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할 정도의 '반도체 강국'이다. 이를 주도하는 기업은 단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실제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D램시장 점유율은 32.3%, 하이닉스는 21.5%로 메모리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세계 메모리 시장과 경쟁 기업들이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일본, 대만 등 외국 경쟁사들이 올해 경기 회복 조짐에 힘입어 추격전에 나섰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오히려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격차 벌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하이닉스 "추월 허용 않는다"
올들어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면서 외국 경쟁사들의 광폭 추격전도 만만치 않을 조짐. 실제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엘피다는 최근 대규모 투자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 엘피다는 오는 2011년 3월까지 당초 400억엔보다 많은 60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경쟁하기 위해 플래시메모리 전문기업인 뉴모닉스를 12억7천만달러에 인수했고, 낸드플래시 부문 세계 2위인 도시바 역시 맹추격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역시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강화, 이들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 1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선 데 이어 하이닉스도 투자액을 기존 2조3천억원에서 3조500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선 것.
특히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관련 이건희 회장은 지난달 화성 반도체 기공식에서 "세계경제 및 경영여건이 여전히 불확실하나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선제 대응을 주문했다.
1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확정했다. 46나노 공정의 수율 안정화를 기반으로 과감한 설비투자를 통해 후발사업자들과 시장점유율과 수익 격차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포석이다.
무엇보다 10년 만의 반도체 호황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현재 30%대 초반인 D램 시장점유율을 연말까지 40%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시장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이닉스도 올해 당초 계획(2조3천억)보다 7천500억원 늘어난 3조원 이상을 투입키로 했다.
40나노급 D램의 공정전환에 집중 투자, 현재 15% 수준인 40나노급 제품 비중을 연말까지 50%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40나노급 D램은 50나노급보다 생산성이 50% 이상 높고 고성능 저전력 제품에 주로 사용된다.
핵심인 D램 사업에 주력, 최고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가겠다는 의지다. 무엇보다 서버와 그래픽, 모바일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고객 요구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하이닉스의 강점인 D램 사업에 집중해 핵심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며 "반도체 공장을 증설해 물량을 늘리는 대신, 공정을 전환하는 데 올해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라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삼성전자에 대한 대응차원으로도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이처럼 선제적인 투자 확대에 나서면서 세계 1·2위 입지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 판단이다.
비슷한 시기에 투자가 중복되면서 공급과잉 현상에 따른 치킨게임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국내업체들은 반도체가 장기 호황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호황기 맞는 반도체…순풍에 돛단 듯
올해 세계 반도체 전망 또한 밝아 우리 기업들의 고속질주는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가트너와 IDC 등 주요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 세계 PC 판매량은 경기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PC 시장의 성장세가 뚜렷한데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상황. 신제품들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면서 메모리분야 장기 호황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가트너는 지난 3일 올해 글로벌 반도체 판매가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치를 상향조정 하기도 했다. 올해 전세계 반도체 판매 규모는 지난해 2천280억달러에서 2천9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도 올해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열린 '14차 세계반도체협의회(WSC)'에서 "2분기에도 반도체 시황이 좋다"며 "반도체 부문에서 2분기 실적이 1분기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적어도 올해까지는 D램 공급이 타이트할 것"이라며 "당분간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관측 했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도 "올해 하이닉스는 D램 반도체 업계 평균보다 높은 20% 이상의 영업이익 창출이 기대된다"며 시장상황을 낙관했다.
다만 유럽발 재정위기는 변수가 될 조짐이다. 국내 수출업체들이 유럽 재정위기가 적어도 6개월 이상 이어질 것으로 진단하는 등 상황이 녹록치는 않은 것.
권오현 삼성 반도체 사장도 "반도체 경기에 특별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도 "유럽쪽의 수출물량은 적은 편"이라며 "(장기화된다면)문제가 될 수는 있어도 그렇게 되더라도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시스템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메모리 분야에서 글로벌 톱 입지를 다지고 있지만 이를 이어갈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은 여전히 과제.
D램과 플래시메모리 등 메모리 반도체에서 다져온 입지를 빠르게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D램 반도체가 비약적인 기술발달로 인해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컴퓨터의 CPU, LED 구동칩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의 시스템반도체로 빠르게 옮겨가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비메모리 부문인 시스템반도체는 응용분야가 넓은 게 강점.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의 전세계 비중은 각각 25%와 75%선이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중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450억달러에 이르는 대형 시장. 게다가 메모리와 달리 라이프 사이클이 길어 시장이 안정적이라는 점도 차세대 동력원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다.
현재 이같은 아날로그반도체 시장은 미국·유럽·일본 등이 전세계시장의 96%를 점유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국내 수요 30억4천만달러 중 97%인 30억2천900만달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실상 자사 공급용으로, 하이닉스는 구조조정에 들어서면서 시스템반도체 부문을 미국계 회사에 매각한 바 있다. 현재 시스템반도체에 주력하고 있는 회사는 동부하이텍을 제외하면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업계도 이같은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당장 핵심기술 인력과 검증된 생산 인프라 확보를 위한 막대한 자금과 노력,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도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문 핵심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자금 뿐 아니라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며 "단기적 목표로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높은 진입 장벽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평가다.
이미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의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 신설을 위해 2011년까지 총 36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투자키로 하는 등 적극 나섰다.
정부도 올해부터 오는 2015년까지 5년간 6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는 셈.
메모리 분야에서 고공비행을 해온 국내 업체들이 시스템 반도체라는 나머지 날개를 달고 더욱 비상할 날을 기대해본다.
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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