면 성과급이다, 인센티브다 목돈을 일괄 지급하지만 그것은 일부 임원과 직원들이 몫이지 현장 노동자에까지 스며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터뷰 중간에 한 여성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 위원장과 여성은 서로 짓으로 인사를 나눠다. 김 위원장이 "집사람이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 부인은 인터뷰와 상관없이 탁자 위에 코펠을 얹더니 불을 켰다.

"이렇게 점심을 먹습니다. 아내가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사무실에 나와 도와줍니다."

김 위원장은 현장을 방문할 때도 텐트와 코펠을 필히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맨 몸으로 가면 현장 노동자들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코펠을 가지고 다니면서 직접 식사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현장 노동자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이 점점 퇴색되는 마당에 노조를 설립하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단호히 말했다.

"지금 이 사무실도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나만 잘 살면 되지'라는 인식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공동체, 양심 자체도 더 강화된다고 봅니다. 지금 이 사무실도 98%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삼성노조 활동을 돕고 있는 거죠."

그는 아직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를 돕고 있는 존재도 주변의 사람이고, 그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실체도 주변 사람이었다.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 인터뷰를 마치면서 문을 열고 나가는 나에게 김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공부해야 합니다. 삼성은 만만치 않으니까......"

삼성은 만만치 않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내부 문제를 폭로하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서고,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수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특별검사까지 임명돼 조사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이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삼성의 지배구조와 무노조 경영은 굳건해 보인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십 조의 수익을 내는 삼성에 왜 '딴지'를 거느냐고 항변하는 사람까지 있다.

'더 공부해야 한다. 삼성은 만만치 않다'는 김 위원장의 울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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