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중국 정부에 단단히 뿔났다. 자존심 굽혀가며 터를 잡고 있던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면서 배수진을 쳤다.
외신들에 따르면 구글은 12일(현지 시간) "중국 쪽에서 자국 인권운동가들의 지메일 계정을 해킹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공개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해킹에 무게를 두고 있는 눈치다.
특히 구글 측은 이번 해킹 공격이 자신들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미국 내 20 여개 대형 기업들도 중국 발 해커들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중국 사무소도 폐쇄"
그 동안 구글은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파룬궁 같은 반정부적인 내용이 포함된 검색 결과를 차단하는 조치까지 받아들였다. 미국 정부를 향해 대들던 기세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구글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이 맘 편할 리는 없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슬로건과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발 해킹 사건까지 발생함에 따라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구글이 당장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구글 측도 12일 "검열을 하지 않고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방안을 중국 정부와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능하면 원만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길 원한다는 얘기다.
물론 구글 측은 "google.cn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중국 사무실 문까지 닫을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구글의 이런 방침에 미국 정부도 힘을 보탰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이날 성명을 통해 "모든 국가들은 사이버 네트워크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도 당연히 그런 의무를 가진다"고 못을 박았다.
구글은 중국을 향해 선전포고에 가까운 선언을 하기 전에 국무부와 접촉했다고 크롤리 차관보가 밝혔다.
◆"더 이상 밀리면 안된다" 위기의식 느낀듯
구글이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중국 정부 관리가 구글 측이 음란물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비판했다. 당시 구글의 일부 서비스가 차단되기도 했다.
또 구글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는 중국에서 수시로 접속 차단됐다.
이런 수모까지 견디던 구글이 "시장 철수 불사"를 외친 것은 그만큼 현 상황이 절박하다는 얘기다. 더 이상 중국 정부에 밀리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구글이 초강수를 던지면서 이제 공은 중국 정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외신들은 중국 정부가 구글의 압박에 쉽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동안 중국 정부는 인터넷 검열에 대해 비판하는 외국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무시해 왔다. 또 중국 정부가 해킹 공격을 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일축해버렸다.
구글이 갖는 무게가 적지는 않지만, 검열 조치를 쉽게 거두어들이지는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게다가 엄청난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 정부로서는 아쉬울 것도 많지 않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어낼리시트 인터내셔널 자료에 따르면 구글은 매출 기준으로 중국 검색 시장의 29%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약진을 거듭하긴 했지만 중국 토종 기업인 바이두의 위세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지난 2008년 중국 매출 규모 역시 220억달러로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야후-이베이 전철 밟을까?
외신들은 구글이 그 동안 중국 시장을 사실상 포기했던 기업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베이, 야후 등은 최근 중국 사업을 현지 업체들에게 넘기면서 사실상 야심을 접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이용자 수만 3억4천만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제약과 골치 아픈 일이 많지만 선뜻 포기하기 힘든 시장이 바로 중국이란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던 기업들이 몇 년 뒤 대부분 슬그머니 다시 돌아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했다.
그 동안 구글은 중국 정부의 검열 조치를 수용하면서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를 펼쳐 왔다. 중국 사람들이 아예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제한된 정보마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해킹 사건으로 이런 논리 자체가 설득력을 갖기 힘들게 됐다.
이런 상황을 맞아 모처럼 칼을 빼든 구글. 회심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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